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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Re:교수님께 드리는 질문 (노자 철학 해석의 문제)

작성자안재오|작성시간02.09.14|조회수240 목록 댓글 0
친애하는 흐림없는 눈님,
귀하의 철학적 고민을 치하합니다.
그런데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귀하의 명제 중 '만물이 하나라면'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것의 뜻을 명백히 밝혀주기를 바랍니다.
우선 만물은 하나입니까? 만약 귀하의 견해처럼 만물이 하나라면 어떤 의미로 그런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귀하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A이면 B이다라는 조건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A의 진리치가 전체 문장의 진리치를 좌우합니다. 따라서 귀하의 명제를 증명하려면 A에 해당하는 문장, 즉 '만물이 하나이다'가 참이어야 합니다.

이점을 명백히 밝혀주세요. 총총.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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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서 성실히 답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답해 주신 말씀에 대해 일주일동안 수만큼 많이 생각했습니다. 몇가지 부분에선 교수님에 말씀에 동의 할 수는 있지만 몇가지 부분에선 또한 동의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지만 어디서 부터 써야 할지 몰라 그냥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만물이 하나라면 자연도 인간도 하나입니다. 인간을 이해함은 세상을 이해함입니다. 그리고 그건 삶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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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김인영씨,
귀하의 날카로운 문제제기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런데 앞으로 수업을 게속 들으면 좀 더 이해가 되겠지만
기왕에 질문이 나왔으니 질문에 간략히 답하겠습니다.
첫째, 노자의 도개념은 귀하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확실한 개념이 아닙니다. 아니 그 반대로 아주 분명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경의 짧은 구절들이 2500년 이상 애독되어 온 것입니다.
내가 쓴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그것은 소리가 없어 들을 수도 없고, 형태가 없어 볼 수도 없으나, 홀로 우뚝 서 있으며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두루 어디에나 번져 나가며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없다”. <노자도덕경 25장>

이런 道의 존재 양식을 노자는 또한 自然이라고 부른다; 道가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근거이며 원인이기 때문에 마땅히 유한자의 한 부분인 사람도 그것을 닮고 또 따라간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사람은 땅을 법도로 삼고 따르고, 땅은 하늘을 법도로 삼고 따르고, 하늘은 도를 법도로 삼고 따르지만 도는 자연을 따라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노자도덕경 25장>

여기서 보면 인간의 법과 자연의 법이 동일하게 간주됨을 알 수 있다. 인간이 道의 존재 양식을 인정하고 따라가야 함을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땅의 법을 따르고 땅은 하늘의 법을 따르고 하늘은 道의 법을 따른다. 우주 내에서 인간의 지위가 아주 낮게 자리 매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自然이란 그 위의 설명과 즉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 홀로 우뚝 서 있으며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두루 어디에나 번져 나가며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없다”

이처럼 노자의 도란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이며 존재의 근거입니다. 따라서 나는 귀하의 인간학적 혹은 주관적 노자의 도해석 "즉 노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라고 부르는 진리 또는 삶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어디에든 속해 있고 또한 어디에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알지 못할 뿐이지 이미 어디에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 삶 자체가 '도'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에 대해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 도를 알지 못한다는 귀하의 생각은 본인의 노자해석과 상치됩니다.
그리고 귀하의 다음 구절
즉 "우리의 삶 자체가 '도'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는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 것이 바로 장자, 노자가 우리에게 권하는 실천의 양식입니다. 즉 자연과 합치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입니다. 그들은 인위적인 노력이나 어떤 자연에 불일치하는 행동은 싫어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무위자연" 입니다.
그리고 귀하의 나의 강의에 대한 오해는 도가철학의 기원이 양주의 극단적 개인주의 그리고 현실도피에 있다는 것이지 장자, 노자가 말하는 도를 두고 현실도피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귀하의 오해입니다. 오히려 도란 하나의 절대적 개념입니다.

그리고 귀하의 문장, "가끔 저는 아주 볼품 없는 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발견합니다. 어쩔땐 말로 어쩔땐 행동으로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습니다"는 전적으로 도가 철학의 원리에 일치합니다.
노자는 그래서 유약과 무지 혹은 추하고 병든 것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멸시와 차멸대우를 넘어서려고 했습니다. 성인은 그런 세상적 가치관을 뒤어 넘는 초인입니다.

이정도로 답하겠습니다.
이것이 귀하에게 좀 더 많은 사색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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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교수님께 질문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저는 카톨릭대 경제학과 2학년 김인영이라고 합니다. 이번 철학개론 수업중에 교수님께서 노장 사상을 이야기하시며 특징 중 에 하나로 현실회피 또는 도피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노장사상은 현실에 더 가깝게 접근 할수 있는 실천철학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노자는 도를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라고 부르는 진리 또는 삶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어디에든 속해 있고 또한 어디에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도'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알지 못할 뿐이지 이미 어디에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 삶 자체가 '도'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자는 자신 안에 있는 도를 자연 속에서 찾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 찾은 바를 이야기 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본 거대한 인과의 과정과 순리를 보고 인간에 삶속에도 그런 것들이 존재함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도 닦는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사실 도는 닦는게 아니라 삶속에서 깨달아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삶속에서 자심을 돌아봄이 '도'로 가는 길이라면 그것은 현실을 회피가 아니라 현실에 당당이 맞서야 함이 아닐까요? 공자의 철학은 넓고 깊으며 특히 윤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하지만 공자가 자신이 말한 대로 살수 있었을까요? 실제로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당시에 주천자가 있으므로 정통 왕조가 있었지만 그는 천하를 떠돌았습니다. 그가 말한대로라면 공자는 충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의롭지 못하고 어려운 천자를 버려 두었으니 인을 지키지 못했으며 알면서 고치지 못했으니 지혜롭지도 못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공자의 주장은 옮긴 하지만 자신도 다 지킬 수는 없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옮긴 하지만 너무 이론에 치우쳐 사람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라는 것은 삶속에 녹아 있기에 삶속에 자연이 행할 수 있을 겁니다.
가끔 저는 아주 볼품 없는 이들에게서 배울 것을 발견합니다. 어쩔땐 말로 어쩔땐 행동으로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습니다. '도'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과연 이것을 현실도피또는 회피에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족하나마 질문 들입니다.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 있는데 막상 표현 할려니 어렵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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