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제 2. 건배사 |
일언(一言)
이영백
사람들은 무슨 말이라도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말은 잘 안 하면서도 모두가 결정되고 난 뒤에는 꼭 구시렁거린다. 곧 앞에 나서서 말하기 꺼려하는 민족의 속성 때문이다. 또 모임에서 어떨 때는 한마디도 안 하기에 일부러 한마디씩 하라고 부추기면 속사포로 막 볶아대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컬하다. 한마디만 하라고 해도 저 말 다해야 끝이 난다.
셋째 누나네 셋째 생질녀는 아들이 둘 있다. 그 막내는 나이가 들도록 말을 잘안하니까 저 엄마가 “아이고! 답답해라. 말 좀 해라. 말!”하니까 겨우 따라 대답하는 짓이라고는 “말!”이라 하고 그쳤다. 그놈이 어리고 우직하지만 좋은 말 한마디로 저 엄마 애간장을 타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만나 보았는데 지금은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 해댔다. 생질녀가 “지금은 변호사이다.” 라 한다.
큰 처제가 집에 왔다. 모처럼 말미 내*1 집밥보다 더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내자는 더운데 집에서 먹자고 한다. 처제는 사 준다고 하면서 나가 먹자 하였다. 그래도 모처럼 외식하는데 맛 나는 집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알아 둔 식당이 있는데 가서 한 마디씩 평 바란다.”하고 집을 나섰다. 집 나서자마자 온통 후끈한 열기가 얼굴 덮었다. 내자는 많이 언짢아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찻길의 차를 피하면서 집 가까이 있는 식당에 찾아들었다.
식당 홀에서는 여주인과 서빙 아주머니가 아마도 예약 손님을 위한 준비하기가 한창인 모양이다. 그 식당은 메뉴 중 “고등어구이”가 전문이라고 내가 소개하였다. 내자, 처제와 셋은 해거름에 이웃사촌 식당에 나앉았다. 분위기가 경상도 말로 해서 쫌 후졌다. 게다가 주인과 서빙 아주머니, 주방장 등 세 분이 일을 하면서 조금 더운 날씨인데도 에어컨 쓰기가 뭣해 그냥 일하고만 있다.
“아이고 더워요. 사장님 에어컨 좀 켜시지요?”
“(더운데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그렇게 더워요…? 켜러 나갑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째 분위기가 심상찮다. 종이컵 여남은 개를 포개어 갖다 놓으면서 서빙 아주머니는 생수통을 퉁명스럽게 놓고 갔다. 괜히 내가 미안하여 상 곁에 달린 수저통에서 수저 내어 진열하였다. 분위기가 더욱 심상찮은데 우리 일행은 대화도 없다. 음식이라도 빨리 시켜야 하겠다.
“고등어 정식 3인분요?”
“…예.”
떨떠름한 분위기에 나오기 싫은 대답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준비된 찬거리를 들고서 냅다 우리 상 바닥에 쏟아다 놓아주었다. 내자와 처제는 차려지는 반찬에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듯도 하다. 오이무침, 갓 담근 배추김치, 가는 멸치, 무말랭이무침, 잡채, 된장찌개 등 한 상 가득히 놓아두었다.
반찬 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맛나게 하는 “오이무침”을 내 앞 빈 접시에 반이나 덜어다 놓았다. 밥이 나오기 전에 두 사람은 마치 무슨 감별사처럼 “가는 멸치”도 먹어 보고, “잡채도” 맛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매는 속닥거린다. “아이고, 이 집 보기보다 반찬 맛이 일품이네.”라고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오이는 동그랗게 썰었는데 적당히 숨이 죽은 데다 잘 맞춰진 양념으로 씹히는 오이가 시골에서 먹었던 그 맛 그대로이었다. 그때 고등어구이는 긴 접시 두 개에 따로 담아 나왔다. 동시에 밥은 뚜껑 덮어서 정갈히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밥맛을 뚜껑 속에 잡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내 코에까지 닿으니 나도 입맛이 확 당긴다.
세상에는 항상 선입견이 문제이다. 조금 참아서 조신하게 알아보면 모두가 자기에게 이로움이 돌아올 텐데 잠시 잠깐을 못 참고 화살 쏘듯 발화하고 나면 감당 못 할 것이다. 한 끼 밥상을 놓고도 분별력을 키우고, 예를 다하면 좋겠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우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남 깎아내리기에 바쁜 일상생활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다.
처제와 내자는 내게 가장 먼저 보글보글 방금 끓이어 온 “된장찌개”를 빈 그릇에 덜어 주었다. 된장은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었고, 가는 멸치가 맛을 돋워 준다. 이제 내가 맛볼 차례이다. 이어 숟가락으로 된장 맛을 보면서 일갈로 “이 집 된장 참 맛있다.”라고 두 사람이 대화한다. 나도 곁들이어 “이 집 오이무침 한 것이 옛날 시골에서 먹었던 그 맛이에요!”라고 발화하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어 준다. 이제 고등어구이를 맛보아야 할 차례이다. 통통하고, 뽀얀 고기의 살 그대로 적당히도 구웠다. “야! 고등어 진짜 잘 구웠네. 기름이 잘잘 흐르면서 고기 식감이 촉촉하게 나도록 정말 잘 구웠다. 맛나다.” 마치 음식 감별사들의 입맛을 잘 맞춰 주는 반찬이라서 이제 분위기가 너무 좋아졌다.
대체로 식당주인에게 좋은 말 한마디 잘 안 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발 “음식 맛이 좋다.”고 하면 주방장부터 주인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오늘 모처럼 식당 밥 사 먹으면서 칭찬 일변도를 우리끼리 발화하니 귀가 있는데 주인은 왜 못 알아들었을까? 정중히 말씀 안 드려도 주인은 알게, 모르게 분명 흐뭇해할 것이다. 아무리 적은 소리라도 손님들의 대화만 아닌 저절로 나오는 맛의 탄성 소리는 주인도 저절로 알아듣는다.
그 일언은 “우리 이 집에 종종 오자.”, “고등어구이 생각날 때 아지트로 정하자.”, “집 가깝겠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아이가.”, “예전에 멀리 가서 먹은 집하고도 비교가 된다.”, “반찬 먹을수록 맛이 난데.”, “너무 괜찮은 집이다.” 등 덧붙일 것은 처제는 한식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아직 얼마 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만큼 살아오기까지도 옛날로 치면 오래 산 축에 든다. 종심(從心)하고 여덟 해째를 산다. 이제 누가 무슨 소리 하는가를 저절로 판단이 서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쁘지 않게 말을 전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서로 밝고 건전한 사회가 자리 잡는 데 보탬이 된다.
이 식당의 이름이 무엇인가?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수성구 범어3동 “다복식당(多福食堂)”이다. 한 번에 한 말씩, 분명히 일언*2이다. 오늘 잘 먹고, 좋은 말로 일언을 또 하자. 소주 유리잔에 한 잔씩 가득 붓고 저절로 발화하였다.
“우ㆍ세ㆍ넓, 음ㆍ맛ㆍ모ㆍ맛!(우리 세상은 넓고, 음식 맛은 모두 맛나다!)”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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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미 내다 : “말미”란 “무언가로 말미암아 얻은 겨를”인데, 이는 “말미를 주다”, “말미를 얻다” 처럼 시간이나 기회를 더 주거나 얻는다는 의미다.
*2. 일언(一言) : ① 한마디 말을 함. 또는 한 번 말함. ② 간략하게 말함. 또는 그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