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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마샘 쉼터

[스크랩] 트로트로 세상 죽이기/ 임종찬

작성자새야|작성시간20.05.15|조회수35 목록 댓글 0

트로트로 세상 죽이기

 

나는 평생을 한국 전통시인 시조 쓰기를 하긴 했지만 알아줄만한 작품 하나 못 남긴 주제에 시인으로 행세해 왔고, 대학에선 시원찮은 문학비평으로 교수란 이름으로 지내왔으니 부끄럽지요. 시조 쓰기(다른 장르도 그렇지요.)는 자신의 생활 체험을 덧대고 쪼개고 그럴듯하게 꾸미어 다른 사람의 체험과 대질리게 하는 공명 수단입니다. 문학비평은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문학작품)의 포장지를 뜯어 내용을 뒤적거려 질량과 가치를 저울질하는 행위입니다.

화가 또는 그림 비평가 역시 이런 행위와 먼 거리에 있지 않습니다. 음악가와 이를 비평하는 비평가 역시 이와 비슷하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음악은 소리를 매개하기 때문에 문학과 그림과는 영 다릅니다. 음악은 침묵 뒤에 아니면 침묵에 선행하는 울림의 의도적 배분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다르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침묵하는 그 순간에도 음악의 울림은 존재할뿐더러 이것이 다른 장르에 존재하는 그것과도 다르지요.

새들 중 수놈은 장가들기 위해 암놈을 부르는 소리를 냅다 질러댑니다. 이걸 새들의 노래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수놈의 노래(라 합시다.)를 들은 암놈은 수놈이 어느 위치에 있고, 노래 소리의 크기로 미루어 또는 지속되는 시간으로 보아 신체상태가 어떤지를 알아볼 뿐 아니라, 다른 수놈보다 얼마나 멋지게 소리를 내느냐를 판단하고 난 뒤 찾아가 몸을 맡깁니다.

광고는 광고비용을 많이 들여야 효과가 큰 법 아닙니까. 수놈은 천적에게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면서 소리를 질러대어 많은 암놈들에게 나는 이런 놈이다를 광고해야 짝짓기의 성공 확률이 높다 이 말이지요.

인간은 어떤가. 모든 걸 성 문제로 해석하려 했던 프로이드의 이론에 빗대면 음악은 그것이 기악이든 성악이든 자기 존재감을 동성보다는 이성에게 호소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래 역사 중에는 동서고금으로 가장 많은 것이 사랑노래 아닙니까.

남자든 여자든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많습니다. 유명 가수일수록 도덕적 기준이 무디어 그런지는 몰라도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악가 Pavarotti는 물론이고, 대중가수 Elvis Presley, Cliff Richard 역시 여자 편력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인기가수들은 말하지 말까요?

몇 년 전 부엌 주방용 기구들을 동원해서 특히 도마와 식칼을 위주해서 리듬을 만들어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난타(亂打)’가 있었지요. 이것은 한국 전통 음악인 사물놀이 리듬에다가 주방을 무대공간으로 하는 비언어극이면서 음악입니다. 세상에 주방도구로 음악을, 무언극을 만들다니. 이번엔 방탄소년단’(이를 줄여 BTS) 일곱 미소년들이 세계 대중음악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소위 K-POP의 전성기를 열었지요. 난타는 노래가 없고 주방기구를 악기로 등장시키면서 비언어극으로 대중을 놀라게 하였다면, BTS 미소년들은 단체무용과 노래로 세계인들을 너무 놀라게 했습니다.

노래하고 춤을 춘다면 조직화된 분노, 조직화된 애도, 조직화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음악에 맞춘 춤은 이중 동시성의 한 예다. 공간에서 정형화된 동작과 음악의 시간제한 사이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신체 동작들 사이에 나타나는 동시성이다.(모든 시작의 역사:위르겐카우베 저, 안인희 역, 김영사 2019, p 154)

 

음악은 통제되고 절제된 흥분과 잠복된 열정의 하모니지요. 노래하기는 동시에 자기 노래의 듣기 행위라 자기 위로를 동반합니다. 청중 역시 열정을 얻기 위한 기대치로 음악에 접근하지요.

이참에 60년대 세계를 놀라게 한 Beatles 이야기를 곁들여 봅시다. 네 명의 장발의 미소년들(이 사람들 때문에 한국에서는 장발이 유행했고, 장발은 퇴폐풍조라 하여 순경들이 가위를 들고 거리에 나서야 했습니다.)이 연주하는 모습에서 세계인들이 놀라워했습니다. John Lennon, Paul McCartney, Harrison, Ringo Starr 이들 넷 중에 세 명의 기타연주와 Ringo Starr의 드럼으로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등의 노래를 들었던 나 또래 세계 젊은이들은 정신이 뿅 갔드랬습니다.

얼마 전 미스 트롯의 열풍이 대단했습니다. 송가인, 정미애, 홍자, 정다경, 김나희 이 대단한 여인들의 노래솜씨에 우리들은 흥분했지요. 이런 노래솜씨가 이제사 나타나다니. 맨날 TV에서 보던 얼굴 듣던 노래를 초월하였으니 흥분할 수밖에요. 이번에는 미스터 트롯이 나타났습니다. 임영웅, 이찬원, 영탁, 정동영, 김호중, 김희재, 장민호 여러분들이 내는 미성의 트로트 멜로디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참에 이런 걸 제안하고 싶습니다. 남성만이든 여성만이든 아니면 혼성이든 이분들이 단체 목소리로 세계무대에 쓰윽 나서는 것 이것 어떻습니까. 그것도 트로트로 말입니다. BTS는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한 노래이지만 한국적 멜로디의 음악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이라면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트로트라는 음악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확 들더라 이 말입니다. 트로트는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 또는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를 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독특한 음계를 지닌 노래라나요. 이건 일본 대중가요 엔카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출발이 그렇다 해도 이미 한국 특유의 방식과 내용으로 발전한 음악이 되어버렸지요. 마치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소네트라는 시는 영국에 와서 활짝 꽃 피웠기 때문에 소네트 하면 영국을 연상하듯이 이젠 트로트는 한국의 노래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 알면 그리 되는 것 아닙니까.

미스 트로트 또는 미스터 트로트 여러분들이 트로트 독창으로 한국민을 사로잡았으니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합창으로 세상을 아주 죽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지요. Beatles 고작 네 사람이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다면 한국의 미남 미녀 가수 14명의 혼성 4부 합창, 이렇게 되면 이건 세상을 아주 죽여주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럴까요. ABBA는 고작 남자 2명 여자 2명만으로 스웨덴의 국격을 높힌 것 아시지 않나요.

요즘 우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영 기분 잡쳐 지냅니다. 이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화나게 만든 사람들의 등장 때문에 여러분도 엄청 화나있을 겁니다. 기부금을 어디 어떻게 썼는지 밝히지 않는다면 기부자의 고마운 뜻을 모욕하는 겁니다. 세상에 무슨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나의 다혈질 체질 때문일까요. 다행히 무관중 야구대회가 열리어 조금 위안 받고 있긴 하지만 기분이 영 안 좋은 건 사실입니다. 이런 기분을 아는지 재난지원금 받아온 우리집 할매가 열 받은 늙은 할배 위로한다고 맥주 한 박스를 사왔네요. 할매가 전에 없이 고마워 오늘 저녁은 그까짓 것 잊고, 미스 트로트와 미스터 트로트 가수들 미성을 들으며 한 잔 쭈욱 할 바로 그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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