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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는 길/김일용

작성자돌샘이길옥|작성시간26.06.11|조회수9 목록 댓글 0

-산을 내려오는 길/김일용-

 

두어 발 남은 햇살에
산봉우리가 불그레 익고 있다.
저 아래 모롱이를 돌아가는 열차는
오늘따라 쉰 목소리를 길게 빼 물었다.
놀란 억새들이 산을 흔들었다.
골짜기마다 가을을 내려놓고 가는 열차,
억새는 늙은 간이역에 혼자 남아
허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떠나온 길 되짚고 가는 길
서걱서걱 바람을 씹어 삼켰다.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
아무도 따뜻하게 길러준 이가 없었다.
시린 발등 옹이가 몇 개나 박혔기에
퍼렇게 멍든 하늘을 휘적이고 있는가,
소슬한 색조, 지는 해 산 그림자에
우리네 부질없는 몸짓이 일렁인다.
티끌을 떨쳐버린 그들 앞에서
허욕과 허세를 숨죽인다.
산을 내려오는 길, 석이가 돋은 미륵불이
무채색 마음 한 가닥을 내어놓는다.
석등이 켜지고
이윽고, 찾아 헤매던 마음 속 길 하나
환하게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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