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제 1. 아지트 |
마음의 꽃밭
이영백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변한 “마음의 꽃밭”이 있다. 일흔 고개를 넘어 중반도 넘치니 이 또한 그 옛날의 꽃밭 같은 아지트가 너무 생각에 도드라진다. 농촌은 어린 날 나에게 자연학습장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품고 사는 만 평이나 되는 “마음의 꽃밭”을 보듬고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다. 아마도 약속 없이 모여들던 시래 천변 밀 방석 깔고 가로지른 은하수 치어다보면서 어른들과 보낸 그 여름밤이 더욱 그립다.
나는 그렇게 삼신할머니의 부름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이 헐벗고, 굶주리고, 살기 어려운 농촌이었어도 사람으로 살게 된 그 시절은 상대가치를 잘 모르고 살았다. 마치 그것이 세상 사람 사는 정도일 것이라고만 여기었다. 어린 날 살던 집 곁이 동사마을이라 노는 곳은 동사 마당이다. 철길 너머 저 멀리 국민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전후(戰後) 사정으로 교실이 모자라서 우리 마을의 동사(洞舍)에까지 교실 빌어 공부하는 것을 보아 왔다. 우리는 그 동사의 숙직실 뒤 부엌 아궁이에 모여 놀았다. 동서기가 없는 날 그곳에서 불 지피어서 불 쬐고, 감자 굽고 놀았다. 그곳이 최초의 내 인생의 아지트이었다.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면 일을 멈추고 사랑채에 목침 베고 누워 창을 읊었다. “옥단춘전”, “심청전”을 완창하였다. 학교 다니기 전이라 그러한 창을 듣고 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저절로 듣다 보면 그 줄거리가 이어진다. 뒷집 기장댁 할머니는 일부러 창 들으러 오면서 수수떡 만들어 들고, 감주(甘酒)까지 곁들이어 오고 하였다. 덤으로 우리도 수수떡과 감주를 얻어먹었다. 그곳이 어른들의 아지트이다.
그 시대의 멈*1의 아지트는 단연 초당방(草堂房)이다. 머슴들은 낮에 힘든 일 하고도 주인이 요구하면 밤을 낮으로 삼아 일한다. 대개는 새끼꼬기, 밧줄 만들기, 가마니 치기, 삼태기, 멍석 엮기 등의 일을 한다. 물론 이러한 일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하기에 늦은 밤의 야식이 나온다. 초당방은 머슴들의 생활하는 방이요, 삶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그래도 겨울철이면 군불 때어 따뜻한 방에서 생활한다. 자신들의 집에서 누리지 못함을 누리고 살아간다.
어린 날 아지트는 형산강 남천 상류 시래 천변이다. 낮은 둑이라서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천변 논 주인들은 늘 걱정이다. 우리는 도랑물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금모래, 은모래에다 모래성 만들었다. 마치 신라 관문성을 만들 듯 모래성을 쌓았다. 멀리서 감나무 위에는 까치가 울어 준다. 우리는 모래성에다 풀을 캐다 덮고 그럴싸하게 그 속에서 소꿉놀이하고 놀았다. 검은 고무신은 뒤축을 앞으로 집어넣어 다른 짝에다 끼워 자동차처럼 밀고 다니었다. 어린 날에 금모래, 은모래는 오늘날 도시의 좋은 백사장 놀이터이다.
가을바람 부는 날 밤나무가 있는 도랑둑은 새로운 아지트이다. 그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알밤이 툭 벌어져 도랑물 속으로 떨어진다. 깊은 도랑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긴 대나무에 손잡이 달아 물속에 떨어진 알밤 줍는다. 밤나무집 주인 몰래 물속에 빠진 알밤 줍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저만치 윗마을에서 주인 내려오면 저마다 재주껏 대나무 장대 숨기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알밤도 줍고, 간혹 서당 훈장이 논들에서 공부 가르친다면 높은 둑에서 한문책 펼치던 곳이다. 내가 한문책을 읽으면 논 속의 먹 개구리도 따라 한문 배운다. 꾸르륵~ 하늘 천! 꾸르륵~ 땅 지!, 개굴개굴 검은 현으로 울어 준다.
첫 직장을 학교로 갔다. 교육과정에 따른 정규 수업 시간 끝났다. 10여m 앞이 동해이다. 검푸른 바다이다. 늘 파도가 일렁이고, 검푸름이 내륙지방에서만 살다 온 나에게는 무섭다. 그러나 그곳에서 태어난 어린아이들은 그 짙고 푸른 바다가 삶의 터전이다. 오후 연수 시간이 아니라도 풍금은 줄곧 타는 습관들이어야 하였다. 학생들이 교실 청소 마치면 모두가 하교한다. 간혹 여학생 몇이 남아서 내가 풍금 치는 소리에 동요를 따라 부른다. 그것이 하루, 이틀 쌓이면서 여학생 거의가 하교하지 않는다. 내가 풍금 연습하는 데 따라 노래 부른다. 그곳은 그 여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도회지 나와 살면서 내자는 곧잘 이웃사촌과 어울린다. 도시 이웃사촌이 멀리 사는 친사촌보다 자주 만난다. 선생의 직업을 떠나와도 “이 선생”으로 불러 주었다. 국수 한 그릇에 웃고 살았다. 세상 살아가는 일을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자주 모이던 박 사장네 집이 도시 아지트이었다. 일요일이면 곧잘 어울려 시골로 천렵도 다니고, 내 고향 관광지도 다녔다. 도시 이웃사촌이 그 젊은 날의 서로 의지가 되었다. 먼 제주도 여행도 함께 떠났다. 그 아련한 젊은 날이 오늘 새삼 그립다.
직장 생활하면서 선ㆍ후배가 매일 벗하여 찾아가던 술집에서 날이 지날수록 대구 시내의 술집이란 술집은 모두 섭렵하였다. 한 띠가 빠른 선배는 술집 찾기에 귀재이었다. 비포장도로를 거쳐야 가는 술집, 전깃불도 없는 술집, 문 똑똑해야 문 열어 주던 밀주 집 등 밤에 찾아 헤매던 술집이 지금도 아련하다. 한곳으로 찾아가는 아지트가 아니고, 하늘에서 드론으로 내려다보면 대구 시내가 모두 우리 아지트인 것이다.
일생을 거치는 요즘까지 많은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녕 아지트로서는 어린 날 새보에서 살던 초가 속이다. 큰집 작은집 자형들이 한가한 겨울이면 우리 집으로 모두 찾아온다. 게다가 우리 집 자형은 숫자도 많다. 웬만하면 우리 집으로 모여들어 췌객(贅客)의 날이다. 패를 나누어 윷놀이도 한다. 통 말술 걸고 놀이한다. 놀이가 끝나고 둘째 형은 장구 매고 육자배기를 즐겨 부른다. 셋째 형은 징을 맡았고, 누나들은 소고 들고 장단 맞춘다. 사골 외딴지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합창단이다. 우리 집에 췌객의 아지트이다.
더운 여름이 내리면 아무런 약속도 없이 밀 방석 하나 돌돌 말아 시래 천변으로 나간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든다. 그곳이 더운 날 물가로 그냥 시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렇게 더운 여름밤마다 모인다. 그래도 더운 날은 중보 봇머리 맑은 물속으로 풍덩 몸을 적신다. 누구인가 부지런한 사람은 수박까지 들과 나와 잘라서 한 조각씩 들리어 준다. 시골 인심이 그렇게 후하던 그 옛날이 아련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통과의례 하듯 지나온 여린 추억을 하나씩 펼친다. 그렇게 살아온 길, 뒤돌아보면 힘들고 어려웠던 그날의 추억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어 마음의 꽃밭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도 말은 하지 못하지만 내 머릿속 한쪽에는 지나온 추억이 와이드스크린 천연색 대 파노라마 영화가 되어 상영되고 있다. 그것이 차마 만 평에 이른 마음의 꽃밭이다. 그곳이 나의 아지트이다.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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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멈 : 주로 농가에서 한집에 고용되어 살면서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사내. 본디 말 : 머슴. 머슴 이 받는 세경에 따라 “상머슴”, “중머슴”, “얘기머슴”으로 구분한다. 세경은 일 년 치를 쌀로 계산해서 후불로 치른다. 보통 쌀 10가마니 이상 받으면 “상머슴”, 6~9가마 받으면 “중머슴”, 5가마 밑으로 받으면 “애기머슴”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