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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 3. 행복) 신혼살림 성공기 - 이영백

작성자청림/이영백|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1
글제 3. 행복

신혼살림 성공기

이영백

 

 나의 인생에서 197442010:00 대구 대성예식장에서~~따 딴, ~~~ .” 결혼 행진곡 울리고 한 쌍 일가를 이룬 날이다. 교사 생활 일 년 만에 낙찰계 들어 그 돈으로 혼인하였다. 고민스러운 총각 딱지를 후딱 떼었다. 혼인 전에 하숙하였다. 나는 열 번째 막내로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장가가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불효하고 말았다. 또 문제는 조카, 질녀들이 많아서 저네들 시집ㆍ장가 못 간다고 성화이었다. 요즘 같았으면 까딱하면 장가도 못 갈 번 했는데 다행히 장가를 갔다.

 혼인 전에 방 구한다니까 불원천리 어머니가 찾아왔다. 방 두 칸짜리로 얻었다. 신혼 준비한다고 해도 아는 게 없어 완전 백지이다. 거금(?) 일만 원 들고 포항 시내에 사러 나갔다. 최소한의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인 찬장, 커피잔과 받침 세트, 찻숟갈, 냄비 두 개, 숟가락·수저 다섯 벌씩, 국그릇, 종지 각 몇 개씩은 기본이다. 물동이, 바가지, 주전자, 방비, 쓰레기통, 휴지, 자루 몇 개, 도마, , 연탄집게 등 사다가 부엌에 정리하여 놓았더니 마음의 부자가 되었다. 하기야 그때에도 잘 사는 사람은 얼마나 세간을 잘 들여놓고 살았든가? 과연 대구 도시에 살던 처녀가 이런 형편의 집에 시집와서 살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하였다. 모친이 와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밥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방문 열고, 부엌을 들여다보면서 한 말씀을 하였다.

 “야야! 그래도 아무것도 없던 부엌에 많지는 않지만 잘 장만 하였네. 그런데 정말 도시처녀가 여기 와서 살 수 있을까? 그것이 참 걱정이다.” “엄마는, 뭐 사람 사는 것이 별거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필요한 것 하나씩 돈 벌어 사다 나르면 되지요. 걱정하지 마이소.” “그래도 너무 허술하다. 이를 우짜노?” “아이고! 참 걱정도 팔자라니까요. 아무 걱정 마이소.” “시간 날 때 부엌으로 나다니는 데 슬리퍼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또 걱정이던 어머니가 지나가는 사람이 남의 말 하듯 툭 던진다. 안 그래도 막내가 장가를 간다는 데 아무런 도움 없이 어떻게 살아가려는지 보면서 어느 누가 엄마라도 걱정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눈물이 글썽일 뿐이다. “, 포항 출장 갈 때 사 올게요.”

 어머니는 마흔넷에 날 낳고, 천연두 마마를 앓아서 코 쪽으로 좀 얽어서 곰보가 되었다. 나를 낳으면서 천연두 마마까지 하면서 그 몸은 어떠했겠는가? 자식 많이 낳으면 여성으로서 그냥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던 데 정말 신경통으로 약을 장복하고 있다. 화병이라도 난건 지 담배까지 피운다.

 1974년 나의 신혼집에 올 때 예순여덟이다. 관절염이 와서 잘 걸어 다니지도 못하였다. 손가락이 아파 연탄불도 잘 맞춰 넣기가 어렵다. 막내아들 장가간다고 하니까 걱정이 앞서서 와 본 것이다. “어머니! 연탄불은 내가 시간에 맞춰 갈아 넣으면 되고, 모든 것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시소.” “알았다. 학교나 잘 다녀오너라.” 하면서도 연탄불 갈고 연탄재까지 치워 두었다. 하물며 밥까지 해 놓고, 제때 맞춰 밥 먹으라 한다. 정말 부모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어도 걱정을 못 버리는 것이다.

 결혼하여 경주 큰집에 하루 보내고 트럭에 짐 싣고 신접살이 집에 들어왔다. 근무도 근무고, 무엇보다 우리 반 학생들이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일찍 돌아 올 수밖에 없다.

 “아이 고오! 이런 정말 아무것도 없네.” 입성 첫날 새댁의 입에서 나오는 첫소리이다. 그래도 어쩌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살고 형편대로 사는 것이 인간이다.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1970년대에 사는 군상으로서 말이다.

 학교에서는 혼인하자마자 실습지 한 이랑을 주었다. 고추, , , 배추 등을 심었다. 반찬을 만들 수 있는 채소는 형형색색으로 모두 심어 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된장, 간장, 고추장과 참기름, 소금만 준비하면 된다. 아울러 생선이 있으면 혼인 초보자로서 그런대로 갖추는 것이다.

 공자 말씀에 반소사음수하고 곡괭이 침지라도 낙역재기중(飯疏食而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는 문장이 있다. 이는 곧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로 누웠으니 사나이 대장부 이보다 즐거움이 더 있으랴.”라는 뜻이다. 사실 내가 너무 자만하였나? 신혼살림에 방 두 개로 부엌 하나 이렇게 살면 되지 않겠나 싶었다. 1에 신혼 방, 2에 서재로 책이 가득 쌓여 있다. 곧 이것이 마음의 부자요, 선생으로서 지식의 운용자이다. 그래도 내가 신부에게 선물로 여성중앙지를 매월 포항에서 사서 오는 일이다.

 모포에서 신혼살림은 신부로서 고역이다. 빨래하고 빨랫줄에 늘어놓으면 모래가 수북하게 쌓여 바깥에 늘지 못한다. 여성으로서 강한 바닷가 자외선 때문에 모자를 항상 써야 한다. 차단제를 발라야 외출할 수 있다. 바닷가 오지라 하루 버스가 3회 왕복밖에 운행되지 않는다. 문화생활은 없다. 다방 하나도 없다. 약방도 없어 약포하나 있다. 새색시로서 이곳 생활은 바로 영어와 마찬가지다. 그냥 라디오나 듣고 집안에서 책이나 읽어야 하는 것뿐이다.

 다른 것에는 아껴도 책 사는 것에는 아끼지 않았다. 문학에 뜻이 있어 한국문학 100권 선집을 사 두었다. 부활과 대망, 후 대망 시리즈를 준비하였다. 새색시는 시간 나는 대로 곧잘 독서삼매에 빠졌다. 지금까지 그 책을 윤독하고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한국문학 전집을 네 번이나 읽었다 한다.

 그 시절 흑백 TV 사기도 어려워 신혼집에 없다. 물론 바람 잘 나야 하는 선풍기도 없다. 가장 손쉽게 바람나게 하는 부채가 겨우 두 개 있을 뿐이다. 그것도 부챗살이 많은 노란 종이판에 콩기름을 먹인 부채이다. 여름에는 바닷가라 기온이 늘 시원하다. 여름 중에 12일만 반짝 더웠다. 바닷가라 선선한 편이다.

 차츰 시간이 지나니까 혼인한 것을 안 학부ㆍ형이 고추, 마늘, , , 배추, 오이, 호박, 감자, 고구마, 생선 등 반찬거리 채소와 고기를 수시로 갖다주었다. 이런 학부ㆍ형이 무척 고마웠다. “고추 다섯 개는 누구 엄마입니데.”하고 마루에 두고 가면서 던지는 말이다. 퇴근하면 메모지에 누가 고구마 두 개, 누가 가지 세 개, 누가 생선 세 마리 등이 기록되어 전한다. 모포에서 대구 처자와 혼인하여 아들(種鮮) 출산하여 대를 이었다. 모포에서 신접살이 성공기(?)이다.

(20111202.) (20260622. 1차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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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림/이영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2 new 퇴고 하여 올립니다,
    한비수필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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