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의 한자는 點心
점심의 유래는 두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래된 예로 역사 전공자는 아래 글을 참고하라.
점심은 본래 불교에서의 수행을 의미하는데, 허기질 때 마치 마음에 점을 찍듯이 소량의 곡물을 간단히 챙겨먹음으로써 허기를 누르고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것을 의미했다(『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따라서 점심은 새벽부터 밤까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었다. 실제로 16세기 중엽에 이문건(李文健: 1494-1567)이 쓴 『묵재일기(默齋日記)』에는 새벽점심, 아침점심, 낮점심, 저녁점심, 밤점심과 같이 다양한 시간대에 먹은 점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익(李瀷: 1681-1763) 또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소식점심(小食點心)에 대해 논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당나라 정삼(鄭傪)과 그 부인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른 새벽에 소식(小食, 적게 먹는 것)하는 것을 점심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시간대와 상관없이 소량의 곡물을 챙겨먹는 것을 의미하는 점심이라는 용어가 후대로 오면서 ‘낮에 먹는 끼니’를 뜻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오늘날과 달리, 대체로 아침과 저녁식사를 기본으로 하는 하루 두 끼 식사를 관례로 삼았다(『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그러나 경제적 사정이 허락할 경우 봄에서 가을까지 낮이 길어지는 시기나 힘든 노동을 한 때에는 아침과 저녁식사 중간에 소량의 곡물을 챙겨먹었고, 이를 낮에 먹는 점심이라 하여 ‘낮점심’으로 불렀다. 그러나 성호 이익이 살았던 18세기 무렵이 되면 점심이라는 말이 아예 오찬(午餐)의 의미로 변용되었고, 식사량도 마음에 점을 찍는 소식(小食)의 수준에서 대식(大食)으로 변화되었다. 점심이 더 이상 점심(點心)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점심은 소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낮에 대식을 하면서도 점심이라 한다며 이러한 세태를 꼬집었다. 이와 같은 비판적 시선의 기저에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검박한 생활을 추구했던 유학자의 삶의 자세가 자리하고 있었다.
글쓴이: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양미경
고려 시대에는 점심을 먹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근거는 1123년 6월 고려의 수도 개경에는 송나라 황제 휘종이 보낸 사절단[國信使] 을 보냈는데 사신 서긍(1091~1153)은 고려에서 한달을 보내면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고려도경)을 썼다. 40권에 이르는 이 책에 '고려 사람들은 하루에 두끼만 먹는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점심에 대한 또 한 예는 남송 시대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한세충의 부인 양홍옥(梁紅玉)의 일화가 아래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중국(中國) 남송(南宋) 때에 한세충(韓世忠)이라는 장군의 아내였던 양홍옥(梁紅玉)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금나라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장군의 아내가 손수 만두를 빚어 군사들에게 나눠주었다. 하지만 군사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넉넉히 나눠줄 수가 없어 “만두의 양이 많지 않으니까 마음(心)에 점(點)이나 찍으십시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http://www.dg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8
딤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역시 한자는 點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