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自敍傳 /박분필-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갖춰진 지필묵부터 먼저 보인다
눈부신 백지 한 장이 바닥에 깔려 반짝이고
명암이 깊은 하늘에 자작나무붓끝이 막 묵墨을 찍는 중이다
붓을 떼자 기러기 한 마리
깃털에 묻은 먹을 털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쭉쭉 곧게 세워진 붓대들의 연결사이로
가득한 여백의 연결이 도드라져 보이고
붓과 여백이 마음껏 필묵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자작自作하는 중이다
먹을 갈고 붓을 다듬는다
찍고, 긋고, 맺기를 반복한다
자작나무 숲 백지 위에
구김 없는 또 한 장의 백지를 반듯하게 펼친다
자작자작 찢어 흩뿌리는
파지조각이 내 어깨에 하얗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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