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교사' 이후, 메일함 열기가 두렵다

작성자선비|작성시간11.06.27|조회수24 목록 댓글 0

 

'미친개 교사' 이후, 메일함 열기가 두렵다

[주장] 매 없인 교육 불가능하다는 인식부터 허물어야

11.06.27 15:49 서부원 (ernesto)

 

'미친개 교사'라는 자극적인 표현 때문인지 기사('미친개' 교사가 '엎드려뻗쳐' 교사에게 드립니다)가 나간 후 며칠 동안 개인 이메일이 '폭격'을 맞았다. 애초 어느 정도 욕먹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기사에 딸린 수백 건의 댓글을 넘어 이메일까지 초토화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체벌 문제가 학교 현장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 어떤 사안보다 뜨거운 관심사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기사 내용에 100% 공감한다며 격려해준 분들도 있었지만,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갈 데까지 간' 아이들을 만나거나 특성화고(전문계고)에 근무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충고부터, 다짜고짜 '배부른 소리 하지마라'며 비아냥거리는 글을 접할 때면 가슴이 무척 아팠다.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자신을 학부모로 소개하고 쓴 글들이 주로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근무 기간과 함께 당당히 자신을 교사로 밝힌 분들은 대개 현실감이 다소 부족한 '공자왈 맹자왈'이라고 꼬집었다. 간혹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악플'도 있었지만, 어쨌든 얼치기 교사로서 다시 한 뼘 성숙하는 좋은 기회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진지한 반론과 지적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장을 보내 인정할 건 하고 고마움도 표했지만, 그래도 아니다 싶은 주장들은 이곳을 빌어 발췌 정리해 다시 용기를 내 적어보려 한다. 솔직히 괜한 짓 같아 적이 두렵지만, 어차피 치열하게 토론이 불붙은 마당에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올려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당사자로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는 없었다.

 

교사 앞에서 욕지거리... 그래도 체벌은 안 된다

 

우선, 가해 교사의 입장을 전혀 감안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은 일방적인 글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받았다. 기사 내용 중 '정중한 조언'이라는 비아냥거림은 그를 두 번 죽이는 잔인한 짓이라는 거다. 또, 기사로 인해 피해 학생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고 교사의 체벌만 문제 삼는 상황이 돼 버렸다는 점을 크게 문제 삼았다.

 

구체적인 정황도 모르는 채 그 교사를 탓한 건 분명 경솔하고도 주제넘은 짓이긴 하다. 다만, 피해 학생과 그의 부모가 공개한 시퍼런 멍 자국 사진을 접하며, 단지 그 교사의 '옷깃을 잡고 조금 흔들었다'고 말하는 당당하지 못한 태도를 같은 교사로서 납득할 수 없었다. 교사도 인간인데, 차라리 '아이의 불손한 태도에 다소 감정적으로 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또,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막장'이 돼 간다며, 이른바 '개념 없이' 막나가는 경우 체벌은 유일하다시피 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정말 많았다. 하긴 상담은커녕 통제 자체가 어려운 아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수업 중 아예 엎드려 자거나 휴대전화 문자질하는 경우는 다반사고, 흡연과 음주에다 심지어 교사 앞에서 욕지거리를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교사로서 익히 겪어온 바, 그 모든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막장'이면 때려도 되나. 대부분의 교사들, 아니 아이의 부모들조차 때려서라도 잘못된 습관과 행동은 고쳐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서너 살배기 얘들이라면 모를까, 단언컨대, 때린다고 고쳐질리 없다. 만약 매 맞은 직후 두 손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면, 그저 두려움에 주눅이 들어 반성하는 시늉만 한 것일 뿐이다.

 

때려서 고쳐질 거라면 말로 해도 고쳐지고, 말로 해서 고쳐지지 않는 거라면 때려서도 절대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금언은 기실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실효적인 관점에서 적확하게 지적한 것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체벌은 그 자체로 반교육적이며 그 어떤 효과도 없다는 선언이다.

 

하긴 <서당>이라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예로 들며 체벌의 '힘'을 부정하지 말라는 글도 있었다. 서양 속담에서조차 '회초리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며 동서고금을 통해 보듯 체벌이라는 교육 수단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영어 속담을 '직역'해 이해한 경우다. 그러나 이미 시대가 변했고, 교육환경과 내용,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변했는데, 이를 애써 무시한 채 견강부회하는 주장 아닐는지.

 

한편, 전혀 동의할 수 없음에도, 자칫 '이상주의자'로 치부될 것 같아 무척 조심스러운 지적도 있었다. 체벌은 다수의 다른 선량한 아이들에게 미칠 피해를 미리 차단하고,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솔직히 충분히 공감이 되고, 초임 시절 그토록 가혹하게 매질을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한두 녀석 때문에 수업 자체가 망가지는 상황이라면 매를 들지 않을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체벌이 아닌 다른 방안이 고민되어야 한다. 만약, 위의 사례에서처럼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체벌을 당해야 한다면, 체벌이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반성하게 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교정 수단이기보다, 그저 선량한 아이들로부터 나쁜 아이를 '격리'시키는 도구라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더욱이 그러한 이른바 '시범 케이스' 논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활지도의 철칙을 스스로 허물게 된다.

 

교사와 학부모는 그렇다 쳐도, 놀랍게도 체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이유인즉 공부 등 자신들의 학교생활이 방해를 받기 때문이라는 거다. 대개 그들은 공부 잘 하고 예쁨 받는 '범생이'들인데, 어쩌면 애초 체벌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가 학교 내 '범생이'들을 나쁜 아이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배제'를 목적으로 묵인돼온 것인지도 모른다.

 

 

매 없이는 교육 불가능? 인식 먼저 허물어야

 

어쨌든 수많은 교사들이 학급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체벌이 개별 아이들에 대한 교육 방편이 아닌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관리와 통제 수단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이 이럴진대, 체벌을 당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그것이 '사랑의 매'였을 것이라며 교사들을 과연 두둔할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즉흥적인 체벌이 아닌,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격리 장치'가 학교 안팎에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즘 들어 부쩍 늘고 있다는 주의력 결핍에 따른 과잉행동장애(ADHD)나 틱 장애 학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라든가, 이른바 '막장' 아이들을 위한 전문 상담교사를 확충하고, 나아가 시급히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등의 실질적인 방안이 절실하다.

 

아예 체벌 교사를 나무라거나 찬반을 따지기 전에 제대로 된 대안 먼저 제시해 보라는 이들도 있었다. 현직 교사들로 보이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전국의 많은 학교에서 체벌의 대안으로 활용하고 있는 상벌점제를 두고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고 못 박았다. 지금껏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으로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내놓은 어설픈 대안과 호사가들의 '토론을 위한 토론'이 우리 공교육을 더욱 황폐화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확실한 대안이 나올 때까지 체벌을 용인하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솔직히 필자 또한, 그 동안 숱하게 매를 들었던 과거의 행태를 반성하며 그 누구보다 깊이 고민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여전한 얼치기다. 그저 교사회와 더불어 학생들의 자치조직을 법제화하고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있어 학부모의 책임성과 권한을 제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학생회가 교사회와 함께 학교운영의 한 축으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방적인 체벌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또, 학부모들이 교통 봉사나 식품 검수 등의 단순히 품을 파는 역할을 넘어 학교운영위원회는 물론 교내 학생징계위원회 등의 기구에 폭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학생들 스스로도 어디까지나 지도편달 받아야 할 피교육자로만 여기고,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학교에 온전히 일임한 채 학교에 찾아가는 것 자체를 무척 꺼린다. 교사들 또한 학부모의 학교 방문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학교 교육에 대한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어쨌든 학교 내 체벌이 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 머지않아 '확실한' 대안은 나오게 돼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교사들 사이에 매 없이는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존의 체벌 의존적인 정서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현실성이 없는 이상적인 대안이라고 치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교사가 학생 때리면 '교육', 학생이 교사 때리면 '패륜'?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번 일을 통해, 수많은 교사들이 강조하는 '교권'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고민했다. 교권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건 대체 뭘까. 미래세대인 아이들이 정직한 시민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 이를 통해 보람을 얻고 교사로서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함 아닐는지. 아이들이 없다면 교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교사라는 '직업'을 잠깐 벗고 '인간'의 입장에 서보니, 교권보다는 인권이 먼저 떠오른다. 아이들에게도 교권에 상응하는 수업권이 있고, 그들 역시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교권이든 수업권이든 천부 인권의 하위 개념일 터, 거칠게 말해서, 교사가 아이를 '때린' 것과 아이가 교사를 '폭행'한 것을 두고 '교육'과 '패륜'으로 확연히 가르는 세간의 인식은 과연 온당한가라는, 자못 '위험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모두가 우려하는 공교육의 위기가 교권 실추로부터 온 게 아니라 아이들의 인권에 무감각해온 삭막한 교실로부터 비롯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과연 체벌의 허용이 교실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백 보 양보해도 체벌은 대증요법이라는 한계가 분명하다.

 

요컨대, 체벌은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 전통과 군사주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학벌사회와 그에 따른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 우리 사회의 부족한 인권의식, 그리고 교사들의 매너리즘을 숙주로 해서 관행처럼 자리잡아왔다. 체벌을 둘러싼 이번 논쟁이 어쩌면 곁가지만 흔들어대는 소모적인 다툼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사족 하나. '체벌이 금지된 까닭에 미국 교육이 무너졌다'는 황당한 주장에는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아냥거림에는 같은 교사로서 솔직히 고통스러웠다.

 

"교사가 무슨 성인군자인 줄 아는 모양이죠. 참된 교육자인 양 뽐내는 당신, 과연 얼마나 견뎌내는지 두고 봅시다."

 

순간 전국 수많은 교사들의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것 같아 적잖이 괴롭고 서글프다. 기사가 내려진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전자우편함 열어보기가 두렵다.

 

출처 : '미친개 교사' 이후, 메일함 열기가 두렵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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