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국사 사료 마당

[고려]『고려사』를 찬진하는 전(箋)

작성자송영심|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정헌대부 공조판서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正憲大夫 工曹判書 集賢殿大提學 知經筵春秋館事 兼 成均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 등은 진실로 황공해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말씀을 올립니다. 그윽이 듣건대, 도끼 자루를 새로 만들 때는 헌 도끼 자루를 보고 그것을 본받으며, 뒤에 가는 수레는 앞에 가는 수레를 거울삼아 이를 조심한다고 합니다. 대개 이미 지나간 나라의 흥망성쇠는 진실로 장래의 감계(鑑戒)로 삼아야 할 것이기에 이에 한 편의 사서(史書)를 엮어서 감히 주상전하께 올립니다. 왕씨의 조흥(肇興)은 태봉(泰封)으로부터 일어나 신라(新羅)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後百濟)를 멸망시켜 삼한(三韓)을 합하여 한 집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요(遼)를 버리고 〈후〉당(唐)을 섬김으로써 중국을 존중하며 동쪽 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에 번거롭고 가혹한 정치를 혁신하고 원대한 제도를 넓혔으니, 광묘(光廟, 광종)가 직접 시험장에 나아가서 선비를 시험보아 유학의 기풍을 점차 일으켰으며, 성종(成宗)은 종묘와 사직을 세움으로써 통치기구를 다 갖춘 바 있습니다. 〈중간에〉 선양(宣讓, 목종)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국운이 거의 기울어졌지만 현제(顯濟, 현종)이 중흥의 공을 이루어 종묘와 사직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으며 문천(文闡, 문종)이 태평한 통치를 펼치니 백성과 만물이 모두 빛났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이 혼미하여 권신(權臣)이 정권을 멋대로 하면서 군병(軍兵)을 끌어안고 왕위를 노리게 되었으니 인묘(仁廟, 인종) 때 이것이 한번 벌어지자 순(順)함을 범하고 보검인 태아(太阿)를 거꾸로 잡히듯이 신하가 정권을 잡는 일[而倒大阿]이 일어났고, 의종(毅宗) 때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일들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크고 간악한 권신들이 번갈아가며 세력을 잡고서 임금을 앉히기를 바둑이나 장기 두듯이 하였으며, 강성한 적들은 번갈아 쳐들어와 백성들을 풀이나 갈대같이 베어버렸지만 순효(順孝, 원종)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대란을 평정함으로써 겨우 선조들이 물려준 왕업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충렬왕(忠烈王)은 연회를 열며 간신 무리와 어울리다가 결국 부자간에 서로 불화를 얽었으며, 또한 충숙왕(忠肅王) 이래로부터 공민왕(恭愍王)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변고가 자주 일어나 쇠미해짐이 더욱 심하였고, 위조(僞朝, 우왕)가 들어서 마침내 뿌리가 다시 오그라들어 역수(歷數)가 마침내 참 주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태조 강헌대왕(太祖 康獻大王)께서는 용맹과 지혜를 하늘이 내리셨고 덕업(德業)을 날로 새롭게 하셨으며 성스러운 무공을 펴시어 전란을 평정하고 백성들을 다독이시어 천명을 잡으시고서 왕위에 올라 나라를 여셨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고려의 사직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역사의 기록만은 사라지게 할 수 없으므로 〈태조께서〉 사관에게 명하여 붓을 잡게 하셨는데 『자치통감(資治通鑑)』과 같은 편년체(編年體)를 모본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태종(太宗)께서 왕위를 이어 받으시고 재상들에게 맡겨서 교정하였지만 집필자가 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책은 결국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세종 장헌대왕(世宗 莊憲大王)께서는 선왕(先王)의 뜻을 이어받아 문치(文治)와 교화(敎化)를 펴시는 한편, 사서(史書)를 편찬하는 이들에게 모름지기 모든 사항을 두루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여 다시 사국(史局)을 열어 편찬하고 다듬으라고 거듭 명하셨습니다. 이왕에 나온 기록은 차례가 정확하지 못하고 또한 누락된 것이 많으며, 더구나 편년체(編年體)는 본기(本紀), 열전(列傳), 연표(年表), 지(志)와는 달리 사실을 기록함에 그 본말(本末)과 시종(始終)을 다 싣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명하시어 찬술의 임무를 더하였던 것입니다. 범례(凡例)는 모두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를 본받았고 그 큰 줄기는 낱낱이 전하께 아뢰어 재가를 받았습니다. 본기(本紀)라는 말을 피하여 세가(世家)라고 한 것은 명분(名分)의 중요함을 보이려는 까닭이며 위왕(僞王) 신씨(辛氏)를 열전(列傳)으로 내린 것은 그들이 참람하게도 왕위를 도적질한 것을 엄격히 징벌하려는 까닭입니다. 충신과 간신, 사악한 이와 올바른 이를 내용별로 나누고 제도와 문물을 종류별로 모았으니 계통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연대도 상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적(事跡)은 다 상세히 밝히는 데 힘썼으며 빠지거나 틀린 것은 반드시 고쳐 바로잡기를 기약하였습니다. 아아! 애통하게도 찬술이 미처 끝나기 전에 임금께서 돌아가시니, 저 정인지 등은 진실로 황공해 그저 거듭 머리를 조아릴 따름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전하께서는 국가의 원대한 대업을 계승하시어 큰 공렬(功烈)을 더욱 빛내시면서, 오직 정밀하고 하나같은 마음으로 성학(聖學)이 높은 경지까지 이르셨으며, 위대한 현명함을 잘 계승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선대의 업적을 이어 현창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전대의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시고 미천한 저희들로 하여금 완성시킬 책임을 맡기시니 신 정인지 등은 얕은 재주로서 외람되게 극진한 책무를 부여받아 패관(稗官)의 잡된 기록도 모으고 비부(秘府)의 옛 장서(藏書)들도 들추어 세 해 동안의 노력을 다하여 간신히 한 왕조의 역사를 완성하였습니다. 전대의 유적(遺跡)을 상고하여 겨우 필삭(筆削)의 공정함을 남겼고 뒷사람들에게 밝은 거울을 걸어놓아 선악(善惡)의 참모습이 묻히지 않기를 기약합니다. 〈저희들이〉 편찬한 『고려사(高麗史)』는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표(表) 2권, 열전(列傳) 50권, 목록(目錄) 2권으로 모두 합해 139권입니다. 삼가 갖추어진 초고 한 질을 전(箋)을 붙여 올립니다. 지극히 감격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신 정인지 등은 진실로 황공하여 그저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삼가 말씀 올립니다.
경태(景泰) 2년(문종 1, 1451) 8월 25일 정헌대부 공조판서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신 정인지 등이 전(箋)을 올립니다.

 

進高麗史箋

正憲大夫工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經筵春秋館事成均大司成鄭麟趾等, 誠惶誠恐, 稽首稽首, 上言. 竊聞, 新柯視舊柯以爲則, 後車鑑前車而是懲. 盖已往之興亡, 實將來之勸戒, 玆紬編簡, 敢瀆冕旒. 惟王氏之肇興, 自泰封以崛起, 降羅滅濟, 合三韓而爲一家, 舍遼事唐, 尊中國而保東土. 爰革煩苛之政, 式恢宏遠之規, 光廟臨軒策士, 而儒風稍興, 成宗建祧立社, 而治具悉備. 宣讓失御, 運祚幾傾, 顯濟中興之功, 宗祏再定, 文闡大平之治, 民物咸熙. 迨後嗣之昏迷, 有權臣之顓恣, 擁兵而窺神器, 一啓於仁廟之時, 犯順而倒大阿, 馴致於毅宗之日. 由是, 巨姦迭煽, 而置君如碁奕, 强敵交侵, 而刈民若草菅, 順孝定大亂於危疑, 僅保祖宗之業. 忠烈昵群嬖於遊宴, 卒構父子之嫌, 且自忠肅以來, 至于恭愍之世, 變故屢作, 衰微益深, 根本更蹙於僞朝, 歷數竟歸於眞主. 我太祖康獻大王, 勇智天錫, 德業日新, 布聖武而亨屯艱, 克綏黎庶, 握貞符而乘乾御, 肇造邦家, 顧麗社雖已丘墟, 其史策不可蕪沒, 命史氏而秉筆, 倣通鑑之編年. 及太宗之繼承, 委輔臣以讎校, 作者非一, 書竟未成.

世宗莊憲大王, 遹追先猷, 載宣文化, 謂修史, 要須該備, 復開局, 再令編摩. 尙紀次之非精, 且脫漏者亦夥, 况編年有異於紀傳表志, 而敍事未悉其本末始終, 更命庸愚, 俾任纂述. 凡例皆法於, 大義悉稟於聖裁. 避本紀爲世家, 所以示名分之重, 降僞於列傳, 所以嚴僭竊之誅. 忠佞邪正之彙分, 制度文爲之類聚, 統紀不紊, 年代可稽. 事跡務盡其詳明, 闕謬期就於補正. 嗟玉署鈆槧之未訖, 而鼎湖弓劒之忽遺, 臣麟趾等, 誠惶誠恐, 稽首稽首. 恭惟主上殿下, 誕紹宏圖, 增光洪烈, 惟精惟一, 聖學極於高明, 丕顯丕承, 至孝彰于繼述. 念前史之未就, 令微臣以責成, 臣麟趾等, 俱以譾才, 叨承隆寄, 採稗官之雜錄, 發秘府之故藏, 祗竭三載之勞, 勒成一代之史. 稽遺跡於前代, 僅能存筆削之公, 揭明鑑於後人, 期不沒善惡之實. 所撰高麗史, 世家四十六卷, 志三十九卷, 表二卷, 傳五十卷, 目錄二卷, 通計一百三十九卷. 謹具草成帙, 隨箋以聞. 無任激切屛營之至, 臣麟趾等, 誠惶誠恐, 稽首稽首, 謹言.

景泰二年八月二十五日, 正憲大夫工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經筵春秋館事成均大司成鄭麟趾等, 上箋.

 

- 국사편찬위원회 번역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