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에 골로새서의 말씀,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수십년 간 말씀을 배워왔지만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이 많이 어렵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에 있어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골로새서의 바울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내가 깨끗케 된 사건이
내가 살아가는 나라가 달라진 사건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의 십사만사천이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늘로 올려져서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십사만사천은 세상과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어린 양의 인도를 따라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골로새서 말씀처럼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를 살아내어
하늘의 하나님 나라로 올려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에 합당한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차원의 이야기이고
하늘의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야곱이 장자권을 갖고
이삭의 축복을 받은 후 집을 떠나 벧엘에서
땅 위에 서 있는 사닥다리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본 것과 같이,
베드로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알게 하셔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고백한 후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던 것과 같이
지금 내게 주어진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내 인생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나
세상 사람보다 성공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값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 나라로 사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해온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의 십사만사천에 대해서 안다 했던 것도
너무 부분적이었던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태도로 말씀을 배워
하나님 나라의 내용과 크기에 맞는 지식을 채우고
그에 맞는 행위로 살아야겠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니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고백한 그 마음을 갖고
모든 것에 나의 소견을 비우고
새로운 눈과 귀, 마음과 몸으로
이 말씀을 다시 듣고 생각하고 물어서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새롭게 배워야겠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매일 속량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서
하나님 나라를 실감하는 인생을 살고
결국 십사만사천의 성도가 받은 속량을 받는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