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활동하기 딱 좋은 가을이 시작됐다. 걷기 좋은 요즘, 성북구를 거닐며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특히 역사와 문화적 의미까지 담고 있는 곳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성북구의 대표적인 한옥촌은 여러 채의 한옥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한옥 마을과는 좀 다른 매력이 있는 장소다. 한옥 한 채마다 갖고 있는 문화·역사적 배경을 되새기며 걷다 보면 어느새 옛 문인들의 작품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단편 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는 상허 이태준의 가옥이다. 이곳은 그의 당호 '수연산방(壽硯山房)'의 의미처럼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다. 김기림,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 문인들은 이곳에서 시와 문학과 삶을 논하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얼핏 전통 한옥 같이 보이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한 건물에 배치한 1900년대 개량 한옥이다. 특히 앞뜰 풍경을 액자 속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는 누마루가 일품이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한옥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태준 가옥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또 다른 가옥 한 채를 볼 수 있다. 바로 서울민속자료 10호로 1900년대 조선 후기 상인인 이종석이 지은 별장이다. 가옥의 구조를 통해 당시 규모가 큰 상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 역시 '수연산방'과 함께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장소로, 특히 한국 전통의 멋이 물씬 풍기는 가옥 주변 경관들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이종석 별장 구경까지 마쳤다면, 이제 인근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에 들려볼 차례다. 심우장은 1984년 서울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4월 8일 대한민국 사적 제550호 승격된 곳이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 시인이 3.1운동 옥고를 치르고 거처가 없을 때, 주위의 도움으로 마련된 집으로 시인의 독립을 염원했던 투쟁 정신이 그대로 깃든 곳이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없고, 침략자의 본부인 조선 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남향 건축 구조를 무시하고 '북향집‘을 고집했던 한용운 시인은 이곳에서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유난히 추웠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문화예술적 역사를 품고 있는 한옥 가옥들을 둘러보고 나니, 성북동 한옥촌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걷기 좋은 9월, 성북동으로 나홀로 한옥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잠시 쉬어가는 '쉼표' 같은 시간이 될 것 같다.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이태준 가옥 전경 ⓒ박우영
소설가 이태준 선생이 월북하기 전까지 살았던 고택의 입구 ⓒ박우영
'문인이 모이는 산속의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은 현재 한옥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우영
입구에 들어서니, 이태준 선생이 다양한 문학 작품을 집필한 곳임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석이 보인다. ⓒ박우영
'수연산방'은 전통 한옥 구조와는 다르게 중앙 대청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건넌방, 오른쪽에 안방을 두어 T자형을 구성되어 있다. ⓒ박우영
건넌방과 대청(가운데), 누마루에는 당호와 누호를 뜻하는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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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박우영
내손안의 서울 202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