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
헬레니즘(Hellenism)
의미
넓은 뜻으로는 그리스정신 일반, 좁은 뜻으로는 고전 그리스세계 종말로부터 로마시대 성립까지의 시기에 그리스 고유문화와 오리엔트문화가 융합하여 이루어진 그리스 문화·사상·정신·예술 등을 문화사적·정치사적 관점에서 가르키는 말. 그리스인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헬레네스(Hellenes)>라는 낱말에서 나온 말로 <그리스풍>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19세기 독일 역사가 J.G. 드로이젠으로, 그는 로마·게르만 두 요소의 복합을 로마니즘이라고 부르는 데 착상하여 그리스·오리엔트 두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새로 태어난 문화를 헬레니즘이라 불렀다. 헤브라이즘과 함께 유럽문명 2대 원류 중 하나이며, 19세기 영국 문예평론가 M. 아놀드가 유럽정신 형성의 2가지 원류로서, 그리스도교와 고전적 전통을 들어 각각 <헤브라이즘> <헬레니즘>이라 표현한 뒤 일반화되었다. 헬레니즘이 적용되는 약 3세기 사이의 문화현상은 확실히 그리스문화의 보편화라는 측면을 갖는다. 예컨대 그리스 공용어인 코이네(Koine)는 기록에 나타나듯 각 지역에서 놀랄 만큼의 융합성을 나타내고, 이 시대의 수학은 순수하게 그리스적이나, 그 자매 학문인 천문학은 그리스·바빌로니아적이었다. 한편 오리엔트문화에 의한 그리스문화의 퇴폐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토착인 상층계급 대부분이 그리스문화에 쏠렸던 것은 분명하고, 오리엔트종교의 존속 등에서 두 문화의 혼합에 의해 새로이 태어난 문화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헬레니즘시대의 범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BC 323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죽음부터 프톨레마이오스왕국의 멸망, 또는 로마의 이집트 합병에 이르는 약 300년 동안으로 본다. 지역 범위는 그리스·마케도니아세계를 중심으로, 대체로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정복지 전지역(인더스 유역·박트리아·메소포타미아·소아시아·이집트)을 포함한다.
역사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죽은 뒤 그의 장군들 사이에 이른바 후계자(Diadokoi)전쟁이 전개되었다. BC 301년 입소스싸움은 알렉산드로스 직할령이 이제는 하나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음을 명확히 하여 마침내 3개 왕조로 분열되었다. 셀레우코스왕조는 페르시아제국이 통치하였던 아시아지역 대부분을, 프톨레마이오스왕조는 이집트를, 안티고누스왕조는 마케도니아를 각각 지배하였으며 이들 왕국은 수많은 민족이 모여 그 움직임이 다양하였다. 또 아타로스왕조가 셀레우코스왕조에서 독립하여 로마의 지원을 받아 강대화되었으며, BC 3세기 중엽에는 파르티아·박트리아·페르가몬이 시리아에서 분리하고, BC 2세기에 유대가 독립하였다. 그리스 본토는 아이톨리아동맹·아카이아동맹이라는 두 도시동맹을 만들어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아테네가 문화 중심, 코린토스가 무역 중심, 에게해의 델로스·로도스섬이 노예매매 중개무역지로 번영하고 델피에서는 많은 노예가 해방되는 등 모순이 나타났다. BC 3세기 말부터 로마가 점차 각 나라 사이의 문제에 관여하고, 여러 나라의 항쟁이 로마에 의해 교묘하게 조종되어 마침내 BC 2∼1세기에 모두 합병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그리스의 폴리스들과 함께 북쪽은 다뉴브강·남러시아, 남쪽은 누비아(아프리카 나일강 중류지역), 동쪽은 인더스강, 서쪽은 아드리아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무대로 전개되어 서로 세력을 다투고 경제 규모를 확대하며 물질적 생활을 향상시키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회·경제
헬레니즘 여러 왕국은 전제지배체제의 광역국가로서 이들 왕국 경영을 위해 용병 수요 등이 증대되어 인구이동을 촉진시키는 등 경제가 활기를 띠었다. 셀레우코스왕조 초기 건설도 이를 촉진시켰으며 그리스 본토와 주변지역 인구가 고용을 찾아 유출되어 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셀레우키아·로도스 등의 동방으로 번영의 중심이 옮겨갔다. 그리스에서는 아테네를 대신하여 코린트와 델로스가 번영하였다. 그 중 마케도니아는 국력이 가장 약하였고, 시리아·이집트에는 오리엔트풍의 강력한 군주국가가 성립되었으며 특히 이집트는 지리적 조건이 좋고 물산(物産)도 풍부하여 헬레니즘 왕국 중 가장 강력한 전제지배가 확립되었다. BC 3세기 헬리니즘 국가 사이에는 서로 균형이 이루어져 시리아·마케도니아·이집트와 히에론 2세 치하 때 시라쿠사와의 사이에서 카르타고와 함께 경제권이 형성되었다. 셀레우코스왕조가 지배한 시리아에는 오리엔트적 전제군주국이 성립되었는데, 그 지배영역이 광대하여 지방 호족과 자치권을 가진 민족(유대인 등) 영내에 만들어진 그리스풍 폴리스 등 정치적으로 이질적 요소가 많아 매우 복잡하였다. 이 왕조는 인도와의 교역에 힘을 쏟아 육로로 향료·후추·솜·진주·보석 등을 수입하고, 중국의 비단도 들여왔다. 프톨레마이오스왕조는 파라오시대부터의 관습·전통을 되도록 바꾸지 않는 방침으로 원주민을 대하는 한편, 교묘한 산업통제로 풍부한 국토를 한껏 활용해 헬레니즘 국가 가운데 최대의 부를 누렸다. 지방에서는 그리스인과 이집트인의 혼혈이 진행되어,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죽은 뒤 좌절된 동서 융합이 실현되었다. 알렉산드리아·나우크라티스·프톨레마이오스 등 그리스풍 폴리스를 중심으로 경제·사회가 발달하고, 이 중 알렉산드리아는 상업항구로 또한 학사원(學士院 ; 무세이온)·대도서관 등이 있는 그리스적 학예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또 홍해·인도양을 향한 남해무역에 힘을 쏟아 향료와 상아를 아라비아와 소마릴란드에서 수입하였다.
문화
헬레니즘문화는 각지에 설립된 폴리스가 주권을 잃어 시민의 공적 생활이 변화되어 탈공동체 또는 시민의 공적 생활과는 관련없는 개인주의적·보편주의적 성격을 나타냈다. 학문의 중심지는 아테네·페르가몬 및 국왕이 세운 무세이온과 장서 70만 권 도서관을 지닌 알렉산드리아로 전제군주의 보호 아래 문헌학·자연과학이 발달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각지에 세운 폴리스와 그 뒤 셀레우코스왕들이 영내에 만든 폴리스를 중심으로 그리스문화가 오리엔트 오지까지 침투하였으며, 헬레니즘세계에서는 간소화된 그리스어 코이네를 공통어로 사용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제국을 멸망시킨 뒤 오리엔트적 전제군주풍 의례를 채용하고 그리스·오리엔트문화의 결합을 시도하여, 그리스인이 이민족을 야만으로 보던 관념이 희박해지고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사상이 대두되어 새로운 헬레니즘문화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시대정신 변화는 철학에서 잘 나타나, 객관적 인식세계보다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꾀하는 개인주의적인 스토아학파·에피쿠로스학파·키닉학파·키레네학파 등이 형성되었다. 이 시대의 조각은 육체의 운동이나 정신의 격동 등을 보다 사실적·육감적으로 표현하였다. 《라오콘 군상》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치의 니케》 등은 모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들이다. 이 시대의 세계 역사상 의의는 그리스문화를 세계화하여 보급시켰고 또한 이를 로마에 전한 데에 있다. 특히 자연과학의 발달, 사실적 미술, 윤리학 발전에 헬레니즘문화의 특색이 엿보인다.
헤브라이즘 (Hebraism)
의미
유대교적·그리스도교적 세계관. 헤브라이의 종교(구약성서)에 의해 규정되고 특징지워진 사상·문화·생활 및 전통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헬레니즘과 함께 서양사상의 2대 조류를 구성한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대립의식은 고대·중세를 통하여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19세기 영국 문학평론가 M. 아놀드가 《교양과 무질서》에 수록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최고 관념으로 하는 헬레니즘과 양심의 준엄과 행위·복종에 의하여 평안(平安)에 도달함을 근본으로 하는 헤브라이즘을 비교하여 유럽 정신의 발달에 역사성을 부여하면서부터이다.
사상·특징
헤브라이즘은 메시아사상을 지닌 예언자적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실재론·비합리주의·주의주의(主意主義)·인격주의, 정신과 육체·물질의 이원론을 배제하는 신의 창조에 의한 현실주의, 역사와 그 의미를 창조와 종말 사이의 1회적 과정에서 파악하려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또 유일신의 역사적 계시와 이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신에 의한 우주 창조와 세계사를 주재(主宰)하는 신과의 계약에 의한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는 세계관 및 인간을 영육일체(靈肉一體)로서 파악하는 인간관으로 우주를 신이 만든 피조계(被造界)로 파악하고 있다. 그 특징은 종교적·윤리적 태도에 있는데, 고대 유대민족이 신과의 계약이라는 전승에서 비롯된 유일신 야훼에 대한 신앙이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전개됨으로써 형성, 예언자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헤브라이즘은 예언자적 정신(Prophetismus)으로 대표되기도 한다. 즉 BC 6세기 초반 유대왕국이 바빌로니아에 멸망되고 민족이 바빌로니아로 유폐되면서 그 종교사상은 한층 심화되었고 제2 이사야의 <고난의 종복>에서 구제사상(救濟思想)의 정점에 달하였다. 이 구제관은 나사렛의 예수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파되어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탄생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헤브라이즘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헤브라이즘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서양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문> 두 문화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현대사회에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