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쓰다/김사이-
벚꽃 흐드러져 있는 이 봄밤
어릴 때 온갖 환상 속에서 부푼 둥근 저 달
사람들의 꿈을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터질 것 같은 달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좋을 저것은
옥탑방 아래 세상 또 누구의 꿈을 엿보고 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꿈을 빼앗긴 내 이력엔 무기가 없다
살면서 매 순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는 것은 아닌데
하루하루를 보이지 않는 무엇과 싸우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이지
물오른 새순처럼 열정이 있다고 적을 수 없고
성실한 직장 경력으로 적금이 꽤 된다고 적을 수도 없고
사회 발전에 기여한 인사도 아니어서,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이력서를 쓴다
어느 곳에도 온전하게 속하지 못하면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성별은 차별이 되고
갓 태어난 아기의 몸뚱이엔
주홍글씨처럼 부유와 빈곤이 나뉘어 찍힌다
자궁 속 태아에게도 계급이 있고
분노가 일기 전에 서글픔이 밀려들어
달리다 달리다 멈춰선 곳
시간은 자본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력을 앞세워
40년 발길이 다시 주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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