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한다면 참 씁쓸합니다. 뭔가를 결정할 때 채택된 것을 왜 "이겼다"고 말하고 채택되지 못한 것을 왜 "졌다"고 할까요? 서구식 다수결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면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의 주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의사결정 방법론을 이르기도 합니다. 이를 구별하여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 민주주의는 고대 희랍의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다수결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만 이것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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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의 모습. 의제는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명칭 변경'이다. |
| ⓒ 전희식 |
지난 10월 15일부터 3일 동안 지리산 실상사에서 진행된 '2004 생명평화대회'에서 선보인 화백회의는 서구민주주의의 폭력성을 완전히 걷어 낸 참된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 준 듯합니다.
하늘님이나 임금님 그리고 차차웅이니 단군이니 하는 회의 역할자의 이름이 생소하고 청문권이나 십자공수, 보은화폐, 말발이라고 하는 회의원칙 역시 귀에 설지만 우리 선조들이 공동체의 의사통합과 단결에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잘 드러난 회의였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길동무(www.gildongmu.org), 좌계학당의 김영래 선생, 강화도 마리학교(www.mari.or.kr) 이렇게 세 주체가 주관한 이날 화백회의 시연을 본 참석자들이 모두 감탄을 하고 자신들 단체에도 화백회의를 도입하고 싶어했습니다.
이 화백회의는 재야문화인류학자인 좌계학당의 김영래 선생이 평생 노력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낸 것입니다. 이 화백회의는 3년 전 최초로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서 시연되었으며 '길동무'에서는 지금까지 줄곧 채택해 오고 있습니다.
화백회의의 의사결정은 아래와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소수의 의견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다수 의사를 곧 전체의사로 하는 서구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에 대한 반영통로가 없거나 협소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종다수 원칙입니다. 결선투표도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놓고 보면 이것도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심이 듭니다.
4명이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율 60%에 유효득표수 30%로 당선되었다고 합시다. 총 유권자의 18% (60 * 30) 지지로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나머지 유권자 82%의 의사는 물론 다른 후보 3명을 지지했던 42%(60 * 70) 유효투표 유권자 의사는 민의의 전당이라 하는 국회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화백회의는 적은 보은화폐를 확보한 (소수)의견도 소멸되지 않으므로 소수의견이 늘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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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화백회의에 집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
| ⓒ 전희식 |
서구식 민주주의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됩니다. 모든 걸 독차지 하든지 아니면 모든 걸 잃기 때문입니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됩니다. 표의 매수는 물론 상대방 헐뜯기, 허위과장 광고를 해서라도 당선만이 목표가 되게 부추깁니다. 선거(투표) 후에도 앙숙이 되어 으르렁대기 일쑤입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임금들의 지지표(보은화폐 실어주기)가 매우 자유로워서(유동적이어서) 의견그룹끼리의 날카로운 대립이 안 생깁니다. 상대를 헐뜯거나 으르렁대다가는 모였던 지지표가 슬금슬금 다 빠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였던 지지표가 다시 빠져나간다니 무슨 말이냐고요? 화백회의에서는 일사부재의(한 회기 동안에는 한번 결정된 의안은 다시 심의 안 하기)의 원칙이니 일사부재리(한 의제에 대해 한번 표결을 했으면 다시 표결하지 않기)의 원칙을 철저히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들은 '두말하기 없기'라는 것으로 회의의 효율을 위한 원칙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없어도 회의가 전혀 혼란스럽지 않은 게 화백회의입니다.
셋째, 타협과 양보를 쉽게 합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지지하는 임금님의 말발에다 보은화폐를 주었다가도 빼내는 것이 보장되므로 자기 의견 하나 가지고 고집 부리다가는 보은화폐가 다 새어 나갑니다. 말발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좋은 말발을 세워내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 고집을 안 부리게 되고 다른 의견을 잘 살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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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날 사용된 보은화폐들. 백 원권부터 만 원권까지가 발행되었다. | |
| ⓒ 전희식 |
넷째, 발언이 독점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등이 실현됩니다.
회의에서 종종 발언을 독점하는 사람을 봅니다. 감정 대립까지 생기면 의사진행발언이다 긴급동의다 하여 공방이 길어지고 회의장에서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청문권을 얻어야 발언할 수 있기에 제한된 보은화폐로 함부로 발언을 일삼을 수가 없습니다.
제한된 보은화폐라? 보은화폐가 뭐냐고요? 진행발언도 하고 설명도 요청할 뿐더러 지지하는 임금님에게 말발을 세워주는 일종의 회의 자본금입니다.
화백회의에서는 그 집단에 기여한 공로만큼 정한 한도 내에서 보은화폐를 받으므로, 발언 기회와 지지 정도를 그 집단에 기여한 만큼 표현하게 하므로 제대로 된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특별히 의견이 없거나 발언 한 번 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말발 세워주기인데 이것은 회의구성원을 그 회의 최고의 권력자이게 합니다. 그래서 회의 참석자는 하늘님으로 불리고 발언자나 의안 제안자는 한 수 아래인 임금님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도 말발 세워주기를 통해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식이 없어도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화백회의는 사회적 명상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잡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해 보면 쉽습니다. '2004 생명평화대회' 이병철 집행위원장과 도법스님도 처음에는 생소해 하다가 아주 재미있어 했습니다. 회의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좌계학당 김영래 선생은 이 화백회의는 "단순한 의사결정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명상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이 날 화백회의 의제는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명칭변경'이었는데 다양한 의견이 빠짐없이 개진되고 새롭게 통합되어 가는 역동성을 보고 다들 화백회의에 매료되었습니다. 한 조직의 명칭을 고치니 마니 하는 토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만 화백회의에서는 짧은 시간에 의견을 통합해 낼 수 있었습니다.
화백회의의 중요성을 이미 잘 알고 있던 '지리산 생명평화 결사'에서는 부러 요청을 하였고 우리 세 조직은 흔쾌히 갔습니다.
이번 화백회의에서는 마리학교에서 보은화폐를 새로 도안하여 만들어 왔고 김영래 선생이 경우판정관인 차차웅 역을 맡아 회의진행을 도왔습니다. 회의를 준비했던 세 조직 관계자에게는 똑같이 일 만 보은화폐가 지급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1:1의 환율로 우리나라 돈 원화를 보은화폐로 환전하여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은 회의에서 정한 곳에 쓰이므로 회의참석 자체가 사회적 공익영역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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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평화 탁발순례중인 도법스님도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뎅그랑게 뜨고 지켜보았다. |
| ⓒ 전희식 |
이 날 회백회의 시연에서 단군(회의 의장) 역할을 했던 '길동무' 꼭두쇠인 김재형 선생은 별도 시간에 다음과 같이 화백회의를 정리하였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과 소통이 가능하고, 동물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맑게 열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사람들은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아주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소통 방법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느낌으로 소통을 했습니다.
상대의 얼굴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나누고 싶어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소유 개념이 들어오면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권력 관계가 생기면서부터는 글로 쓰지 않고는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국가가 생기는 단계에 와서는 법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가장 오래된 국가의 개념은 최초로 법을 만든 나라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시대는 법으로도 문제를 풀기 어려운 때가 됐습니다. 힘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진보와 반대로 역사는 점점 퇴보하면서 흘러왔습니다.
화백회의는 그런 역사의 퇴보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입니다. 회의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명상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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