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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일치를 일구는 공동체민주주의 '화백회의' 1 - 전희식

작성자아침|작성시간09.06.22|조회수67 목록 댓글 0

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한다면 참 씁쓸합니다. 뭔가를 결정할 때 채택된 것을 왜 "이겼다"고 말하고 채택되지 못한 것을 왜 "졌다"고 할까요? 서구식 다수결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면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의 주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의사결정 방법론을 이르기도 합니다. 이를 구별하여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 민주주의는 고대 희랍의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것으로 다수결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만 이것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법입니다.

▲ 회의 모습. 의제는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명칭 변경'이다.
ⓒ 전희식
다수결 원칙에서는 제일 흔한 것이 '과반수 결의'고 그 다음이 2/3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 결의'가 있습니다. '종다수 결의'는 한 표라도 많은 것으로 전체의 뜻을 정하는 원칙인데 각종 선거제도가 이것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되고 나머지 표들은 다 무시됩니다.

지난 10월 15일부터 3일 동안 지리산 실상사에서 진행된 '2004 생명평화대회'에서 선보인 화백회의는 서구민주주의의 폭력성을 완전히 걷어 낸 참된 민주주의의 전형을 보여 준 듯합니다.

하늘님이나 임금님 그리고 차차웅이니 단군이니 하는 회의 역할자의 이름이 생소하고 청문권이나 십자공수, 보은화폐, 말발이라고 하는 회의원칙 역시 귀에 설지만 우리 선조들이 공동체의 의사통합과 단결에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잘 드러난 회의였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길동무(www.gildongmu.org), 좌계학당의 김영래 선생, 강화도 마리학교(www.mari.or.kr) 이렇게 세 주체가 주관한 이날 화백회의 시연을 본 참석자들이 모두 감탄을 하고 자신들 단체에도 화백회의를 도입하고 싶어했습니다.

이 화백회의는 재야문화인류학자인 좌계학당의 김영래 선생이 평생 노력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낸 것입니다. 이 화백회의는 3년 전 최초로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서 시연되었으며 '길동무'에서는 지금까지 줄곧 채택해 오고 있습니다.

화백회의의 의사결정은 아래와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소수의 의견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다수 의사를 곧 전체의사로 하는 서구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에 대한 반영통로가 없거나 협소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종다수 원칙입니다. 결선투표도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놓고 보면 이것도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심이 듭니다.

4명이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율 60%에 유효득표수 30%로 당선되었다고 합시다. 총 유권자의 18% (60 * 30) 지지로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나머지 유권자 82%의 의사는 물론 다른 후보 3명을 지지했던 42%(60 * 70) 유효투표 유권자 의사는 민의의 전당이라 하는 국회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화백회의는 적은 보은화폐를 확보한 (소수)의견도 소멸되지 않으므로 소수의견이 늘 살아 있습니다.

▲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화백회의에 집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 전희식
둘째, 의견그룹끼리 극단적인 대립을 피할 수 있게 합니다.

서구식 민주주의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됩니다. 모든 걸 독차지 하든지 아니면 모든 걸 잃기 때문입니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됩니다. 표의 매수는 물론 상대방 헐뜯기, 허위과장 광고를 해서라도 당선만이 목표가 되게 부추깁니다. 선거(투표) 후에도 앙숙이 되어 으르렁대기 일쑤입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임금들의 지지표(보은화폐 실어주기)가 매우 자유로워서(유동적이어서) 의견그룹끼리의 날카로운 대립이 안 생깁니다. 상대를 헐뜯거나 으르렁대다가는 모였던 지지표가 슬금슬금 다 빠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였던 지지표가 다시 빠져나간다니 무슨 말이냐고요? 화백회의에서는 일사부재의(한 회기 동안에는 한번 결정된 의안은 다시 심의 안 하기)의 원칙이니 일사부재리(한 의제에 대해 한번 표결을 했으면 다시 표결하지 않기)의 원칙을 철저히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들은 '두말하기 없기'라는 것으로 회의의 효율을 위한 원칙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없어도 회의가 전혀 혼란스럽지 않은 게 화백회의입니다.

셋째, 타협과 양보를 쉽게 합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지지하는 임금님의 말발에다 보은화폐를 주었다가도 빼내는 것이 보장되므로 자기 의견 하나 가지고 고집 부리다가는 보은화폐가 다 새어 나갑니다. 말발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좋은 말발을 세워내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 고집을 안 부리게 되고 다른 의견을 잘 살펴보게 합니다.

▲ 이날 사용된 보은화폐들. 백 원권부터 만 원권까지가 발행되었다.
ⓒ 전희식
상대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독설을 퍼부으면 그 순간 다수의 회의 참석자(하늘님)들의 판단에 따라 그 의견 제시자는 몰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넷째, 발언이 독점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등이 실현됩니다.

회의에서 종종 발언을 독점하는 사람을 봅니다. 감정 대립까지 생기면 의사진행발언이다 긴급동의다 하여 공방이 길어지고 회의장에서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화백회의에서는 청문권을 얻어야 발언할 수 있기에 제한된 보은화폐로 함부로 발언을 일삼을 수가 없습니다.

제한된 보은화폐라? 보은화폐가 뭐냐고요? 진행발언도 하고 설명도 요청할 뿐더러 지지하는 임금님에게 말발을 세워주는 일종의 회의 자본금입니다.

화백회의에서는 그 집단에 기여한 공로만큼 정한 한도 내에서 보은화폐를 받으므로, 발언 기회와 지지 정도를 그 집단에 기여한 만큼 표현하게 하므로 제대로 된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특별히 의견이 없거나 발언 한 번 할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말발 세워주기인데 이것은 회의구성원을 그 회의 최고의 권력자이게 합니다. 그래서 회의 참석자는 하늘님으로 불리고 발언자나 의안 제안자는 한 수 아래인 임금님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도 말발 세워주기를 통해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식이 없어도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화백회의는 사회적 명상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잡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해 보면 쉽습니다. '2004 생명평화대회' 이병철 집행위원장과 도법스님도 처음에는 생소해 하다가 아주 재미있어 했습니다. 회의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좌계학당 김영래 선생은 이 화백회의는 "단순한 의사결정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명상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이 날 화백회의 의제는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명칭변경'이었는데 다양한 의견이 빠짐없이 개진되고 새롭게 통합되어 가는 역동성을 보고 다들 화백회의에 매료되었습니다. 한 조직의 명칭을 고치니 마니 하는 토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만 화백회의에서는 짧은 시간에 의견을 통합해 낼 수 있었습니다.

화백회의의 중요성을 이미 잘 알고 있던 '지리산 생명평화 결사'에서는 부러 요청을 하였고 우리 세 조직은 흔쾌히 갔습니다.

이번 화백회의에서는 마리학교에서 보은화폐를 새로 도안하여 만들어 왔고 김영래 선생이 경우판정관인 차차웅 역을 맡아 회의진행을 도왔습니다. 회의를 준비했던 세 조직 관계자에게는 똑같이 일 만 보은화폐가 지급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1:1의 환율로 우리나라 돈 원화를 보은화폐로 환전하여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은 회의에서 정한 곳에 쓰이므로 회의참석 자체가 사회적 공익영역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 생명평화 탁발순례중인 도법스님도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뎅그랑게 뜨고 지켜보았다.
ⓒ 전희식
화백회의에 대한 제 느낌의 핵심은 이것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화백은 순 우리말로 '모울도뷔'라고 하는데 '모울'은 한없이 열려 있는 어울림의 큰 공동체를 말하고 '도뷔'는 자유와 평등과 밝음을 실천하는 선비를 뜻합니다.

이 날 회백회의 시연에서 단군(회의 의장) 역할을 했던 '길동무' 꼭두쇠인 김재형 선생은 별도 시간에 다음과 같이 화백회의를 정리하였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과 소통이 가능하고, 동물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정신이 맑게 열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사람들은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아주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소통 방법이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느낌으로 소통을 했습니다.
상대의 얼굴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나누고 싶어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소유 개념이 들어오면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권력 관계가 생기면서부터는 글로 쓰지 않고는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국가가 생기는 단계에 와서는 법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가장 오래된 국가의 개념은 최초로 법을 만든 나라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시대는 법으로도 문제를 풀기 어려운 때가 됐습니다. 힘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진보와 반대로 역사는 점점 퇴보하면서 흘러왔습니다.

화백회의는 그런 역사의 퇴보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입니다. 회의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명상에 가깝습니다.

화백회의 진행절차

모든 회의는 의견을 성숙시키는 과정이 있고 결정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서구식 민주주의에서는 토론이라는 것으로 의견을 성숙시키는 과정을 거치지만 화백회의는 말발을 실어주거나 빼 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서구식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로 결정하지만 화백회의에서는 말발의 상호상쇄로 결정합니다.

1. 환전

보은화폐로 회의에 참여합니다. 회의를 위한 화폐인데 보은이라는 말은 화백회의가 최초로 공개시연 되었던 충청북도 보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최초의 시연은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중 동학혁명 보은 취회 기념 행사였습니다.

원화와 1:1로 환전하고 사전에 환전최대치를 정해 둡니다. 이렇게 모은 원화는 어디에 쓸 것임을 사전에 알리고 거기에 씁니다.

2. 회의 담당자

하늘님 : 화백회의 원주권자. 회의참석자를 하늘님이라 합니다. 말발을 실어서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입니다.

단군 : 회의 의장. 의제에 대한 발언권이 없습니다. 공동체 명상으로 이끕니다.

차차웅 : 경우 판정관. 회의과정에 발생하는 여러 경우들에 대해 판정합니다.

임금님 : 발언권자. 하늘님이 세상으로 내려와 임금님의 자격으로 발언합니다. 의제에 대해 주장하고 말발을 받습니다. 자기주장을 한번 밝힌 다음에는 질문이 없는 한 다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님들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왈가왈부 부연설명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우미 : 의결과정에 보은화폐를 굳히는 칼 도장을 찍는다든지 청문권 화폐를 발행한다든지 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3. 용어

말발 : 임금님의 주장에 대해 하늘님들이 지지를 표현하는 것. 말발을 실어주거나 빼는 과정에서 모두에게 명상이 일어납니다. 공동체 명상이라 함은 공감과 공명. 즉, 통합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말발은 당연히 보은화폐를 내는 것으로 표시합니다.

청문권 : 의제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회의 결정을 위한 정보를 요구하는 일. 정한 액수의 보은화폐를 내야 합니다(하늘님들은 다 아는 것인데 질문한다는 것은 멍청한 하늘님이라고 본 것이므로 보은화폐를 냄으로 해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스스로 설명 하고자 할 때도 보은화폐를 내고 자신에게 청문권을 사용합니다.

십자공수 : 의제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최소 한 사람이라도 말발을 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발을 빼는 과정에서 공동체 명상이 일어납니다. 말발이 빠지지 않은 임금님 주장은 사회성숙과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제단에 모셔지지 못합니다.

제단에 바치기 : 말발과정이 다 끝나면 임금님들은 자기에게 실린 말발들을 제단에 올립니다. 제단에 올리기 전, 하늘님들은 말발(보은화폐)을 뺄 수 있습니다. 제단에 올리는 말발(보은화폐)은 굳어진 화폐가 됩니다.

상쇄하기 : 제단에 바칠 때 서로 상쇄하고 남는 보은화폐량만큼 사회적 명상의 정도로 간주됩니다.

4. 의사진행과정

- 의제에 대해 주장이 있는 하늘님은 세상으로 내려와 임금님자리에 앉아 주장합니다. 이때 보은화폐를 싣고(내 놓고) 말해야 합니다. 하늘님들은 주장을 듣고 보은화폐로 말발을 실어 줄 수 있습니다. 이때는 하늘님이 자기 이름을 보은화폐에 적어서 냅니다.

- 다른 의견이 있는 하늘님은 역시 세상에 내려와서 임금님 자격으로 보은화폐를 내고 말합니다. 다만, 다른 임금님의 주장을 비판할 수 없고 자기주장만 합니다(왜냐하면 그런 비판 따위는 하늘님들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주장을 듣고 하늘님들은 역시 보은화폐로 말발을 실어줍니다.

- 하늘님은 전지전능하고 무한권력자이기 때문에 자기 말발을 빼 내서 가져 갈 수도 있고 다른 임금님에게 옮길 수도 있습니다 (보은화폐에 자기 이름이 있으므로 그걸 빼 내거나 옮긴다).

- 제단에 바치고 나면 그 보은화폐는 칼 도장이 찍히고 하늘님마저 절대 손 댈 수 없게 됩니다. 제단에 바치기 전에는 임금님은 자기에게 모인 말발(보은화폐)을 두고 모든 하늘님들께 고합니다. 빼 가실 분을 빼 가시라고.

- 단군이나 차차웅이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갈아치울 수 있습니다. 원주권자인 하늘님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집니다.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시연해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시민단체나 대학에서 우선적으로 도입하여 널리 보급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화백회의를 하면 의견 차이 때문에 갈라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회의 원칙을 만들어도 차이 때문에 감정 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화백회의는 야마기시공동체에서 하는 '영위에 놓는다'라는 연찬방법을 떠오르게 합니다. 의견을 내는 순간 '내 의견'이라는 소유관념에서 떨구어 내게 합니다. '나'와 '내 의견'을 붙들어 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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