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28)
뼈다귀집
― 김신용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줏어온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뉘 입에선지 모르지만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가는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유유롭고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첫새벽 할머니는 뼉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밤새도록 푹 고아서 아침이 오면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뼉다귀를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지요
날품팔이지게꾼 부랑자 쪼록꾼 뚜쟁이 시라이꾼 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뼉다귀를 고으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와 LG서울역빌딩 사이에 있던 ‘양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날품팔이지게꾼, 부랑자, 쪼록꾼, 뚜쟁이, 시라이꾼, 날라리똥치꼬지꾼’ 등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양동이었다. 뚜쟁이가 있었으니 몸파는 여자 역시 당연히 있는 것이었고. 그런데 1978년에 양동 일대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그 빈민가 한가운데 큰 길이 났다. 자연스레 양동은 두 동강이 나버렸고 이내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동은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1980년이던가, 서울시에서는 ‘양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일대를 남대문5가에 편입시킨다. 아예 ‘양동’이란 이름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2018년, 지금 그 시절 양동이라 불리던 곳에 가면 상전벽해란 말로도 설명이 안된다. 회색빛 빌딩 숲 속에서 아무리 눈을 씻어도 ‘빈민가’ 양동의 ‘빈’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시야에서 아니 내 기억 속에 사라졌던 ‘양동’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김신용의 시 <뼈다귀집>이었다. 하긴 1988년 작이니 30년이 훌쩍 지나 접한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시인 김신용은 1960년대 초 무작정 상경하여 매혈, 걸식, 아리랑치기, 지게꾼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했던 부랑자였단다. 그에게는 소년원과 감방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고 그러는 동안 흔히 말하는 ‘별’을 다섯 개나 달았다던가. 그런 밑바닥 생활에도 문학에 대한 불씨를 살려낸 그는 1988년 마흔넷의 나이에 ‘양동시편 - 뼈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시인이 되었단다.
시를 보자. 첫 행에서 시인은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라 묻는다. 시인이 잘 아는 곳이기에 그대도 알고 있느냐,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리라. 그 뼈다귀집은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고, 그곳에서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단다. 간판도 없이 그저 누구의 입에서부터인지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술집이지만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단다.
어느 정도였을까.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가는 /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유유롭고 /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었단다. 그러나 ‘첫새벽 할머니는 뼉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 밤새도록 푹 고아서 아침이 오면 /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뼈다귀를 /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던 곳이다.
‘몸 보하는 디는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가 있던 곳.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뼉다귀를 고으며 늙어온 할머니’이다. 그곳에서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 분신하고 싶었던지’ 모른다. 어쩌면 그 음식을 먹으며 그나마 삶의 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아등바등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양동은 없어졌다. 당연히 그 뼈다귀집도 없어졌다.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다. 분명 양동도 뼈다귀집도 없어진 번화가가 되어버린 남대문로5가이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양동의 뼈다귀집 같은 곳이 있을 것이란 시인의 추정이다. 마지막 두 행이 바로 그런 시인의 마음이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수미상관으로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라 묻고 있지만, 시인이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뼈다귀집은 양동이 없어지며 사라졌다. 그러나 밑바닥 생활 속에서도 그 뼈다귀집에서 종종 할머니가 끓여낸 뼈다귀탕 술국을 먹으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시인이 아니던가. 그 뼈다귀집이 어디로 옮겼냐고 묻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 뼈다귀집에서 함께 삶을 버텨냈던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라도 삶을 버티게 해 준 할머니의 사랑이 어디에선가 형식은 다르지만 살아남아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인의 기대이다.
<뼈다귀집>을 읽으면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빈민가 양동에서의 처절한 삶과 거기서 삶을 지탱했던 시인의 삶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면서 그 뼈를 깎는 괴로움 속에서도 그토록 밝은 사랑의 정신과 눈부신 감성의 눈길을 그대로 지녀왔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놀라웠다’고 한 어느 평자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고교시절, 남산에서 있었던 행사를 끝내고 내려오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길을 잘못들어선 바람에 지나치게 되었던, 처음 가 본 양동. 그곳은 지저분했고 그야말로 냄새나는 곳이었다. 더 커서는 텍사스나 오팔팔 혹은 종삼과 함께 순간의 욕정을 해소하고 온 녀석들 입에 오르내리던 곳이었다. 그런데 시를 읽으며 문득 부끄러워졌다. 그래,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었지 않았던가. 나는 그 사람들을 외면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바삐 통과하지 않았던가.
시인은 묻는다.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라고. 나는 안다. 비록 양동은 없어졌지만 전국의 재래시장 어느 한켠에 아직도 사랑이 담긴, 시인이 갔었던 양동의 그 ‘뼉다귀집’이 있다는 것을. ♣
[출처] 김신용의 <뼈다귀집>|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