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서안나의 <고구마를 삶으며>

작성자돌샘이길옥|작성시간26.06.05|조회수15 목록 댓글 0

내가 읽은 詩 (727)

 

 

 

 

고구마를 삶으며

 

― 서안나

 

고구마를 삶다 보면 제대로 익는지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쿡쿡 찔러보게 된다

나의 어머니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은 잎사귀도 덜떨어진 딸년

잘 익고 있는지를

항시 쿡쿡 찔러보곤 하신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

차 조심해라 겸손해라 감사해라

고구마 푸른 줄기처럼

휴대폰 밖으로 넝쿨져 뻗어 나오는 어머니

 

세상에 사나운 일 벌릴까 봐

40이 넘어도 설익은 딸년

마음과 영혼 병들지 말고 제대로 익으라고

핸드폰 속에서 쿡쿡 찔러보는 어머니

뜨거운 아랫목에서 뒹굴 거리며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하는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딸년

 

 

팔순 어머니가 환갑 넘은 아들이 출근하는데 차 조심하라고 일렀다던가부모들에게 자식들은 특히 어머니에게 자식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이다따라서 환갑이 넘었다는 것은 사회적인 나이이지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애기일 뿐이다그러니 출근하는 애기에게 차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머니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서안나의 시 <고구마를 삶으며>에는 바로 그런 어머니가 나온다시인의 어머니는 딸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았지만 어머니 눈에 딸은 잎사귀도 덜떨어진 딸년이다그러니 자라는 동안 잘 익고 있는지를 항시 쿡쿡 찔러보곤 하신단다이 찔러보는 행위는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느냐? / 차 조심해라 겸손해라 감사해라딸 입장에서는 잔소리들이다언제 어디에 있건 휴대전화가 있으니 고구마 푸른 줄기처럼 휴대폰 밖으로 넝쿨져 뻗어 나오는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딸을 찔러 보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40이 넘어도 설익은 딸년이 혹여 세상에 사나운 일 벌릴까 봐’ 그러시는 것이다나아가 마음과 영혼 병들지 말고 제대로 익으라는 바람이다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 속에서 쿡쿡 찔러보시는 것이다그러나 다 큰 딸은 뜨거운 아랫목에서 뒹굴 거리며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만 한다그렇게 어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찔러보는 덕에 시인은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딸년이 된다.

​시 속에 나오는 쿡쿡 찔러보는 행위와 잘 익어가는 모습은 첫 두 행에 제시된 고구마 삶기에서 나온 말이다. ‘고구마를 삶다 보면 제대로 익는지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쿡쿡 찔러보게 된다고 제시하지 않았는가딸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관심을 고구마를 삶다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려고 젓가락으로 찔러보는 행위로 환치시켜놓은 것이다자신이 먹을 고구마가 잘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찔러 확인하고 아직 덜 익었으면 더 삶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딸의 삶을 쿡쿡 찔러보는 것은 덜 익었다고 다시 불러 젖 더 먹이자는 것이 아니다이 세상에 가장 고결한 것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딸은 그것이 사랑인 줄을 모른다그냥 귀찮기만 할 것이다그러니 아랫목에서 뒹굴 거리며 알았다고요 귀찮은 듯 대답만 한다그러나 그런 대답조차비록 어머니의 사랑인 줄 모른다 하더라도어머니의 바람대로 뜨뜻하게 잘 익어가는’ 것이리라.

그런데 어쩌랴우리네 자식들은 훗날어머니의 그 잔소리를 들을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지 않는가

[출처] 서안나의 <고구마를 삶으며>|작성자 이병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