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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 3. 갈증) 어쩌다가 한 말인데 - 이영백

작성자청림/이영백|작성시간26.06.21|조회수1 목록 댓글 1
글제 3. 갈증

어쩌다가 한 말인데

이영백

 

 맴맴~맴 쓰~~~. 햇볕이 강하게 내리쪼이는 소한들 아래 새보 울룩배미 외딴집에 버드나무, 뽕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살고 있다. 흔히 새보 송계댁 집으로 통한다. 그곳에 초교 3학년이 큰방 방바닥에 엎디어 공부하고 있었다. 갑자기 후두~둑 지나는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멍석에 늘어 둔 곡식 갈무리하느라 바쁘다비설거지 한다소한들 들판에 논매던 한 무리가 갑자기 우리 집으로 비 피하려 찾아든다.

 구정동 국봉(局峯)댁 부자 어르신네 일꾼들이다들판 가운데 농사짓기에 묵장산에서 비 묻어오던 날이다. 곧잘 지나는 취우(翠雨)를 피하러 오곤 하여 상당히 알은 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낯선 젊은 청년이 성큼 큰방에 걸터앉는다. “아이고, 아가가 공부하고 있네. 그래, 글씨도 쪽 바로 잘 쓰네. 한문도 배우고.” “아니에요그냥 개발새발 그리고 있니더.” “그래, 공부 열심히 해라. 그렇게 하면 그래도 대학교 갈 수 있제.” 어느새 지나던 소낙비는 그치고 국봉댁 일꾼들은 모두 논매러 다시 나갔다. 마당에 소나기 내릴 때 먼지 나다가 하늘이 준 빗물 모여 먼지는 사라졌다. 공연히 우리 집 복실이 제 꼬리 잡는다고 뱅뱅 돌고 있다. 후끈한 날씨에 소낙비 퍼부었으니 어느새 선선하여졌다.

 나도 초교 졸업 하고, 서당으로 공부 다녔다. 오후에는 산으로 솔가리와 낙엽 등 하루 세 짐을 하여야 책무가 완성된다. 일찍 마쳤다 하여도 세 마리 소 몰고 소 먹이러 다녔다. 밤에는 한문 공부만 하였다. 동몽선습은 인간으로 사는 윤리의 과목이다. 이런 공부가 매일 일상으로 반복될 뿐이다.

 초교 동기들은 교복 입고, 책가방 들며 기차 타고 학교 다니는 데 나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한자 낱글자 익히며 문장 해석하고, 이튿날 그 문장 암송하는 것으로 일상의 공부는 반복이다. 아버지의 운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당에는 나가지만 재미가 없다. 동몽선습 배우고 어느샌가 아버지는 계몽편책을 사다 놓았다. 또 그 책 떼니까 명심보감책이다. 이어서 소학”, “통감책을 모두 떼었다. 한문 공부는 끝이 없다.

 매일 일상이 지겨워졌다. 아버지 때문에 달리 신학문 하러 도시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신학문에 목말랐다. 누가 전해 주었다. 모교에서 야학한다고 한다. 신나게 쏟아지는 소낙비 같은 소문이다. 그날 밤 저녁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곧장 모교 초등학교로 찾아갔다. 그곳에 국봉댁 큰아들을 만났다. 야학 선생이고, 초교 1회 졸업생으로 대 선배님이다. 그 시대에 경북대학교 졸업하고 농사지으면서 심훈의 상록수소설에서처럼 야학을 운영하고 있었다. 반갑고, 고맙고, 나의 등댓불이 되었다. 너무나 신학문에 목말라하였던 차에 밤새워 열심히 공부하였다. 한 달이 지나니 신학문이 요렇게 즐거운 공부인 줄 처음 단맛을 잘 느끼었다. 신학문을 목말라 한량 것 들이키었다. 호사다마이었다. 교육청에서 목조교실에 호야 불 켜고 공부하면 화재 난다고 그만 폐쇄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신학문 맛을 잘 들이었는데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신학문에 맛 들이어 공부하다가 못하니 그만 입맛이 뚝 떨어졌다. 마치 논바닥에 심어 둔 모에 물 대지 못하여 논바닥이 터 갈라지듯 내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터 갈라지고 말았다. 누가 이 병을 고쳐 줄 것인가? 처방전이 없다. 모든 것이 실낙원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았다.

 다시 일상은 서당에 나가고, 소 풀 먹이고소 꼴 베는 것으로 살아가야 하였다. 오후에 초교 동기가 말을 전하였다. “침례교회에서 야학 한데이.” “그래? 고맙데이.” 저녁에 곧장 찾아갔다. 정말 침례교회 마룻바닥에 남녀학생들이 배 붙이고 엎디어 백열전등 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다시 야학이 열렸다. 그곳에서 국봉댁 큰아들인 대선배를 또 만났다. 격려하여 주었다. 집에서 1.5km 거리에도 방석 없어 커다란 요를 줄로 묶어 짊어지고 가서 찬 기운 줄이고 공부하였다. 꼬부랑 영어 공부는 너무 재미났다. 생물 시간에 식물의 물관, 체관 공부하고 식물도 사람의 밥처럼 영양을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공간에서 전깃불 받아 공부하는데 문제가 또 터졌다. 남녀학생이 연애하다 삼각관계로 법정 고발하고, 경찰조사가 있더니만 그만 야학이 또 폐쇄당하고 말았다. 그만 절망하였다. 현실적으로 목이 마른 것이 아니라 신학문 공부에 너무 목말라하였다.

 4km 떨어진 큰 누나 집으로 놀러 갔다. 생질이 교복 입고 중학교 다녔다. 너무 많이 부러웠다. 매형 만나고, 큰누나 집에서 빈둥거리었다. 큰 생질이 소식 가져왔다. “외삼촌, ~어 학교 연다카데 시험 한 번 쳐 보소.” 그길로 찾아가서 입학원서 접수하였다. 이튿날 9시에 학교로 나오라고 하였다. 기분이 날아갈 듯하였다.

 이튿날 일찍 가서 시험 칠 준비도 잘하지 못하고 앉았다. 시험은 구두시험이었다. “세상에는 높은 산도 있지만 깊은 바다가 있다그곳은 어디이며 몇m인가?” “. 마리아나 해구의 비티아즈 해연이며 그 깊이는 11,034m 입니다.” 그래서 잘했는지 발표장에서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그날부터 교복 입고, 가방 들고 신학문 배우러 다녔다. 공부하려면 돈이 필요하였다. 그것도 선생님의 주선으로 중학교 다니며, 1 가정교사 자리를 얻었다. 모두가 미리 준비한 강의록으로 2년간 공부하여 둔 것이 있었기에 쉽게 비 만났다.

 고교입학도 하고, 3 말에 군대 영장 나왔다. 익년 312일 안동 36사단 730 주특기 행정병으로 입영하라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만학도 전형이 있는 시대도 아니고, 대학 진학 포기하면 다시는 공부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교육대학에 입학하면 RNTC 제도에 의하여 훈련받고, 졸업하면 군복무도 면제받는 제도가 있다. 교사로 발령받으면 저절로 취직도 해결된다. 오로지 교육대학뿐이었다. 교육대학 졸업하고, 교사 발령 받으며 1년 만에 혼인하였다. 아들 둘 얻고, 교사 생활 8년 던지고, 도시 전문대학 행정직 7급으로 이동하여 왔다. 그리고 못다 한 학사과정 3학년에 편입학하여 주근야독하였다.

 그 후 고향 초등학교 동창회 업무를 맡았다, 그곳에서 국봉댁 큰아들을 다시 만났다. 2대 동창회장으로 모셨다. 임원회에서 자주 만났다. 그 예전 소한들 들판에서 소낙비 내리던 날 비 피하려고 우리 집 찾은 이야기 하였다. 희미하게 기억하였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 했듯늘 말하던 것이 마침내는 사실로 결과 얻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고향 선배님의 말씀에 따라 글씨도 쪽 바로 잘 쓰고, 한문 배워서 대학교 다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어쩌다 지나가는 말이었네.”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나 저러니 선배님의 그 말씀 한마디에 신학문 목말라하였고, 교사 되려고 열심히 살아온 덕택이라고 하였다. “허 참어쩌다 한 말인데.” 크게 실없이 한 바탕 웃어준다.

(20230205.) (20260621. 1차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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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림/이영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1 퇴고 하여 올립니다.
    한비수필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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