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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억된 풍경, 단종을 그리다 - 《월중도》와 〈자규루도〉

작성자송영심|작성시간26.04.01|조회수1 목록 댓글 0

하은미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여전히 뜨겁다. 조선 제6대 국왕 단종(端宗, 1441∼1457)과 호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1,500만 명을 돌파하며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시 영화의 주요 배경인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에 남아 있는 단종 유배지의 자취와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조명하기 위해 장서각 소장 《월중도》를 특별 전시(~'26.6.26.)하고 있다.

 1791년경 제작된 이 8폭의 화첩은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라,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와 그를 기리는 조선 왕실의 기억을 담은 기록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종 복위 이후 영조와 정조 시대에 이루어진 영월 유적 정비 사업의 성과를 시각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왕실이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월중도》에는 단종의 능인 장릉을 비롯해, 유배지였던 청령포, 관풍헌(觀風軒), 자규루(子規樓), 사육신과 엄흥도 등의 위패를 봉안한 창절사(彰節祠), 시녀와 시종을 기리는 민충사(愍忠祠), 영월 읍치도와 영월도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한 왕의 유배와 죽음을 둘러싼 장소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월중도》는 기억의 지도를 펼쳐 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자규루도


 그런데 장서각에는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그림, 〈자규루도(子規樓圖)〉가 전하고 있다. 자규루는 원래 영월군수 신숙근(申叔根)이 지은 매죽루(梅竹樓)로, 영월부의 객관(客官) 옆에 위치했다. 단종이 청령포의 홍수를 피해 객관으로 옮겨 거처하던 시기에 이곳에서 소쩍새 소리를 듣고 「자규사(子規詞)」를 지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후 이 누각은 단종의 비애를 상징하는 장소로 기억되었다.

 1605년 홍수로 건물이 무너진 이후 민가가 들어서 정확한 위치조차 잊혔던 자규루는, 1791년 화재를 계기로 터가 드러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정조는 강원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에게 그 자규루의 터를 찾은 경위를 밝히고, 사원도형(祠院圖形)을 상세히 그려 올리며, 영월에 전해지는 사실을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제작된 그림이 바로 〈자규루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자규루도 (부분 확대)

〈자규루도〉에는 청령포 일대 단종의 유배지를 표시한 영조 연간의 비각과 금표비, 창절사와 배견루(拜鵑樓), 엄호장 정문(嚴戶長旌門), 관풍헌과 객사(客舍), 자규루, 영월부의 아사(衙舍), 단종을 모신 신하들을 기리는 민충사와 금강정(錦江亭), 낙화암(落花巖), 장릉 재실(莊陵齋室) 등 단종과 관련된 주요 장소들이 폭넓게 담겨 있다. 이러한 구성은 《월중도》와 대부분 일치하는데, 이를 통해 〈자규루도〉가 《월중도》보다 앞서거나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림의 제목이 〈자규루도〉임에도 불구하고, 자규루는 화면의 한쪽에 작게 배치되고 대신 영월의 전체 지형과 단종 유적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정 건물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단종과 관련된 기억의 공간 전체를 조망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와 비교하여 《월중도》, 〈자규루도〉에서 관풍헌과 실제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규루를 크게 독립된 공간처럼 묘사한 점 역시, 정조의 명으로 이루어진 복원 사업의 성과를 더욱 강조하려는 시각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월중도 중 자규류도


 이러한 점에서 〈자규루도〉와 《월중도》는 단순한 경관 기록을 넘어, 조선 왕실이 단종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림 속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기보다, 기억되어야 할 과거를 재구성한 결과물에 가깝다. 오늘날 영화를 통해 다시 소환된 단종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기억의 재현’이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그림들을 통해 한 왕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를 오래도록 기억하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함께 마주하게 된다.


☞ [디지털 장서각] 《월중도》원문이미지 보기
☞ [디지털 장서각] 《자규루도》원문이미지 보기

 

- 한국학 중앙 연구원 소식지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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