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혁명 : 프로이트의 삶과 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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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트 로베르 (이재형 옮김), 정신분석 혁명 : 프로이트의 삶과 저작, 문예출판사, 2000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순서로 따지면 당연히 프로이트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라깡의 사상으로 가기 위한 선결조건임은 물론이다. 라깡 이론에 대한 오해를 피하고,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그의 작업의 모태가 되는 프로이트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프로이트를 라깡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의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부당한 일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된 정신분석 운동은 여러 가지 갈래로 나뉘었고, 라깡은 그 중 하나의 지류를 차지하고 있다. 라깡과는 프로이트의 사상 이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자아심리학 역시 하나의 지류를 이룬다. 프로이트의 사상을, 라깡을 통해서 보지 않고 직접 접함으로써 오히려 라깡의 견해가 프로이트에 대한 오해라고 판단하게 될지도 모른다(현재 내 상황에서 과연 그렇게 될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이지만). 위에서 떠들어댄 이유는 사실 모두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프로이트는 그 자체로서 충분히 공부해보고 싶을만큼 매력이 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어쨌든, 프로이트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싶었던 까닭에, 그와 관련된 수업을 이번학기에는 두개나 수강해 놓은 상태다. 로베르의 책은 그 중 한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프로이트 입문서로 추천하신 책이다. 이 책은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을 균형있게 그려내고 있는 전기서다.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에 의해 탄생하였으며, 초기 정신분석 이론이 변화하고 발달해 온 역사는 곧 프로이트의 삶의 궤적과 행보를 같이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프로이트의 삶, 프로이트 사상의 변천과정, (초기)정신분석학의 역사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낸다. 이 책의 내용은 원래 라디오로 방송되었다고 하는데, 그런만큼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있으며 따라서 읽어나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군데군데 읽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자연스러움 탓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원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용어의 번역에 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이드(Id)의 번역을 '그것'이라고 한 것은 부자연스럽다(물론 프랑스어를 병기해 놓긴 했다). 물론 프로이트가 사용한 용어는 das Es이고, 이는 독일어로 it, 즉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Id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서 통용되었고(열린책들에서 나온 프로이트 전집에서도 '이드'라고 번역했다), '그것'이라고 글자 뜻 그대로 번역해서는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기도 매우 힘들다. 예를 들어 451페이지에 있는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를 인용해 놓은 부분을 살펴보자. 그것(ça)은 우리 인격의 어둡고 불가해한 부분으로서, 우리는 꿈의 가공과 신경증 징후의 형성을 연구함으로써 그것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알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이 약간의 지식은 부정적인 특징을 띠고 있으며, 오직 자아와의 대조를 통해서만 기술될 수가 있다. 오직 어떤 비교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에 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며, 우리는 그것을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가득 찬 냄비인 혼돈이라 부른다. (p.451) 위에 인용된 부분에는 '그것'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각각의 '그것'이 과연 무의식을 지칭하는 '그것(Id)'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대명사 '그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혼란의 배경에는, 국내에 아직 프로이트가 사용한 용어들에 대한 번역의 표준이 마련되지 못한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프로이트의 개념에 대한 우리말 번역의 표준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의 사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기존 생각이 오류였다는 확신이 서면, 주저하지 않고 기존의 견해를 폐기하고 자신의 이론을 변경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가장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야말로 진실이다'라는 것이 정신분석의 한 원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프로이트는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의 저서를 풍부하게 직접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이트 사상의 변천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깊이있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어디까지나 프로이트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이고, 그 목적은 훌륭하게 만족시키고 있다. 별로 어렵게 쓰여진 책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난 이 책을 그리 술술 읽지 못했다. 문체가 화려한 것도 아니요, 논리구성이 복잡한 것도 아닌 것은 분명한데도 읽는 게 쉽지 않았다. 아마도 책을 읽을 당시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전체적인 틀을 조망했으니, 이제는 프로이트의 원전을 읽으며 더 공부를 할 차례다. [+] 덧붙여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인용한다. 매일매일의 기분과 두려움과 근심이 스쳐 지나가는 이 편지들을 읽노라면 우리는 그걸 쓴 사람의 두 가지 얼굴이 뚜렷이 떠오르는 걸 보게 된다. 즉 그 중 하나는 어둡고 열정적이고 고뇌하고 맹목적인 집착을 보이고 때로는 감상적이라고 해야 될 정도로 민감하며 유머 기질을 타고난, 간단히 말하자면 후일 거기서 토마스 만이 낭만주의자들과의 형제 관계를 인정했던 그런 분위기를 가진 얼굴이다. 또 하나는, 합리적이고 약간 추론적이며 누군가 지적해주기만 하면 언제라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고, 모든 것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으며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얼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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