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이다.
삼각산으로 불린 이유는 세개의 높은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이다.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 문화재청, 문화유산채널
서울을 도읍지로 자리 잡게 한 진산(鎭山)이 북한산이다. 이 산은 화산(華山) 또는 삼각산으로도 통용하는데, 오늘날 사용 빈도에서 알려지기로는 북한산이 첫째이고, 둘째가 삼각산이다. 북한산은 광주산맥의 말단에 해당하여 사패봉(賜牌峰) · 도봉산 · 비봉(碑峰) · 인왕봉으로 이어진다. 대개의 산지는 크고 작은 하천이 발원하는 분수령이고, 다른 한편으로 행정구역의 경계선이 되므로, 서울과 경기도의 분계선은 북한산계를 바탕으로 삼는다.
《동국여지승람》에 쓰기를 ‘분수령에 잇닿은 봉우리와 겹겹한 산봉은 높고 낮음이 있다. 빙빙 돌아 양주 땅의
서남쪽에 이르러 도봉산이 되고, 삼각산이 되므로 실은 이것이 서울의 진산’이라 했다.
세 봉우리 깎아 내민 것 아득한 태고적이다.
신선의 손바닥이 하늘 가리키는 그 모습 천하에 드물리라.
소년시절에 벌써부터 이 산의 참 모습을 알았거니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등 뒤엔 옥환(玉環)이 살쪘다고 하네
- 이색(李穡)
여기에서 삼각산의 범위는 도봉산까지 포함하며, 세 봉우리가 모나게 솟아 있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삼각산이 흔하게 사용된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백운대 · 인수봉 · 국망산 등 세 봉우리가 뛰어나게 아름다운 이른바, 수봉(秀峰)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당시 예조판서로서 끝까지 항전을 주창했던 김상헌(金尙憲)이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읊은 <충의가(忠義歌)>에도 삼각산은 드러나고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김상헌(金尙憲)
이것은 서울의 상징물로 삼각산과 한강수를 제시한 사실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오홍석 저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부연사
三角山
白雲臺
人壽峰
萬鏡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