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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보석 찾기

[논술]흥부팔자 놀부팔자

작성자김동석|작성시간08.12.19|조회수48 목록 댓글 0

흥부팔자 놀부팔자

 

서지문

고려대 교수

영문학 박사(뉴욕주립대). 한국아메리카학회 회장. ≪빅토리아 조문필 · 사상가들의 윤리적 미학이론 연구≫≪영어로 배우는 논어≫등 저서와 번역서, 학술논문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 펜문학상(번역부문) 수상


작년에 있었던 한 세계 문학 포럼에서 안숙선 명창이 <흥보가>의 한 대목을 불러서 좌중을 매혹했다.

그때 옆 자리에 앉았던 어느 외국인 석학에게<흥보가>가 악한 형이 벌을 받고 착한 아우가 복을 받는 이야기라고 설명해 주었더니, 놀부가 흥부의 아내를 빼앗으려 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놀부가 뭐 대단한 악당도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동양적 선악의 개념과 서양적 선악의 개념의 차이에 새삼 놀랐다.


놀부는 그 많은 죄를 저질렀을까

 

가난에 찌들고, 무능한 남편에게 끝없이 잔소리하기에 지쳤고, (상이한 판본에 따라) 10명인지 12명인지 19명인지 29명인지의 자식을 낳고 기르느라 뼛골이 다 휘었을 흥부의 아내를 성적인 탐욕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각에는 매우 기이한 일이다. 그보다도 놀부가 아무리 악한이라도 자기 동생의 아내를 성적으로 탐낸다는 것은 우리의 정서가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 이어서 소설에도 등장할 수 가없다. 그러나 서양 문학의‘악한’은 대개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이기적일 뿐 아니라 성적으로 위협적인 존재이다.

놀부의 심술과 비행 속에는 성적인 성격의 것도 있기는 하다. ‘경판 25장 본’에 의하면 놀부는 부모의 전답을 홀로다 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 파렴치한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비행을 저지른 화려한(?) 경력의소유자이다. ‘초상난데 춤추기와, 불붙은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닭 잡기, 장에 가면 억매(抑賣) 흥정하기, 집에서는 몹쓸 노릇하기,  우는 아이의 볼기치기, 갓난아이에게 똥 먹이기, 무죄한 놈 뺨때리기, 빚값에 계집 빼앗기, 늙은 영감의 덜미잡기, 아이 밴 계집의 배 차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돌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 자르기, 논두렁에 구멍 뚫기, 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장이 엎어놓고 발꿈치로 탕탕 치기’등이 그의 어마어마한 이력이다. 한말(韓末)의 명창 신재효 본에는 훨씬 더 여러 가지 끔찍한 심술이한 페이지 넘게 열거되어 있다.

빚값에 남의 아내를 빼앗았다면 봉건시대에는 극악무도한 범죄이다. 그러나 아무리 놀부가 고약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초인이 아니고서야 위의 범죄행위(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범죄행위이다)를 전부 저질렀을 수는 없을 것이고, 만약 저질렀다면 결코 무사했을 수가 없다. 무슨 높은 벼슬을 살아서 권력이 막강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부모에게 물려받은 전답으로 무위도식하는 놀부가 임산부를 발로 차서 낙태를 시켰다든가 패는 곡식의 이삭을 잘랐다면 일찍이 관가에서 잡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놀부의 심술 내지 비행의 목록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희극적인 효과를 위한 과장 기법이다. 이런 터무니없고 기상천외한 사설(辭說)은 판소리의 독특한 재미다. 예전에 어느 외국 여성과 <흥보가>의 판소리 공연을 듣다가 이 대목에서 마구 웃었더니, 그 외국여성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인간에 대해서 웃음이 나올 수 있느냐고 한편 분개하고 한편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사실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여성은 못내 석연치 않아 했다. 놀부가 아무리 악당이라도 동생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것으로 묘사될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된다면 너무 심각해져서 더 이상 희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報恩의 박씨는 못 받더라도

 

작년의 문학포럼에 참가했던 한 석학은 그렇게 무기력한 흥부를 찬양할 만한 인간형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민중들을 가난 속에 묶어두려는 음모가 아니냐고 물었다. <흥보가>에 그런 음모가 내재해 있을 가능성은충분하다. 그러나 놀부를 찬양하는 것이 어떤 대안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 흥부형 인간이 절대다수였다면 나라는 편안했겠지만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놀부형 인간이 다수였다면 물론 나라는 몹시 불편하고 사회는 흉흉했을 것이다. 놀부의 탐욕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욕망은 놀부류의 탐욕이나 심술과는 근본적으로 매우 다른 성취욕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부분 아직 가난했으나, 가난을 벗으려고 몸부림치던 1960년대 말에는“우리는 흥부를 찬양하지 말고 놀부를 본받아야한다”고 외친 사상가가 있었다. 그러나 <흥보가>를 실지로 읽어보면 흥부보다도 어리석은 인간이 놀부이다. 무수한 비행을 저지르고 돌아다니느라 흥부보다 더 부지런히 뛰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파산과 파탄은 오로지 그의 어리석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비록 선량하지만 흥부의 무능력과 나약함은 바람직한 모방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흥부가 보은의 박씨를 받는 일이 매우 드물지만 세상이 놀부가 승승장구할 만큼 허술한 곳도 아니다. 선의를 멸시하고 탐욕을 칭송하는 어리석음은 흥부의 무능보다도 더 큰 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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