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낮달/박분필-
된서리 맞기 전에 청 고추를 땄다
며칠이 지나도록 풋 티를 벗지 못하고
붉으락 푸르락 응석을 부리듯
한바구니 가을이 빨갛게 익어간다
아직은 고집스럽게 초록을 버리지 않는
고추를 골라내다가
어머니가 거처하던 빈 방을 들여다본다
그놈의 고추, 고추 하나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끝끝내 아들을 품지 못하고
서까래에 불과한 딸, 또 딸, 여섯 번째 막내인 나를
기록하고 끝나버린 어머니의 일기를 읽는다
아기가 태어날 때 고추를 달고 나는지 나서 그것이
풋고추처럼 맺히는 것인지 어린 나는 늘 궁금했다
밤사이 뚝딱 고추 하나 단단히 맺혀져 있기를
밤 세워 뒤척이다가 아침이면 그 절망을
앙가슴에 꽁꽁 묻어두시기도 했던
어머니의 소망은 절벽 끝 낙락장송에 걸려있는
작은 귀주머니를 따는 것이었을까
너무 높고 아슬아슬해서 줄이 끊어진 악기 같아서
끝끝내 따지 못한 까마득히 올려다만 보다가
평생토록 목젖이 아팠던
저 희끄무레한 낮달
비로소 홀가분하게 낙락장송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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