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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사러 가는 길/이정란

작성자돌샘이길옥|작성시간26.06.11|조회수4 목록 댓글 0

-악기 사러 가는 길/이정란-

 

무궁화 악기점 진열대에 첼로가 서있다
유리창에 이마를 들이대고
초롱한 눈빛으로 창 밖 거리의 악보를 읽는다
첼로의 느슨한 줄이 내 눈길 쪽으로 당겨지자
도시의 오후가 팽팽해지고
음을 맞추는 소리 붕붕거린다
유리창 안에 어른거리던 노래의 한쪽 문이
열리고 파도치듯 흘러나온
세바스찬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이
가을비에 떨어진 은행잎의 속살 속으로
아득히 젖어 든다
생의 한 줄이 끊어진 사람들의
잃어버린 음표가
굵어지는 빗소리에 떠나려간다
부르튼 손가락으로 슬픔을 짚어가는
얼굴들은 매달 낡은 악상 한 대
신호등에 걸려 주춤거리다
마지막 한 소절을 향해 달려간다
누군가 가슴줄을 뜯고 있을 때
소리를 잃은 관악기들이 목쉰 울음을 꺾어
삼키며 지하에 웅크려 선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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