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27)
고구마를 삶으며
― 서안나
고구마를 삶다 보면 제대로 익는지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쿡쿡 찔러보게 된다
나의 어머니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은 잎사귀도 덜떨어진 딸년
잘 익고 있는지를
항시 쿡쿡 찔러보곤 하신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
차 조심해라 겸손해라 감사해라
고구마 푸른 줄기처럼
휴대폰 밖으로 넝쿨져 뻗어 나오는 어머니
세상에 사나운 일 벌릴까 봐
40이 넘어도 설익은 딸년
마음과 영혼 병들지 말고 제대로 익으라고
핸드폰 속에서 쿡쿡 찔러보는 어머니
뜨거운 아랫목에서 뒹굴 거리며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하는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딸년
팔순 어머니가 환갑 넘은 아들이 출근하는데 차 조심하라고 일렀다던가. 부모들에게 자식들은 특히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이다. 따라서 환갑이 넘었다는 것은 사회적인 나이이지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애기일 뿐이다. 그러니 출근하는 애기에게 차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머니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안나의 시 <고구마를 삶으며>에는 바로 그런 어머니가 나온다. 시인의 어머니는 딸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 / 세상에 내놓’았지만 어머니 눈에 딸은 ‘잎사귀도 덜떨어진 딸년’이다. 그러니 자라는 동안 ‘잘 익고 있는지를 / 항시 쿡쿡 찔러보곤 하신’단다. 이 찔러보는 행위는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 / 차 조심해라 겸손해라 감사해라’는, 딸 입장에서는 잔소리들이다. 언제 어디에 있건 휴대전화가 있으니 ‘고구마 푸른 줄기처럼 / 휴대폰 밖으로 넝쿨져 뻗어 나오는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딸을 찔러 보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40이 넘어도 설익은 딸년’이 혹여 ‘세상에 사나운 일 벌릴까 봐’ 그러시는 것이다. 나아가 ‘마음과 영혼 병들지 말고 제대로 익으라’는 바람이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 속에서 쿡쿡 찔러보’시는 것이다. 그러나 다 큰 딸은 ‘뜨거운 아랫목에서 뒹굴 거리며 /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만 한다. 그렇게 어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찔러보는 덕에 시인은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딸년’이 된다.
시 속에 나오는 쿡쿡 찔러보는 행위와 잘 익어가는 모습은 첫 두 행에 제시된 고구마 삶기에서 나온 말이다. ‘고구마를 삶다 보면 제대로 익는지 /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쿡쿡 찔러보게 된다’고 제시하지 않았는가. 즉, 딸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관심을 고구마를 삶다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려고 젓가락으로 찔러보는 행위로 환치시켜놓은 것이다. 자신이 먹을 고구마가 잘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찔러 확인하고 아직 덜 익었으면 더 삶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딸의 삶을 쿡쿡 찔러보는 것은 덜 익었다고 다시 불러 젖 더 먹이자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가장 고결한 것 -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딸은 그것이 사랑인 줄을 모른다. 그냥 귀찮기만 할 것이다. 그러니 ‘아랫목에서 뒹굴 거리며 /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만 한다. 그러나 그런 대답조차, 비록 어머니의 사랑인 줄 모른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바람대로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쩌랴. 우리네 자식들은 훗날, 어머니의 그 잔소리를 들을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지 않는가. ♣
[출처] 서안나의 <고구마를 삶으며>|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