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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 마당

[조선]팽형(烹刑)을 받아야 할 청렴

작성자송영심|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청렴은 목민관(牧民官)의 본분이고, 모든 선(善)의 근원이며, 모든 덕(德)의 뿌리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백성을 제대로 돌볼 수 있었던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


  우리 조선에 청백리(淸白吏)로 뽑힌 분이 통틀어 110인인데, 태조(太祖) 이후에 45인, 중종(中宗) 이후에 37인, 인조(仁祖) 이후에 28인이다. 경종(景宗) 이후로는 이렇게 뽑는 일마저 끊어져서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은 더욱 곤궁하게 되었으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는가. 4백여 년 동안 관복을 갖추어 입고서 조정에 벼슬한 자가 몇 천 몇 만이나 되는데, 청백리로 뽑힌 사람이 겨우 이 정도에 그쳤으니, 역시 사대부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상산록(象山錄)』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청렴에 세 등급이 있다. 최상의 청렴은 봉급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먹고 남는 것이 있더라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에는 한 필의 말로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떠나는 것이니, 이것이 옛날의 이른바 염리(廉吏)라는 것이다. 그 다음 가는 청렴은 봉급 외라도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는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는 것이 있으면 집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이 중고(中古)의 이른바 염리(廉吏)라는 것이다. 가장 아래 등급의 청렴은 이미 규례(規例)가 된 것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되, 아직 규례가 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먼저 먹어서 화를 당하는 첫 사례가 되지 않으며, 향임(鄕任)의 자리를 팔지 않고, 재감(災減)을 훔쳐 먹거나 곡식을 농간하지도 않고, 송사(訟事)와 옥사(獄事)를 팔아먹지 않으며, 세(稅)를 더 부과하여 남는 것을 착복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의 이른바 염리라는 것이다. 모든 나쁜 짓을 갖추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세태가 다 그러하다. 최상의 청렴이 본디 좋지만,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다음 가는 청렴도 괜찮다. 이른바 가장 아래 등급의 청렴은 옛날에는 반드시 팽형(烹刑)*을 당하였을 것이니, 무릇 선을 즐기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결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팽형(烹刑):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형벌이다. 중국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의 아(阿)라는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가 악정(惡政)을 일삼고도 임금의 측근에게 뇌물을 써서 선정(善政)을 베푼 것으로 평가받았다가 결국 발각되어 팽형을 당한 일이 있었다.

 

정직은 통치자의 근본 의무이며, 모든 선행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통치자는 없었습니다. 우리 왕조에서는 정직한 관리 100명을 선발했는데, 태조 재위 이후 45명, 중종 재위 이후 37명, 인종 재위 이후 28명이었습니다. 경종 재위 이후 이러한 선발이 중단되면서 나라는 점점 가난해지고 백성의 부담은 가중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한탄이 아닙니까?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천만 명이 조정에 봉사했는데, 고작 이 정도 인원만 선발되었다니. 이는 사대부 관료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향산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직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황제가 봉급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다. 남는 음식은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귀환하는 날에는 궁핍하게 홀로 지내야 한다. 이것이 옛 사람들이 말하는 정직한 관리였다. 둘째는 정식으로 임명된 관리는 봉급 외에 남는 음식을 먹고, 정식으로 임명되지 않은 관리는 먹지 않는 것이다." 남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는 가문의 사람들이며, 이들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하는 정직한 관리였다. 가장 낮은 계층의 관리들, 즉 정식 직함이 없더라도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도 남은 음식을 먹는다. 정해진 규칙을 어기더라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집이나 관직을 팔지 않고, 재난에서 곡식을 훔치지 않고, 소송이나 감옥을 매매하지 않고, 세금을 올리거나 횡령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직한 관리들이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오늘날 만연한 부패한 관리들이다. 최고가 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차선책도 괜찮습니다. 가장 비천한 자들은 옛날에는 산 채로 끓여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선을 기뻐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정약용 (1762-1836) 『목민심서 (牧民心书)』 『율기 (自律) 청심 (淸心)』

 

  다산(茶山) 정약용은 강진(康津) 유배지에서 지방관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모아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편찬하였다. 그 서문에서 “백성을 돌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의 명칭을 ‘심서’라고 지었다.”라고 밝혔다. 유배라는 굴레에 매여 포부와 이상을 실현할 수 없었기에 저술을 통해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다산은 목민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청렴을 제시하면서, 청렴하지 못한 사람이 백성을 제대로 돌보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하였다.

  청렴을 관리들에게 장려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청백리’이다. 조선 중종 연간에 처음 시행되어 순조 연간까지 지속되었다.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희(黃喜), 유관(柳寬), 맹사성(孟思誠), 송흠(宋欽), 박상(朴祥), 이언적(李彦迪)과 같은 분들이 알려져 있다. 이중에 성종 조 이전 인물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제도를 시행하던 초기에 ‘청백리’와 ‘염근리(廉謹吏)’라는 명칭을 혼용하다가, 작고한 사람을 ‘청백리’로, 생존해 있는 사람을 ‘염근리’로 구분한 것은 숙종 때에 이르러서이다. 청백리의 자손은 관리의 임용에 우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백리로 선발된 당사자는 영예로운 이름이 후대까지 칭송되었다.

  공식적인 국가 기록인 ‘청백리안(淸白吏案)’이 지금은 전하지 않아 선발되었던 청백리의 정확한 숫자와 명단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 다산은 청백리로 선발된 인원을 110인이라고 하였는데, 다산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홍경모(洪敬謨)가 편찬한 『大東掌攷(대동장고)』에는 116인의 명단을, 『청선고(淸選考)』에는 186인의 명단을, 『전고대방(典故大方)』에는 218인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청선고』와 『전고대방』에 수록된 청백리는 앞의 두 기록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범위를 대상으로 삼았으나, 청백리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두 책이 20세기 초 사회가 혼란했던 시기에 편찬되면서 부풀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기록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500년이라는 장구한 조선의 역사에 비하면 너무도 적은 숫자이니, 다산이 사대부의 수치라고 한탄한 것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상산록』은 다산이 유배되기 전인 1798년 무렵에 곡산 부사(谷山府使)로 봉직하면서 지은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다산이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청렴은 녹봉 이외의 것은 일절 취하지 않고, 남은 녹봉이 있더라도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 가져가지 않으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말 한 필만 타고 소박하게 떠나는 정도가 되어야 했다. 그다음 수준의 청렴은 명분이 정당하다면 녹봉 이외의 것이라도 취하여 쓰고, 취하여 쓰다가 남은 일부는 자기 집으로 보내는 정도를 제시하였다. 가장 아래 등급의 청렴은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라면 취하고, 관행으로 굳어지지 않은 것을 남보다 먼저 취하다가 처벌받는 신세가 되지 않으며, 뇌물을 받고 향직과 향임을 파는 짓을 하지 않고, 재해로 인해 감세해준 곡식을 빼돌리는 짓을 하지 않고, 송사와 옥사를 판결할 때 뇌물을 받는 짓을 하지 않고, 부당한 세금을 더 부과하여 착복하는 짓을 하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다산은 이 세 가지 등급의 청렴에 따라 각각 ‘옛날의 염리’, ‘중고(中古)의 염리’, ‘오늘날의 염리’로 나누었다. ‘오늘날의 염리’라고 하는 것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산의 기준에서는 옛날에는 솥에 삶아 죽이는 형벌을 면치 못할 정도의 중대한 범죄자였다. 관행이라는 명목 아래 부정한 뇌물을 받으면서 처벌을 받을 행위만 교묘하게 피하는 최소한의 청렴이었기 때문이다. 다산의 이러한 시각은 옛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회복하려는 유교의 상고주의(尙古主義)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백성에 대한 수탈과 매관매직이 만연했던 조선 후기의 작태를 준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지방의 행정을 맡아 지역민의 삶을 돌본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의 목민관과 다름이 없다.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거나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종종 보아왔다. 다산의 기준에서 보자면 최소한의 청렴을 행하는 목민관조차 팽형을 받아야 마땅한데, 대놓고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탐관오리는 어떤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인가. 얼마 전에 지방자치단체장을 다시 뽑는 선거가 있었다. 새로 선출된 일꾼들이 다산의 말씀에 유념하고 청렴에 힘써 역사에 길이 남을 ‘청백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쓴이 양기정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문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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