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됐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제 때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까닭입니다. 더구나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학생을 종전보다 30%나 많이 뽑았습니다. 성적이 나쁘면 졸업을 할 수 없었고 취업전쟁도 심해졌습니다. 이른바 성적 압박이 클 수밖에 없었지요. 얼어붙은 마음 탓인지 국어과목 첫 작문 과제였던 '캠퍼스의 봄' 답안지를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나의 몸은 꿈에 그리던 캠퍼스의 봄볕 아래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 온전하게 봄을 맞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82-03-26 | 이재명의 일기 꽃피는 봄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습니다. 억눌러왔던 젊음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머리는 도서관에 콕 박혀 공부만 하라고 하는데, 마음은 자꾸 놀자고 말을 걸어 왔습니다. 갓 스물의 청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나는 번번이 죄의식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
[이재명의 소년공 다이어리 15화]
꽃보다 청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5 심정운과 절교하기
*참고도서 <인간 이재명> (아시아, 2021)
어느 날 정운이와 자취하는 친구로부터 정운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입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나 절친이 되고, 오리엔트 시계공장을 다니며 같이 대학에 들어가자는 다짐을 했던, 나의 작은 스승 같았던 그 정운이가... 또 노는 데 도가 텄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소년공이랑 어울리며 술까지 마신다는 얘기도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배신감, 분노, 상실감 같은 것들이 뒤범벅이 돼 몰려왔다.
그날 자취방에서 정운이를 기다렸다. 밤늦게 돌아온 정운이를 세워놓고 나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다닌다는 게 정말이야?”
정운이는 대답이 없었다. 사실이란 뜻이었다. 나는 말없이 정운이를 노려보았다.
“널 믿었는데... 너랑은 이제 절교다.”
공장과 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정운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반쪽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가슴이 아렸다.
술과 담배라니... 가난하다고 해서, 소년공으로 살아야 한다고 해서 망가질 권리는 없었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생이라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쓸쓸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운이의 방에 가지 않았다. 외롭고 힘들면 찾아가던 유일한 도피처였다. 친구들이 가자고 해도 가지 않았다. 그것은 정운이에 대한 내 무언의 압박이었다. 당시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그건 정운이에 대한 나의 멸시, 아니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어떤 작가는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정운이에 대한 내 마음이 깊지 않았다면 그런 일탈쯤 별것 아닌 듯 봐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같이 꿈꾸고 함께 노력했던 정운이가 더없이 소중했다. 절교는 내 사랑의 방식이었다. 술과 담배는 해로운 것이었고 나는 정운이를 원래의 밝고 성실한 아이로 돌아오게 할 의무가 있었다.
미리 말하자면 내 목적은 달성됐다. 정운이는 다시 공부로 돌아왔고,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중앙대학교 법대와 공대에 나란히 합격했다. 대학시절 최초의 여행도 정운이와 함께했다.
정운이는 그 당시의 나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재명이는 내가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걸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요. 사실 소년공들은 보통 술, 담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든요. 어려서부터 공장 다니면서 형들한테 일찍 배우죠. 그런데 재명이는 내가 술, 담배 못하게 하려고 굉장히 애썼어요. 너 그렇게 하면 어떻게 공부해서 대학 가겠냐구요.”
그리고는 안 해도 될 말까지 덧붙인다.
“그랬던 녀석이 대학 가더니 나보다 술, 담배를 더하더라구요. 배신감 느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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