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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교육

Mano의 뇌과학적 신경상응

작성자원강사리|작성시간22.06.15|조회수61 목록 댓글 0

불교명상과 뇌과학

2.Mano 뇌과학적 신경상응

붓다는 「운나바 바라문 경(Unnãbhabrãhmana-sutta)」에서 의식에 대해 설하시기를 마노[mano, 意]→마음챙김[sati, 念]→해탈(解脫)→열반(涅槃)의 순서로 의지한다고 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노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노[mano, 意]는 마음챙김[sati, 念]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음챙김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음챙김은 해탈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해탈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해탈은 열반을 의지한다"

 

초기 불교경전에는 의식의 기원과 발생과정을 위의 구성을 기초로 여러 형태로 상황과 방편에 따라 기술되고 있다. 의식에 대해 『맛지마니까야』의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SaĮāyatanavibhaňgasutta)」 등 여러 경에서 붓다는 6근, 6경, 6식의 구성으로, 그에 대해 상세히 설하고 있다. 이들 세 경계를 합한 18계(十八界)는 여섯 가지 인식대상으로써의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인 6경(六境, ṣaḍ viṣayā)과 이것들을 지각하는 기관으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인 6근(六根, ṣaḍ indriyāṇi), 그리고 이들을 인식하는 것을 각각에 '식(識)'을 붙인 6식(六識, ṣaḍ vijñāna) 등으로 총 18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 가운데 18계를 구성하는 6경과 6근을 12처라 이름하기도 하며, 6식의 대상이 되는 여섯 경계로써의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으로 구성된 6경을 외처(外處)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근을 내처(內處) 또는 내6입처(內六入處)라 한다. 이러한 내용은 초기 불교경전에 일관된 기조과 방향을 갖추면서 상황에 맞게 체계적으로 유연하게 설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각기관으로 6근을 갖추고 감각대상으로 6경을 만나서 감각작용 6식이 발생하는 지각기관을 중심으로 이들 일체를 열여덟 경계로 구분한 18계설이다. 불교에서 인식대상으로서의 6경이 인식기능을 가진 6근을 통해 6식으로 발현되는 18계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의식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종(種)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뇌의 신피질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신피질은 설치류나 다른 영장류의 신피질보다 더 크고 잘 발달된 까닭에, 6근에서 비롯한 6식의 처리가 고도로 밀접하게 협동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인간 행동의 복잡성은 신피질 아래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신경영역들과 시냅스 연결을 통해, 정신활동과 행동의 다양한 측면들이 발생된 것이다. 특히 다른 종에서 볼 수 없는 언어(언어 이해와 표현)와 관련된 뇌 영역의 발달로, 마음에 대한 이해는 '무한 혹은 초월'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한다.

 

전5식(前五識)은 색(色), 성(聲), 향(香)·미(味), 촉(觸)의 물리적 에너지를 100mV 전기, 즉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로 바꾸어 뇌로 전달한다. 전이된 활동전위는 뇌활성을 일으킨다. 다양한 5온의 감각더미를 생성하고, 이는 의근에 포섭되어 의식되고 그 결과는 기억으로 저장된다. 전오식의 다섯 감각더미들은 각각 5문전향에서 의문전향을 거쳐야 비로소 현실적인 의식의 지각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각의 범주화(perceptional categorization)는 해당 감각의 공통되는 지각패턴을 의미한다. 다양한 지각은 범주화에 의해 개념으로 범주화(conceptual categorization)된다. 신경 다윈주의를 주창한 에델만은 특정 시냅스의 반복 강화로 나타나는 인간의 두뇌가 가진 다양한 범주화에 주목하였다. 에델만은 뇌의 작용만이 아니라 뇌와 몸, 환경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상호작용을 통해 의식이 형성되고 마음이 발현한다고 보고 있다. 의식이란 앎의 기능을 수행하는 신경작용의 과정이므로, 뇌의 인식 과정을 밝히면 자연스럽게 의식의 발생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뇌를 통한 인식의 과정을 부파불교의 '17찰나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표 1> 눈의 문에서의 인식과정

인간의 여러 감각에 대한 인식과정을 불교적 입장에서는 여섯 종류의 감각의 문을 통해 마음에서 17찰나로 전개되는 '인식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심찰나(心札剌)는 5문(五門)과 의문(意門)의 인식과정을 통해 일어난 하나하나의 의식이 갖는 미시적 국면을, 마음의 알음알이의 연기적 속성을 생멸(生滅)하는 미세한 과정으로 나타낸 것이다.

 

모든 심찰나들은 마치 바다의 파도가 솟구쳐서는 덧없이 짧은 찰나 동안 머물렀다가 가라앉아 버리듯이, 의식단계의 마음에서 일어나 한 찰나 거기에 남아 있다가 무의식(바왕가) 단계의 마음으로 가라앉는다. 인간의 의식이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일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인식기관인 6근(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통해 상좌부 불교 아비담마로 설명하면, 대상 인식에는 최대 17번의 단계들이 순간순간 활성되고 있다는 것을 도식화한 것이다. 7번째 찰나에 조사하고, 8번째에 의문으로 전향 여부가 결정되는 의근(mano)의 신경과학적 상응(neural correlate)은 생각의 발생 여부을 선택하는 일종의 변환기관으로 전5식을 각각의 감각기관 '5근'이 취합하고 통괄하게 한다. 감각 중에 5문 전향되는 강한 자극이 의문 전향으로 돌출되는 자극으로 인식하게 된다. 한 심찰나에 마음은 두 가지 대상을 가질 수 없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마음의 작용은 한 순간이라도 앞뒤라는 선후가 반드시 있다. 이와 같이 마음의 의근은 동시에 두 대상을 포섭하지 못하지만 빠른 속도로 특이하거나 중요한 뇌활성을 선별하여 통섭한다. 의근은 이와 같이 돌출되는 자극(salience)으로 뇌활성되는 법경(法境)을 감지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다섯 가지 감각이 5문 전향으로 단순히 감각과 느낌의 단계를 넘어선 전5식의 자극들을 취합 선별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는 의문 전향을 통해 의근은 뇌 속에 있는 의식적인 감각기관으로써 주의와 의도가 기울여진 대상(법경, 뇌활성)을 인식하게 된다. 식역(識閾)에 미치지 못하는 자극은 뇌에서 시각, 의미,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검출되기는 하지만, 너무 짧게 일어나기 때문에 광역적인 점화, 뇌활성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잠재의식라는 뜻으로도 옮겨지는 바왕가(bhavaṅga, 存在持續心, 有分心)에서 자극이 일어나지만 네 번째 관문인 5문 전향으로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門]을 지나 알음알이[識]의 생각의 문, 의문으로 전향하는 단계를 최소화하는 것이 생각 알음알이에 의한 번뇌가 최소화되는 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5문의 감각 단계를 지나는 전5식은 매순간 빠르게 접촉하고, 판단․결정되거나 도중에 소멸되는 찰나찰나의 움직임이 아주 현란하게 일어난다. 불교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끊임없이 생멸하고 변화하는 의식의 활동을 알아차리고 마음챙김하여 탐진치의 번뇌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갖추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매우 빠르게 대상을 바꾸고 변화하기에 특정의 대상에 밀착되어 유지되기란 쉽지 않다. 불교의 설명에 따르면 마음은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이라는 '세 가지 독(三毒)'에 휩싸여,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如實知見) 못하기가 일상이다. 따라서 불교는 부지불식간에 지나가는 여러 현상에 대해, 주의를 모아 알아차리는 과정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수행방법을 'Sati-patthana vipassanā' 수행이라고 부른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여리작의(如理作意), yoniso manasikāra]으로 sati-patthana는 '알아차림 또는 마음챙김을 확립'을 의미하며, vipassanā는 관찰대상의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세 가지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아주 짧은 한 순간의 마음의 생멸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마음을 챙겨 본질을 관찰하는 안목을 갖추게 되면, 인식과 행동의 변화가 점차 뇌의 가소성을 통해 심신에 자리 잡게 되어 서서히 번뇌로부터 자유롭고 허상과 망상, 갈애와 집착이 아닌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고 행하는 반야의 지혜와 해탈의 자유를 이루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근은 동시에 두 대상을 포섭할 수 없다. 대신 의근은 빠르게 옮겨 다니며 대상의 기초정보를 아주 빠른 스캐너처럼 훑어갈 수 있다. 의근이 대상을 빠르게 옮겨가면서 주관심 대상과 의도의 변화에 따라 주시하는 동선과 빈도의 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나 보인다. 복잡한 그림이나 물체를 볼 때 우리는 그 대상 전체를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여러 정보을 얻기 위해, 초점이 옮겨 다닌다. 중요하고 관심이 높은 곳으로, 중요한 정보를 가진 곳일수록 더욱 집중적으로 시선이 간다. 이는 우리의 의근(意根)이 유의미하고 중요한 곳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옮겨가면서 그 경로를 따라 필요한 정보들을 포섭함을 의미한다. 의근은 한꺼번에 대상 전체를 일시에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정보들을 조각조각 빠른 속도로 포섭하여 모은다. 이때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조각을 더 자주 포섭한다. 전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근은 대상을 빠른 속도로 포섭하여 의식(마음)에 불러들인다. 외부에 있는 전5경에 의하여 생성된 뇌활성뿐 아니라, 뇌 속에서 시작된 뇌활성도 모두 인식대상인 6경의 하나로 법경이 되고 의근은 이들을 매순간마다 빠른 속도로 판단․결정하고 선별하여 의식 속으로 끊임없이 교체되는 활동사진처럼 매순간마다 빠르게 선별하고, 통합․교체되고 '지금, 여기'의 의식으로 발현된다. 의식은 다음 의식으로 서로 연이 이어지는 등무간연(等無間緣)을 이룬다. 이러한 뇌신경망 활성의 흐름(mind stream)을 불교에서는 심상속(心相續; citta-dhra)으로 기술하고 있다. 심찰나로 일어나는 마음 알음알이의 다른 측면이 심상속(心相續)이라고 할 수 있다. 4세기 인도의 세친 스님이 지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의근(意根)은 마음[心]이 과거로 낙사(落謝; 사라짐; falling into)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의식은 '현재를 방금 지나간 과거와 비교할 때 생기는 의미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부파불교에서 설명하듯 인간의 의식은 매울 짧은 인식단위의 연속이며, 이러한 인간의 마음은 찰나찰나로 생멸하는 'mind stream'이다. 이는 부파불교의 경전인 『구사론』의 설명인데 '모든 인식의 토대가 되는 의근(意根)은 바로 그 앞 찰나의 6식이라는 것이다. 바로 직전 찰나의 6식이 다음 심찰 나의 의근이 되어 이어지는 마음을 만든다는 뜻이다. 바로 직전의 식(識)이 의근을 통해 뇌 속에서 자체적으로 생긴 뇌활성을 대상으로 내인적 의식의 뇌활성을 형성하기도 하고, 전5식에 의하여 활동전위로 변환 생성된 외인적 뇌활성을 대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두 가지 모두 뇌에 형성된 뇌활성을 의(意, mano)가 하나의 감각기관으로 기능하여 감지하는 것이다. 감지한 결과는 의식으로 발현된다. 의근이 포착되면 의식이 되기 때문이다.

 

[게송] "간극 없이(anantara, 無間) 지나가버리는 6식이 바로 의(意, manas)다."

[풀이] 등무간(等無間, samanantara)하게 소멸하는 식(識, vijñāna)은 무엇이든 의계(意界, manodhātu)라고 설시되었다. 이는 어떤 남자가 바로 아들인데 다른 경우에는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고, 어떤 것이 바로 열매인데 나중에는 씨앗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여기서도 바로 이와 같아서 의계라고 불릴 수 있다.

 

우리 머리 내부에 존재하는 '상자 안의' 뇌는 추론하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오감의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서는 외부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물론 뇌와 감각기관이 따로 존재한다고 해도, 오감을 통해 올라오는 정보가 정확하고 뇌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뇌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인지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지의 기본이 되는 감각 정보 처리에 대해 뇌는 결코 있는 그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시각을 예로 들자면, 뇌는 결코 우리 망막에 맺힌 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원래 우리 눈의 구조에 따르면 눈의 상이 맺히는 망막의 앞에는 수많은 혈관들이 존재하며, 혈관들의 그림자로 인해 우리의 시야에는 항상 혈관들의 그림자가 함께 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볼 때 그림자는 보이지 않으며 이는 뇌가 그림자를 눈의 움직임을 통해 보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뇌가 보정해서 만들어준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뇌는 무의식 차원의 기질적 성향, 자동적 판단(snap judgement), 행위에 있어서의 문화에 대한 신체적으로 체화된 반응 등을 최대한의 정보를 취합, 보정, 해석하여 전달한다.

[그림 5] 시선추적 실험자료

Yarbus(1967)는 그림 5와 같이 시각적 의도(Visual Attention)와 연관된 시선추적 실험을 통해 관찰자가 의도에 따라 일정한 시선의 경로(Scan paths)와 유형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Yarbus의 실험은 일종의 알아차림의 의식과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의 통찰을 내포한 의도의 동선을 총괄하는 의근의 역할을 읽을 수 있다. 동선에 머무는 빈도는 의근의 특징을 대변한다. 의근은 '특이하거나 중요한 대상'을 선별한다. 그의 연구를 통해 인지적 의도를 따라 이미지에 대한 시선의 방향과 관심의 빈도 변화 유형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안구의 동선을 긋는 안식(眼識)이 아니라 정보와 의도를 선별하는 유의미한 의근에 의한 주시(注視)의 의도적 경로임을 논증하고 있다.

 

의도의 발생과 행위의 발생 간의 시차 간격에 대한 중용한 연구적 시사를 주는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의 뇌과학 실험을 통해서 마음챙김sati과 의근(mano)에 연관된 의식과 행위가 활성되는 신경과학적 기제를 알 수 있다. 벤저민은 뇌의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를 측정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임의로 손목을 순간적으로 움직여보라고 했다. 리벳의 관찰에 의하면 근육이 움직이기 0.55초 전에 먼저 뇌가 활성화되었다. 참가자들이 동작을 취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는 데는 0.35-0.4초가 걸렸다. 이는 손가락이나 손목을 실제로 움직이기 0.2초 전이다.

[그림 6] 리벳 실험에서의 의도와 행위 사이의 간극

그림 6과 같이 리벳은 이 연구를 통해서 만일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행동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테면 의도와 행위 사이의 간극이 0.2초이므로 적어도 0.2초 안에 알아차림을 할 수 있다면 화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 화의 행동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정보는 대뇌피질의 관련 영역들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의도가 발생한 지점과 행동을 취한 지점 사이에는 0.15~0.2초의 시간차가 있으므로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그 의도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0.15초에서 0.2초 정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집중하는 사마타 선정수행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닦고, 알아차리고 마음을 챙기는 위빠사나 통찰수행을 쌓아간다면 자신의 의도를 잘 살펴보는 통찰이 깊어지는 것을 상호 실험 대조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의식의 판단에 관여하는 피질 신경세포들간의 시냅스 강도의 변화가 거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하는 뇌의 가소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 활용한다면 그물체(reticular formation)와 변영중추들은 효율적인 해당 뇌활성에 따른 가소성에 긍정적 근거들을 확장하게 할 것이다.

[그림 7] 생각을 문자로 바꿔주는 뇌-컴퓨터 연계장치

2021년 5월 12일자 과학 학술지 '네이쳐'에 실린 연구논문에는 그림 7의 뇌-컴퓨터 연계장치(Brain-Computer Interfaces; BCIs)를 통해 사지 마비 65세 환자가 생각하는 손글자를 대뇌피질 신경활동 측정 전환하여 1분에 최고 90자를 스크린에 문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환자와 같은 연령대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전송하는 속도라고 한다. 단절된 의근(mano)의 뇌전위 활동을 뇌-컴퓨터 연계장치를 통해 연결 복원시키는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근간의 관련 연구성과들의 축적이 이룬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의도와 행위 사이의 간극에 대한 리벳 실험과 함께 불교명상을 통한 발전의 방향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냅스의 차원에서 보자면, 기존의 시냅스 연결들은 유일하고 개별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각 개인의 경험들은 서로 다르며, 이에 따라 선택되는 시냅스의 연결패턴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뇌의 회복 탄력성은 시냅스가 가진 복합적인 유연성으로도 나타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유전자에 의해 대체로 동일한 종류의 회로들을 가진, 고유한 뇌를 소유하게 되지만, 동시에 개인들 간의 차이가 존재하며 시냅스 활동에 의해 선택되는 회로들의 연결패턴으로 인해, 저마다의 독특한 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불교명상의 선정과 집중의 통찰을 통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으로 얻어지는 '고요한 마음챙김의 지혜'는 신경세포들 간의 신호 전달 역할을 맡은 신경전달물질들의 미세한 시간의 작동에 영향을 미친다. 측두엽과 후두엽에 그에 상응하는 신경망에서 새로이 시냅스의 접속이 변화하고 갱신되거나 새로운 신경망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 미세한 순간순간들의 연이은 간격 사이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의 시냅스가 적절하게 명멸할수록 얕은 분별과 망상은 걸러지고 명정한 지각, 상상, 사고, 그리고 기억이 인출되는 것이다. 인간이 뇌를 통해 경험, 수행, 학습함으로 뇌의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일은 가능하다. 이것을 뇌 과학에서는 신경가소성(neural plasticity) 또는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삶의 행위와 가치를 형성하는 경험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경험의 축적이 뇌에 기억이라는 형태로 정보을 남기게 되어 있고, 유전자도 기억의 형태로 우리에게 기초 정보를 부여한다. 이러한 기억 또는 유전정보의 축적과 발현으로 의식이 바로 뇌를 통해 구현되는 시냅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는 뇌의 해부학적 구조는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1960년대 말의 정설이었다. 즉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은 태아 때부터 출생 직후까지 모두 결정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한번 결정된 뇌의 구조와 기능에는 큰 변화가 없으며, 성장에 따라 뇌의 양적인 크기만 조금씩 커져갈 뿐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뇌의 이상이나 손상의 경우, 뇌의 기능은 제한되거나 손상된 상태로 살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렇게 뇌의 이상과 손상은 변화될 수 없다고 단정했던 것은 뇌과학에 대한 일종의 기계적 결정론 내지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계적 결정론적인 관점은 초창기 인지과학자들이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유추한 경직된 단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뇌 신경 관련 측정 장비와 관련연구의 발달 등으로 기계론적 편견은 해소되었다. 불교명상의 기제를 밝혀주는 뇌신경학 관련 연구의 심화와 연관 기술장비의 발전은 앞으로의 연구 향방에 주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불교명상의 뇌과학적 접근/ 이병록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불교상담학과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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