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의 모더니즘
전통적인 권위와 도덕을 반대하고 현대 기계문명과 도시감각을 중시하는 사상적·예술적 사조(思潮)로서, 한국에서는 모더니즘을 주지주의라는 개념으로 한정시키기도 한다.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1930년대초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쇠퇴하고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면서 김기림·이양하·최재서 등이 영미 모더니즘 이론을 도입했다. 먼저 김기림은 시의 낭만주의적 성격을 배제하고 시의 음률과 의식성을 강조했다. 그는 평론 〈시의 기술·인식·현실 등 제문제〉(조선일보, 1931. 2. 11~14)·〈시작(詩作)에 있어서의 주지주의적 태도〉(신동아, 1933. 4)·〈오전의 시론〉(조선일보, 1935. 4. 20~ 5. 2) 등을 발표해 영미 주지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과거의 한국시를 자연발생적인 센티멘털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시에 있어서 현대문명의 비판과 시각적 회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또한 이양하는 〈조선현대시 연구〉(조선일보, 1935. 10. 4~17)에서 리처즈의 주지주의 이론을 소개했고, 리처즈의 저서 〈시와 과학〉(1946)을 번역해 단행본으로 펴냈다.
김기림과 이양하가 시론을 전개한 반면, 최재서는 산문 분야에서 모더니즘 이론을 펼쳤다. 그는 〈현대 주지주의 문학이론의 건설〉(조선일보, 1934. 8. 7~12)·〈비평과 과학〉(조선일보, 1934. 8. 31~9. 5)에서 T. E.흄의 불연속적 실재관을 바탕으로 낭만주의의 극복과 신고전주의 이론을 내세웠다. 이와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시인 김기림·정지용·김광균·장만영 등과 소설가 이상(李箱) 등이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이어 1949년을 전후해 모더니즘 운동이 다시 일어났는데, 김경린·김수영·박인환 등의 '후반기 동인'들이 모더니즘 시이론에 입각한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을 펴냈다. 이들은 당시 한국문단에 유행하던 주정적(主情的)인 시풍을 반대하고 제재를 현대도시와 기계문명에서 택했으며 이미지와 관념의 조화를 중시했다. 1950년대 후반에 와서는 1920년대의 영미 모더니즘 이론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모더니즘이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송욱의 비순수와 문명의 표정, 김춘수의 현실의식과 존재론적 이미지, 전봉건의 초현실적 발상과 전쟁 이미지, 김종삼의 음악적 이미지, 김광림의 주지적 서정 등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