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파도의 눈물
김 광 욱
1
목포 역전에서 ‘유달산 공원’이란 신호등 표지판이 있는 상가를 따라 언덕길로 올라가면 유달산 공원 광장이 나오고, 공원 입구 맞은편에 그 유명한 노적봉이 보인다. 노적봉은 해발 60미터의 작은 봉우리인데 공원 광장에서 보면 바위산의 노적가리 부분만 보이기 때문에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노적봉 때문에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계단과 돌과 화초로 꾸며진 노적봉 공원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놀고,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봉우리 너머는 절벽이고, 절벽 위에서 보면 목포 시내와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비탈길에서 유달산 공원 입구로 올라오는 길목에 상점과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상점과 식당들은 한산해 보였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평일보다 주말과 휴일의 장사에 기대를 거는 것 같았다.
식당들 가운데 별장처럼 눈에 띄게 예쁜 집이 하나 있었으니 그곳이 조미성 씨가 경영하는 ‘파도’란 카페식 식당이었다. 그곳에서는 낮에는 음식을 팔고 밤에는 차와 술을 팔았다. 심야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술집이 아니므로 간판에는 일반음식점으로 표시돼 있고, 음식이 맛있고 저렴해서 그런지 다른 식당에 비교할 때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호황은 아니고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살 만큼 현상 유지는 한다는 뜻이다.
단골손님들이 이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음식값이 싸고 여주인과 종업원들이 친절해서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심야 영업을 할 때 손님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 서비스는 격일로 제공되었다.
식당 주인 조미성 씨는 젊은 시절에 목포 남성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미색도 뛰어나서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남자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그녀는 돈 많은 선주와 결혼했는데 나이 스물 여섯 살에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뒤로 조미성 씨는 재혼하지 않고 극장을 인수해서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극장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그것도 그만두고 이 카페식 식당으로 업종을 바꿨다. 그녀는 그녀의 구상대로 이 이층 식당을 지어서 오 년 째 장사를 해 오고 있다.
미성 씨는 뭇남성들로부터 재혼의 유혹을 받았지만 굿굿이 절개를 지켰다. 그녀는 지금도 손님이 원하면 자신의 가야금 반주에 맞춰 창을 하고 유행가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아무도 그녀를 나이 마흔 여섯 살의 중년 여성이라고 믿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다.
이 식당은 사실 음식보다는 조미성 씨란 여자의 이름 때문에 더 유명했고 그 명성에 어긋나지 않게 음식이며 안주거리가 푸짐하고 맛있었다. 그래서 목포 사람이나 이미 그녀의 명성을 알고 있는 외지 사람들이 곧잘 이 식당을 찾았다. 음식은 미성 씨가 손수 만들었다. 그녀가 주방장 겸 주인이었다.
이 식당엔 또 하나의 특색이 있으니 종업원들이 모두 외국인이란 점이다. 야간에만 나와서 일하는 주방장은 조선족 중국인이고 또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 종업원은 필리핀인. 그들은 모두 불법 체류자들이었다. 몇 차례 강제로 추방될 위기를 맞았으나 여주인이 경찰서장과 잘 아는 사이여서 매번 위기를 잘 넘겼다. 물론 거기엔 돈이 필요했다.
미성 씨는 그 손아래 외국인 종업원들을 친형제,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라에 대한 애정은 친자식 이상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아마 미성 씨에게 자녀가 없어서 고독하니까 이 외국인 젊은이들에게 한 식구처럼 따뜻이 대하는지도 모른다.
“니가 돈을 모아서 고국에 돌아갈 때까지는 이 식당을 느그 집이라고 생각해라 잉. 뒷막음은 내가 다 해 줄 텐께 염려 말고 열심히 돈 벌란 말이여. 기왕 우리 한국에 왔은깨 부자가 돼 갖고 돌아가야제.”
미성 씨는 틈만 나면 마라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마라는 미성 씨의 사투리에 익숙해서 잘 알아들었다. 그녀는 남동생 라베카와 남동생의 친구 카라요다와 함께 삼 년째 불법 체류자로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처음 목포 역전에서 거리의 악사로 행인들에게 구걸하던 그들을 발견해서 보컬가수로 키워 준 사람이 미성 씨였다. 그들의 음악적 재질은 뛰어났다. 그들의 꿈은 한국에서 노래하는 것이었는데 중앙 무대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이만큼 살아갈 수 있게 보살펴주는 미성 씨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2
세 필리핀 젊은이는 야간에만 격일제로 손님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그것이 이 카페식 식당의 독특한 서비스라는 것이다. 마라는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리드싱어이고 두 남자는 기타와 오르간 연주자. 마라는 노래뿐 아니라 기타, 아코디언, 오르간의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들의 연주 시간은 밤 열 시에서 열 두 시까지 두 시간이지만 그들의 노래와 연주를 듣기 위해 손님들이 모여든다. 야간에는 성황이었다. 마라는 한국어에 서투르지만 웬만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두 남자 동료의 통역사이기도 했다.
마라는 한국 가수의 대중가요를 모두 소화하고 흉내내며, 이난영의 모창 실력은 일품이었다. 마라는 다른 대중가요 후미에 반드시 이난영의 히트곡을 한곡씩 불렀다. 마라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구슬퍼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 가수도 부를 수 없는 노래를 그녀는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라를 “또 하나의 이난영” “이난영의 환생”이라고 극구 칭찬했다. 마라가 왜 미성 씨의 사랑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 만했다.
마라는 이난영의 노래를 흉내내면서도 이난영이 어떤 가수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미성 씨는 이난영의 과거 행적에 대해 조사하고 마라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줄 필요를 느꼈다. 그러면 마라가 이난영의 노래를 부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난영의 노래를 부르려면 그 마음, 그 감정까지 이난영을 닮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가수 이난영이 테어났다는 양동 42번지의 옛집터를 마라와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그 자리엔 새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난영은 1916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이난영의 어머니는 식모였지. 제주도에 가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한깨 제주도에 있는 극장 주인집 식모로 들어갔던 모양이여. 소녀 이난영은 어머니를 따라가서 그 집에서 아기를 봐줬더란다. 일본인 극장 주인집에 유성기가 있어서 거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이난영이 따라 부르니까, 주인이 이난영의 노래에 반해서 자기 극장에서 순회 공연하는 악극단 단장에게 소개를 해 줬어. 그래서 이난영은 열 두 살에 극장의 막간가수로 데뷔하게 됐던 것이여.”
마라는 큰 눈을 깜박이며 미성 씨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마라는 미성 씨의 말을 다 알아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고, 마침내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너는 한국에서 가수가 되어 돈을 벌라고 가족과 떨어져 만리타국으로 떠나왔제만, 이난영은 배가 고파서 식모 어머니 따라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갔던 거여. 목포에서 제주도가 가까운 거리 같제만, 필리핀에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온 거리와 비교할 때, 그때 당시 배 타고 바닷길을 여행한 그 거리가 필리핀의 거리보다 가깝지 않을 거라 그 말이여. 뭔 말인지 감이 가냐?”
“예, 이해해요. 마라 많이 감동했어요.”
“니 고생은 이난영의 고생에 비하면 행복한 고생이다 그 말이다. 내가 이 얘기를 너한테 몇 번 했는지 아냐?”
“두 번, 아니 세 번 들은 것 같아요, 어머니.”
“두 번, 세 번, 반복한 이유가 뭣인지도 알것구나.”
“그럼요. 마라는 유치원생 아니에요.”
“알면 됐다. 노래할 때는 혼으로 불러야 한다. 너는 너무 기교에 치중하는 것 같아. 기교가 넘치면 감동이 반감되는 것쯤 너도 알 거여. 노래할 때는 감정을 발산하지 말고 아껴라.”
“예, 어머니 말씀, 맹세하겠어요.”
“맹세가 아니고 명심.”
“오, 쏘리 쏘리! 명심하겠습니다.”
“한국에 살라면 한국말 분명히 해라 잉.”
가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관중이나 관객을 감동시키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진정한 가수이다. 마라가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면 중앙 무대에 소개해 줄 수도 있었다. 마라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고 싶은 게 미성 씨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마라는 이곳이 좋다고 했다. 서울에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중앙 무대엔 흥미없다는 것이다.
마라의 소원은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라와 동생 라베카는 월급 타면 일정액을 고국의 부모님께 착실히 송금하고 있었다. 카라요다도 마라 남매만큼 착실꾼이었다. 마라의 부모님들은 케손시티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카라요다의 고향은 더 가난한 민다나오 섬의 농촌이었다. 그들 젊은이들의 꿈은 모두 돈 벌어서 귀국하는 것.
미성 씨는 그들에게 월급을 후하게 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마라와 그 동료들은 그 액수에 불만이 없었다. 그들이 경험한 바 어느 직장에서도 미성 씨만큼 많이 주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3
식당의 주 메뉴는 경양식과 한중식 몇 가지였다. 낮에는 미성 씨와 두 명의 필리핀인 젊은이가 근무하고, 야간에는 영란 씨(조선족 아줌마)와 한 명의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새벽 세 시까지 근무했다.
주간의 종업원 두 명은 마라, 라베카, 카라요다가 교대로 근무했고, 그들은 격일제로 밤 열 시에서 열 두 시까지 손님들에게 노래 서비스를 했다. 그리고 주간에 근무하지 않은 한 명이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손님 접대를 했다. 주간의 식당 주방장은 미성 씨이고 야간의 카페 주방장은 영란 씨였다.
식당 일층과 이층엔 각각 방이 하나씩 있어서 이층 방에서 두 청년이 기거하고 일층 방에선 마라가 기거했다. 일층 방이 더 깨끗하고 화려했다. 방세는 무료였다. 주인 미성 씨는 유달산 공원에서 가까운 아파트에서 출퇴근했다.
미성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슬하에 자녀가 없으면서도 미성 씨의 표정엔 그늘이 없고 장사꾼의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그녀는 외유내강의 타입이었다. 그렇게 예쁜 용모에 여성스러운 미덕까지 갖추고 있으면서도 남자 관계가 깨끗한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강한 여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 깐깐하던 미성 씨가 요즘 남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경찰서장에게 종업원들의 불법 체류를 눈감아 달라고 돈을 쓰고 사정한 것을 빌미로 서장님이 노골적으로 프로포즈를 해오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서장님은 성미가 까다로운 것 같았다. 고릴라처럼 우람한 체격에 성격도 괴팍스러웠다. 미성 씨가 필리핀인 종업원들을 좀 봐달라고 주는 돈을 받지도 않고 원칙대로 처리하려고 했다.
미성 씨는 아래 간부들과 담당형사들에게 뇌물을 주고 얼마 동안 버텼다. 잠잠해서 잊을 만하니까 형사들이 불법체류자 특별단속기간이라며 필리핀 종업원들을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 영란 씨는 야간 근무라 식당에 없어서 연행되지 않았다. 미성 씨는 경찰서장실로 찾아가서 봐달라고 사정했다.
“서장니임, 좀 봐주셔요. 우리 나라에 불법 체류자가 한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두 사람 추방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는 그 사람들 없으면 장사 못해요.”
미성 씨의 말은 현실에 근거한 말이었지 옳은 말은 아니었다. 억지로 갖다 붙인 궤변이라 할 수 있다. 서장은 어이없는지 허허 웃었다.
“꼭 불법 체류자를 쓸라고 하지 말고 우리 나라 사람 쓰면 되지 않소?”
“다 아시면서 그러시네. 그 사람들은 우리 집의 보배예요. 제가 그럭저럭 가게를 꾸려온 것도 그 사람들 덕분이지라우. 서장님도 마라의 노래를 들어보시면 반하실 거예요. 우리 나라에는 마라만큼 이난영의 흉내를 잘 내는 가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마라를 ‘또 하나의 이난영’이라고 탄복해요. 마라가 한국을 떠나는 건 우리 나라의 손실일 뿐더러 이 목포의 손실이기도 해요. 그랑깨 좀 모른 체해 주이시요. 예? 서장니임.”
“하, 나, 이런 사람 봤나? 국가의 법을 어기고 애국자가 되란 말과 똑같구먼. 장사해서 돈 벌고 망하는 건 당신 개인 일이여. 내가 그 사람들을 봐줬다가 상부로부터 문책당하면 당신이 책임지겠소? 나는 국가의 녹을 먹는 공직자인깨 공명정대하게 원칙대로 해야겠소.”
“문책 안 당할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잘 봐주셨듯이 서장님께서 모른 척 눈감아 주셔요. 부탁드립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추방당하면 정말 불쌍해요. 돈 벌어서 고국에 돌아갈라고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했는디, 그 꿈이 무위로 돌아가면 너무 가엾어요. 저에게 책임이 있당깨요.”
“당신은 사회사업가가 될 걸 길을 잘 못 들었구먼. 하여간 난 원칙대로 하겠소. 그리 알고 돌아가슈.”
4
서장은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았다. 미성 씨는 훌쩍훌쩍 울면서 서장실에서 나왔다. 마라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유달산 공원을 배회하다가 식당에 돌아오니 필리핀 종업원들이 미성 씨보다 먼저 돌아와 있었다. 석방해 준 것이었다. 미성 씨는 경찰서장에게 감사하다고 전화했다. 그것이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그날 밤 공연 시간에 맞춰 박홍식 서장이 찾아왔다. 경찰서장이 주인을 찾는다는 주방장의 전화를 받고 카페로 달려갔더니, 서장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가 싱글벙글 웃으며 미성 씨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난 조 사장이 밤에도 계신 줄 알고 왔더니 주야로 교대 근무를 하는구먼. 집에서 쉬신 분을 불러서 미안하요.”
“아녜요. 저같이 천한 사람을 불러 주셔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자, 한 잔 하시오.”
“감사합니다.”
미성 씨는 서장이 따라주는 맥주를 받기만 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한 잔 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한 잔 따라 주십시오.”
“예.”
미성 씨는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조금 마시고 서장의 잔에 술을 따르려고 했다.
“제가 드린 술을 다 마시고 그 잔에다 따라 주면 고맙겠소.”
“저는 술을 못합니다.”
“아니 카페 주인이 맥주 한 잔도 못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정말 못 마셔요. 술을 마시면 두드러기가 나고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마셔 주지.”
서장은 미성 씨가 마신 술잔의 남은 술을 마시고 빈 잔을 미성 씨에게 내밀었다.
“정말 전 술을 못합니다.”
“미성 씨가 마시란 게 아니고 나한테 따라주란 말이지. 센스도 둔하시구만.”
미성 씨는 조심스럽게 술을 따랐다. 그순간 서장은 미성 씨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미성 씨의 소원을 들어줬은깨 미성 씨도 내 소원 하나 들어 주시오.”
“무슨 소원을요?”
“미성 씨가 나와 데이트해 주면 불법 체류자들을 검거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겠소.”
“그건……”
“안 된다고 말할 줄 알고 있소. 미성 씨가 수절한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래서 부탁하는 거요. 시간은 미성 씨 편리할 대로 정하시오. 그리고 내게 전화해요. 내가 목이 빠지게 기다린단 걸 잊지 마시오.”
서장은 미성 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술값을 내고 나갔다. 구석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마라가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소프라노에 가까운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이십 개의 탁자엔 손님들이 거의 차 있었다. 마라는 노래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고민하는 여주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라의 목소리가 하도 청아하고 애틋해서 간장이 에어나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남자들의 유혹과 위협을 받았지만 지금처럼 난감한 적은 없었다. 필리핀 젊은이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5
서장과 데이트한다는 것은 육체를 허락한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홀몸으로 살면서 아직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데이트를 허락한 적이 없었다. 데이트 그 자체가 순결이 깨어진다는 의미였다. 과감히 거절할 것인가? 아니면 저 젊은이들을 위하여 금기를 깰 것인가? 무엇이 더 현명한 길인가? 어느 쪽이 나에게 이익뒬까?
미성 씨는 며칠 동안 그 문제로 끙끙 앓았다. 마라는 그 눈치를 챘는지 본국으로 귀국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옷도 사고 선물도 사고. 오늘도 값싼 재래시장을 돌아다녔다. 주인은 가슴이 아파 미칠 것 같았다.
마라와 함께 먹는 저녁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퇴근 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않고 홀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미성 씨를, 마라가 도둑고양이 같은 눈으로 조심스럽게 훔쳐보고 있었다.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감촉에 미성 씨는 고개를 들었다. 마라가 옆에서 웃고 있었다.
“어머니, 나 고국에 갈래. 어머니 걱정하는 거 더 이상 볼 수 없어요.”
미성 씨는 마라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었다.
“니가 목표한 돈을 모을 때까지는 떠날 생각하지 마. 나 힘은 없제만 오기는 있다. 지금까지 오기 하나로 살아온 나다.”
“그분이 어머니께 프로포즈하는데 어떻게 해요?”
“자식, 눈치도 빠르다. 여자가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았은깨 부딪쳐 봐야제.”
“어머니, 우리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 싫어요. 나 정말 싫어요. 그것은 마라에게 도움이 안 돼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알 텐깨 너는 걱정 말고 노래나 잘 불러. 애들한테도 그렇게 말하고.”
마라는 주인 옆 의자에 앉아 주인을 꼭 끌어안았다. 그것은 마라가 손님에게 말실수했을 때 주인에게 사죄하는 태도였다. 마라는 여간해서 실수를 하지 않지만 한국어가 서툴러서 가끔 손님에게 바보 같은 짓을 하곤 했다. 오늘은 그런 실수가 아니었다.
“나, 어머니한테 숨기는 것 있어요. 말해도 될까요?”
“뭔데, 말해 봐.”
“나 어머니 말씀을 거역했어요. 빨리 돈을 모으려고 나쁜 짓을 했어요.”
“뭐라고?”
“나 매춘했어요.”
주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라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아르바이트생과 영란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인과 마라를 바라보았다. “딱!”하는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마라는 주인에게 뺨을 맞고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었다.
“나가! 우리 집에서 나가 버려! 너의 나라로 가 버리란 말이여!”
미성 씨는 소리치고 나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마라는 따라 나가서 미성 씨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어머니, 미안해요. 미안해요. 마라 매춘하고 싶지 않았어요.”
“몇 번 잤냐?”
“두 번, 같은 남자와 잤어요.”
“그놈이 누구냐? 그놈의 새끼, 쌍판떼기 좀 볼란다. 그 더러운 놈의 새끼!”
“제가 유혹했어요. 그 사람 잘못 없어요.”
주인은 슬피 우는 마라를 일으켜서 노적봉 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밤배의 불빛들이 황혼 속에 찬란히 수놓여진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수평선의 붉은 노을이 점점 색채를 잃어 가더니 까만 어둠으로 변했다.
“부웅-” 구슬픈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여객선터미널에서 불 밝힌 배 한 척이 진도 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두 여자는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마구 흩으려 버렸다. 침묵하는 동안 주인은 마라의 손을 부서지게 주무르고 있었다.
6
노적봉. 이순신 장군이 왜군들의 눈을 속이려고 바위를 이엉으로 엮어 두르고 노적가리처럼 만들어 강강술래를 했다는 영산강대첩의 상징. 유달산 노적봉이 두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라야.”
하고 부르는 미성 씨의 목은 잠겨 있었다.
“예, 어머니!”
마라는 깜짝 놀라서 까만 눈으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니가 예쁜 줄 안다. 노래도 잘하고 하는 짓도 사랑스럽지. 그런 너를 어떤 남자가, 어떤 사내들이 그대로 두것냐? 막을라고 하는 내가 나쁘제. 그래도 난 너를 내 딸처럼 소중하게 생각한다. 필리핀에 계신 느그 엄마가 아시면 좋아하것냐? 그 어머니 마음과 내 마음이 똑같단다. 아무리 화대를 많이 준다고 해도 호텔에 따라가선 안 된다. 너를 위해서 부탁한다.”
“예, 어머니.”
“얘기는 끝났다. 다 잊어불고 새출발하자. 이 아름다운 목포에서, 이난영의 고향에서, 노래처럼 깨끗하게 살자.”
“예, 어머니.”
“가서 손님들께 잘해 줘라. 노래 부를 땐 열과 성을 다해 혼으로 부르짖어야 해. 이난영 씨가 지하에서 듣더라도 눈물 흘리게.”
“예,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
“넌 처녀야. 변함없는 목포의 처녀. 그렇지?”
“감사합니다.”
마라는 끝내 미성 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저는 어머니가 걱정돼요.”
“다 낡아빠진 육신, 아까울 게 뭐 있것냐? 달라고 하면 막 퍼 줄란다. 이만큼 줏대를 지켜 왔은깨 저승의 임께서도 날 용서해 주시것제.”
“안 돼요, 어머니. 그럼 우리들이 필리핀으로 돌아가겠어요. 우리 때문에 비난 들으면 안 돼요.”
“농담으로 한 소리다.”
미성 씨는 손으로 마라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두 여자는 일어서서 노적봉 계단을 내려왔다. 미성 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갔다. 마라는 열 시까지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손님들의 술시중을 들고, 열 시부터 열 두 시까지 남자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목포의 눈물’을 부를 때 술 마시던 손님들이 “잘한다!”고 앵콜을 청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7
새벽 세 시에 손님들이 자리에서 떠난 후 문을 닫으려고 하니 그 남자가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외항선의 선장이라고 하는 멋쟁이 남자였다.
“어서 돌아가세요, 아저씨. 이젠 아저씨를 만날 수 없어요.”
마라는 탁자의 술병을 치우면서 남자에게 소근거렸다. 남자가 취한 눈으로 마라를 바라보았다.
“왜? 돈이 부족하냐? 나 돈 얼마든지 있다. 니가 달라는 대로 주마.”
선장은 지갑에서 수표와 돈을 꺼내 보여 주었다. 몇백만원은 뒬 것 같았다.
“우리 마담 아시면 혼나요. 어서 가세요.”
“마담이 니 인생까지 간섭한다더냐? 난 너와 함께 나가겠다. 니가 안 가면 내일 모레까지 여기 앉아 있을란다.”
“사람들에게 소문나면 곤란해요.”
마라는 선장에게 애원했다. 선장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일어서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마라를 껴안으려고 했다. 마라가 피하는 바람에 선장은 바닥으로 넘어졌다. 악기를 치우고 이층으로 올라가던 라베카와 카라요다가 달려와서 선장을 부축해 주었다. 선장은 청년들을 뿌리치고 마라에게 덤벼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마라다. 마라, 나와 함께 가자. 돈은 얼마든지 주마, 끅!”
마라는 남자에게 붙잡힌 꼴이 되어 카페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러나 남자가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어서 그를 부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마라는 선장을 제지하려고 하는 필리핀 청년들에게 그러지 마라고 눈짓했다. 두 청년은 취객을 마라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택시 한 대가 공원 광장 쪽에서 달려왔다. 남자는 마라와 함께 타려고 하고 마라는 항거하고, 한참동안 실랑이한 끝에 남자 혼자 떠나갔다. 그러나 그 택시가 다시 돌아와서 카페로 들어가려고 하는 마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문이 열리고 남자의 힘센 손이 마라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차문이 닫히고 택시는 마라를 태우고 언덕길 아래로 굴러갔다.
열린 차창문으로 습기 품은 밤바람이 휘파람을 불며 몰려 들어왔다. 선장은 마라의 어깨에 기대어 쿨쿨 자고 있었다. 차를 멈추게 하고 카페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왠지 남자 곁에 있고 싶었다. 그와 헤어지려고 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선장의 멋진 체구와 달콤한 언어에 유혹되어 그에게 몸을 열어 주고 어느덧 정이 들었을까? 마라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마라의 발걸음도 무거울 게다.
다정다감하고 정에 약한 마라는 그녀의 노래처럼 맺힘이 없는 여자였다. 가수가 되어 돈 벌겠다고 한국에 와서 처음 몸을 허락한 남자가 김세호 선장이었다. 이국에 와서 첫순결을 바친 남자가 김세호 선장이었다. 꼭 돈의 유혹만은 아니었다. 선장의 강열한 인상과 뜨거운 눈빛을 봤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시선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선장과 만나서 육체를 허락하고 나서 후회는 없었다. 선장은 대단한 남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취하지 않았고 두 번째 만났을 땐 조금 취해 있었다. 그는 마라를 너무 기쁘게 해 주었다. 그 미칠 듯한 최초의 환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슬픔이 찾아왔다.
다시는 그를 만나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난 후, 헤어져도 그 남자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연민에서 찾아온 고독감이었다. 그래서 그에게서 받은 화대를 그의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 주었다. 돈을 돌려주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상쾌할 수 없었다.
오늘은 무슨 슬픔이 찾아올까? 마라는 그 슬픔을 기다리고 있다. 취한 모습으로 술냄새를 풍기며 그녀의 품에서 잠자고 있는 신사님. 마라는 오늘밤도 후회 없는 밤을 보내고 싶었다. 화대를 받지 않아야지. 받아서는 안 돼. 그가 그걸 주면 깨끗이 돌려줄 테야.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지. 난 매춘부가 아녜요 라고.
미성 씨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다음에 뭐라고 변명할까 겁이 났지만 걱정을 머리에서 거두었다. 오늘밤은 최대한 즐겁고 포근한 밤이 되게 하자. 이 남자가 원하는 마라가 돼 줘야지. 마라는 어둠속에서 혼자 미소했다. 매춘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8
그 시간에 미성 씨는 박홍식 서장과 함께 택시를 타고 영산강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고 러브호텔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연인을 유혹하는 강변 마을에서 택시를 세우게 했다. 서장은 기분이 좋은지 운전사에게 더블로 택시비를 주었다.
두 사람은 자정에 만나서 심야 나이트클럽에서 두 시까지 춤추고 술을 마셨다. 서장은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미성 씨는 처음으로 많은 술을 마셨지만 취할 정도로 과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정신이 총총한 상태에서 나이트클럽에서 나왔다. 서장은 술이 깰 동안 택시로 드라이브를 하자고 했다. 미성 씨는 서장의 제의에 쾌히 응했다. 그가 하자는 대로 다 해 주고 그녀의 최후의 보루인 수절까지 깨뜨릴 각오를 했다. 그다음 찾아오는 허무와 가책을 어떻게 감당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은 세 명의 불법 체류자를 살리는 일이므로 미련없이 여성의 자존심을 벗어 던지려고 결심했다. 그걸 결심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서장과 알게 뒨 지 석 달 만에 감행하는 일이었다.
그 사이 계절은 봄에서 무더운 여름으로 변해 있었다. 서장은 한 달 동안 잘 참고 기다려 주었다. 미성 씨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그녀가 전화해 주기를 기다렸다. 얌전한 학생처럼, 신사처럼 최대한 인내한 것 같았다. 고약한 성격과 달리 그는 인내심이 강한 남자였다.
서장도 미성 씨가 어떤 여자란 걸 알고 있으므로, 설마 불법 체류자 문제로 선뜻 그녀의 문을 열어 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조미성 씨. 조 사장이 나같이 비열한 놈을 만나 줬다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고 싶소. 지금이라도 싫다면 돌아가도 좋소. 불법 체류자를 눈감아준다는 약속은 유효하니깨 알아서 결정하시오.”
“저는 이미 결심했어요. 미성이는 그렇게 비싼 여자 아닙니다. 우리 얘들을 봐주셨으니 그 은혜를 갚아야지요.”
“정말 괜찮것소? 내 체중이 백킬로가 넘는디 그 가냘픈 몸으로 감당하것소?”
“호호호 서장님도! 무슨 그런 말씀을 하셔요? 체중이 무슨 상관있나요?”
“그래도 좀 미안해서. 내가 얼굴이라도 잘 생겼으면 미성 씨 째비가 되련만, 이럴 때 이 험악한 상판떼기를 만들어 주신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소.”
“이 건강한 체격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셔야죠.”
“내 맹세하건대, 만약에 내가 이 사실이 들통나서 직무유기 및 불륜죄로 교도소에 간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소. 국가의 녹을 먹는 놈이 해서는 안 될 짓이란 걸 알면서 데이트를 요구한 것은, 미성 씨가 대단한 여자란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소. 과연 소문 그대로구만.”
“저는 대단한 여자가 아니고 천한 장사꾼에 불과해요. 소문이 과장됐었나 보지요.”
“불법 체류자들을 왜 그렇게 도와 줄라고 하시오?”
“내 자식들 같은깨요.”
그들의 재능이 아까워서 도와 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 말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나라와 피부색을 떠나서 마라는 이난영의 노래를 끔찍이 사랑하고, 사람들이 이미 이난영과 흡사하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국내 가수도 흉내내지 못할 음색과 열정으로 이난영의 모든 것을 소화해내는 가수는 마라밖에 없었다.
미성 씨가 음악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처럼 마라와 그 동료들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고, 미성 씨가 목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난영의 음악 보급에 열성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노래 때문이고 목포란 항구 때문이었다. 목포가 있기에 불세출의 가수 이난영이 있고, 그녀의 노래를 부르는 마라가 있는 것이다.
“좋은 가수는 피나는 노력과 그를 뒷바라지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합디다. 불법 체류자 마라가 가수로 대성한다면 그건 미성 씨 덕분일 거요. 꼭 대성할 거요.”
서장은 입이 마르게 미성 씨를 칭찬했다. 그 칭찬은 비단 그의 목적을 달성하게 돼서 하는 말은 아닐 게다. 사나이의 진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장은 미성 씨를 건들지 않고 거기서 돌려보내 주었다. 그것이 미성 씨와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서장 자신을 위해서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9
사람들은 마라의 노래가 전보다 더 슬퍼졌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부르는 이난영의 ‘해조곡’은 애절하다 못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마라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야위어졌다.
김세호 선장은 카페식당 ‘파도’에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외항선을 타고 멀리 떠난다고 했을 때 마라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기약 없이 떠난 남자였다. 마라는 시간 나면 노적봉 바위 난간에 앉아 다도해를 바라보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 달, 두 달,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져도 선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어디 사는지. 그의 집이 어디인지. 마라는 그의 이름 석 자밖에 아는 게 없었다. 그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일까. 비몽사몽일 때도 있었다. 그는 꿈속의 남자였다. 그가 만약에 다시 돌아온다면 더 뜨겁게 혼을 다 바쳐 사랑해 주고 싶었다.
그는 외로운 사람 같았다. 어쩌면 가정도 가족도 없이 떠도는 나그네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나그네. 갈매기 같은 사람.
그 사람이 그립고 외로울 땐 혼자서 ‘해조곡’을 목청껏 불러 마음을 달랬다.
‘해조곡’은 마라가 ‘목포의 눈물’과 함께 즐겨 부르는 이난영의 히트곡이다. 이난영의 노래가 시공을 초월하여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난영의 노래를 접해 본 사람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애절한 음색과 여성적인 매력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성적인 매력이란 한국 여성의 공통적인 매력이다. 한국 여성의 매력은 동양 여성의 매력과 통하고 그 매력은 필리핀 여가수 마라의 여성스러움과 이어진다. 마라가 이난영의 노래에 매료되어 그 노래에 심취하고 그 창법을 익히는 데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물론 타고난 음악적 재질도 있었겠지만 마라가 한국에서 가수가 되려면 먼저 이난영의 노래를 잘 소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난영의 노래에는 한국 여성의 애절한 정서가 담겨 있었다. 그 정서는 일편단심, 정조 같은 여인네의 이미지와 통한다. 마라에게 그 정신을 심어 준 스승이 조미성 씨였다.
밤 한 시. 밖에는 찬바람이 휭휭 몰아치고 눈발이 송이송이 나부끼고 있었다. 마라는 남자 동료들과 서비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는 카페식당 안쪽 구석에 마련된 두세 평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마라와 남자 동료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손님들을 즐겁게 했다.
변한 것은 없었다. 불법 체류자라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형사들도 터치하지 않았다. 주인이 슬기롭게 잘 방패해 주기 때문에 고국에 돌아갈 때까지는 안전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미성 씨가 전보다 주량이 늘었다는 점과 마라의 몸이 쇠약해졌다는 점이었다. 마라는 선장이 떠난 후 그 남자만 생각하며 식욕을 잃어 버렸다. 손님들은 짙은 화장 속에 감춰진 마라의 창백한 슬픔을 알지 못했다. 미성 씨도 모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술손님들이 드문드문 찾아왔다. 오늘밤엔 마라가 근무하는 날이어서 마라가 손님들의 술시중을 들었다. 손님들은 마라를 보고 노래를 한 곡 불러 달라고 졸라대기도 하고 합석하자고 붙잡기도 했지만 마라는 원칙을 지켰다.
공연 시간 외엔 노래 부르지 말 것과 손님 자리에 합석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다. 주인이 없으면 가끔 무연주로 노래도 불러 주고, 아주 잠깐 손님 좌석에 앉아 술도 따라주지만 오늘은 미성 씨가 지키고 있었다. 미성 씨는 저기압이었다. 그녀는 혼자 빈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두 병째였다. 미성 씨에겐 과음이었다.
손님들이 미성 씨에게 합석하자고 불렀다. 짓궂은 손님은 미성 씨 옆에 앉아 몸을 만지고 희롱했다. 미성 씨는 빙글빙글 웃으며 짓궂은 남자들에게 “난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미성 씨가 그렇게 혼자서 과음한 적이 없었다. 술이 체질에 안 맞아서 여간해선 마시지 않던 그녀가 맥주 두 병을 쉽게 마신다. 그러나 그녀는 취한 게 아니었다. 취할 수가 없었다.
미성 씨는 왜 저녁에 퇴근하지 않았을까? 오늘 저녁엔 손님이 좀 많아서 주방 일을 도와 주려고 늦도록 남아 있었던 것인데 김홍식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넉 달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는 어느 호프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잠깐 와서 합석해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서장님, 약속을 지키셔야죠.”
“알아 알아, 안다고. 보고 싶어서 헛소리 한번 해 본 것인깨 신경 쓰지 말소.”
“사모님 많이 사랑해 주셔요. 사모님과 저는 하나도 다른 게 없는 여자예요.”
“마누라 얘기는 하지 말게. 마누라는 그저 식구일 뿐이여. 사랑을 찾을라고 해도 사랑할 구석이 있어야 말이제.”
“노력하셔야죠.”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짤 것인가?”
“서장님 주위엔 젊고 예쁜 여자들이 줄을 선 줄 알고 있는데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여. 날 호색한으로 보지 말게. 이 나이에, 이 위치에서 내가 색을 밝힌들 체력이 따라 주겠는가? 정력이 뒷받침해 주겠는가? 난 덩치만 컸제 소심한 놈이여. 일배끼 모르는 놈이시. 그런 내가 자네한테 푹 빠졌당깨. 생각을 안할라고 해도 자네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말이여. 그날 밤 데이트 생각하면 황홀해서 잠이 안 온당깨.”
‘그날 밤’이란 단어를 가지고 상상을 엮어 봤으나 지피는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조금 취해 있었으나 손목 한번 잡지 않았다. 서장은 건장한 체구와는 달리 미성 씨를 점령하려고 보채지도 않았고 너무 순수했다.
미성 씨를 건들지 않고 그냥 돌아갈 만큼 분위기가 나쁘지도 않았는데 서장은 미성 씨의 털끝 하나 안 만지고 그냥 귀가시켰다. 서장이 원한 건 미성 씨의 진심이었던 것 같다.
“저도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고 있네요.”
“아름답게 산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리워한다는 것은 더 기쁜 일 아닐까요?”
“맞아. 그렇게 살드라고. 어려운 일 있으면 항상 전화하게. 그 불법 체류자들. 나에겐 은인이네. 미성 씨 같은 귀한 사람을 알게 해 줬으니.”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서장님. 안녕히 주무세요.”
미성 씨는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10
미성 씨는 잔에 남은 술을 다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마라가 손님 자리로 술을 나르다가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고 미성 씨를 부축해 주었다.
“고맙다, 내 딸!”
미성 씨는 마라의 얼굴에 쪽 입을 맞추고 웃었다. 미성 씨는 혼자서 카페에서 나갔다. 찻소리가 들렸다. 음주 운전은 안 되는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자기 차를 운전하고 귀가하실 모양이다.
마라는 주인이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는 걸 확인하고 나서 일을 계속했다. 오늘밤은 손님이 일찍 끊어졌다. 미성 씨에게 짓궂게 굴던 손님들이 떠나간 뒤 다른 손님이 오지 않았다. 영란 씨가 일찍 치우자고 해서 두 시에 폐점했다.
주방장이 퇴근한 뒤 마라는 가게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옆에 작은 화장실이 있고 세면대와 샤워기가 있었다. 마라는 옷을 벗고 더운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끝내고 자리에 엎드려 하루에 일어난 일을 일기에 적었다. 일기는 필리피노(필리핀어)로 꼬박꼬박 기록했다.
이층에서 두 청년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라베카와 카라요다는 형제처럼 친하면서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욕짓거리를 하고 마구 싸웠다. 카라요다는 서울 밤업소에서 노래하기를 원하고 라베카는 목포에 살고 싶어하는데 그 문제로 또 다투고 있었다. 필리피노와 영어를 섞어가며 욕설을 주고받다가 조용해졌다.
항상 있는 일이라 마라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 세 사람은 이제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도 없었다. 혼자서는 가수 활동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성 씨만큼 월급을 후하게 주는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라의 꿈은 이삼 년 돈을 더 벌어서 필리핀에 돌아가 음반을 내고 정식 가수로 데뷔하는 것. 그런 다음 떳떳이 여권 수속을 밟고 한국에 와서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국제 가수가 되는 게 목표였다. 목포에서의 생활은 마라와 동료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들이 가수로 성장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마라는 일기를 쓰고 나서 방구석에 흩어진 악보집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악보집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헤조곡’ 등 이난영의 히트곡이 담긴 악보집이었다. 그것은 조미성 씨가 어렵게 구해 준 연주의 필수본이었고 마라가 가장 아끼는 책이었다.
도로에 면한 작은 창문으로 눈발이 희뜩희뜩 스쳤다. 바람에 창문이 흔들거렸다. 그 흔들림에 섞여 누군가 식당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노크소리가 점점 뚜렷이 마라의 청각에 파고들었다. 바람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문을 열어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어떤 주정뱅이가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가 보다. 전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다. 폐점 후엔 술을 팔지 않지만 손님이 원하면 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정뱅이는 곤란하다. 주정뱅이건 맨정신이건 마라의 마음이니까 그녀의 결정에 달려 있다.
정이 많고 마음이 넓은 마라는 식당에 찾아온 방문객을 홀대할 수 없어 일단 나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주정뱅이 같으면 좋은 말로 타일러서 보내야지.
마라는 실내 전등을 켜고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 밖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도로 위엔 눈이 하얗게 쌓여 있고 남자의 모습은 눈에 덮여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라는 느낌으로 그가 선장이란 걸 알았다. 그녀의 가슴에 뜨거운 불길이 일고 있었다.
마라는 떨리는 손으로 출입문을 열어 주었다. 순간 덩치 큰 사나이가 짐더미처럼 무겁게 마라의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숨막힐 듯한 키스와 포옹. 남자의 얼굴에 묻은 눈이 녹아서 끈적거렸다. 그의 입에선 술냄새가 풍겼다.
“호텔로 가자!”
선장은 마라를 번쩍 안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밝은 불빛에 선장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구레나룻이 성성했으나 옛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토실토실하던 살이 쑥 빠져서 병자처럼 창백해진 그 깡마른 얼굴이었다.
“안 돼요. 당신 집으로 가세요. 저는 못 가요.”
“왜 못 가? 누가 이까짓 가게 훔쳐갈까 봐서? 그때처럼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가 불면 되제.”
“그때와 사정이 달라요. 마라는 변했어요.”
“변했다고? 내가 보기엔 그대론디.”
선장은 웃으면서 마라의 얼굴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마라는 껴안으려고 하는 그의 몸을 떠밀고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애교의 제스처였고, 그녀는 너무 좋아서 허둥대고 있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미칠 듯한 그 기쁨.
마라는 방으로 들어가서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불처럼 빨간 외투였다. 선장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외투를 입고 나오는 마라를 번쩍 안고 키스했다.
두 사람은 눈 쌓인 비탈길을 어깨동무하고 걸었다. 눈이 발목에 찼다. 눈보라가 두 사람을 휘감았다. 비탈길 모퉁이를 돌 때 두 사람은 미끄러져서 함께 눈밭 위로 뒹굴었다.
선장은 재미있는지 마라를 껴안고 계속 뒹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소리내어 웃었다. 웃음소리는 눈 내리는 새벽 거리로 청아하게 퍼져 갔다.
공원 쪽에서 택시가 한 대 달려왔다. 선장은 손을 들어 택시를 세웠다. 택시를 타고 그 해변 호텔로 달렸다. 택시 안에서 선장은 점잔을 뺐다. 그러나 그의 손은 마라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땀이 흘러 끈적거렸다.
눈보라 속에 건물과 전봇대들이 휙휙 지나갔다. 눈발 속에 불 밝힌 차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마라는 꿈을 꾼 기분이었다. 남자의 품은 포근하고 아늑했다. 한없이 빨려들고 싶은 가슴이었다. 그가 돌아오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방안의 모든 물건이 그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눈보라는 조금 그쳐 있었다. 살눈이 한 잎씩 나부끼고 있었다. 호텔방에 들어선 순간 선장은 마라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다음엔 등에 업고 방안을 한 바퀴 돌았다.
선장은 마라를 침대 위에 내리고 외투를 벗겨 주었다. 두 사람의 외투는 눈에 젖어 축축했다. 그들은 부부처럼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침대 위에서 하나가 되었다. 격정의 시간이 흘렀다.
서로 만족할 만큼 즐겁게 기쁨을 주고받고 나서 마라는 선장의 팔을 베고 그의 품속에서 잠이 들었다. 내일은 마라가 쉬는 날이다. 그녀는 마음놓고 아침까지 푹 잤다.
창문으로 비치는 밝은 햇살에 마라는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눈은 그치고 하늘은 쾌청했다. 마라는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밝고 화려한 날이 있었던가.
그와 만날 땐 항상 불안하고 쫓기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그의 품에서 늦잠을 자긴 처음이었다. 어쩜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제 돌아가서 미성 씨에게 모든 걸 고백해야겠다. 마라가 한 남자의 아기를 임신했단 걸 알리고 심판을 기다리자. 미성 씨가 노발대발하여 추방하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아기를 낳으리라.
어쩜 미성 씨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지 몰라. 그분이 용서하고 눈감아주면 한국에서 아기를 낳아 기를 생각이다. 마라의 결심은 서 있었다.
옆자리가 허전하여 돌아보니 빈 이불만 있고 선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의 품속에 누워 있는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뜨겁던 체취는 간 곳 없고 메모쪽지 한 장이 베개 아래 놓여 있었다.
<마라. 나는 가정이 없다. 가정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여자가 날 붙잡지 않았어. 가정을 가지려고 돌아와 보면 여자가 먼저 변해서 떠났지 뭐냐. 이젠 내가 붙잡아야지. 바다 생활도 이젠 지겹다. 돈도 벌 만큼 벌었으니 고향에 돌아가서 농장이나 하고 싶다. 이번 항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너를 두고 떠나기 싫지만 무역회사와 계약이 돼 있어서 약속을 지켜야 해. 외국 체류 기간은 약 2개월 걸릴 것 같다. 건강히 잘 있어 다오. 열심히 노래해서 네 꿈인 제2의 이난영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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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마라(24)……필리핀인 불법 체류자이며 가수,
카페식당 ‘파도’의 종업원
조미성(46)……카페식당 ‘파도’의 여주인,
마라와 그 동료들을 보살피며 몸을 아끼지 않는 여자
김세호(38)……외항선 선장,
마라 앞에 바람같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남자
박홍식(54)……고지식한 경찰서장,
불법 체류자 문제로 미성 씨와 알게 된다
라베카(22)……필리핀 불법 체류자,
마라의 친동생, 기타 연주자
카라요다(22)……필리핀 불법 체류자,
라베카의 친구, 오르간 연주자
영란 씨(35)……카페 주방장, 조선족 불법 체류자
카페 손님들
택시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