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29)
비무장지대 8 - 여의도
― 김기원
날갯짓하는 한 마리 벌의
속삭임에도 설레며 털어놓는
들꽃
한 마리 호랑나비의 춤사위에도
가녀린 눈길 속으로 삼키고 마는
억새
어느 날 통통 덮어쓴 채 건너와서
뿌리내려 하나 되는 꽃 피워 내리는
방망이
한 마리 고추잠자리의 날개 빛에
노랗게 물들고 얼룩져 밀어닥치는
너른 둔치
여의도(汝矣島)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딸린 한강의 하중도(河中島)이다. 본디 모래로 이루어진 쓸모없는 땅이었기에 ‘너나 가져라’ 하여 ‘너섬’이라 불리던 것을 너 여(汝)를 붙여 ‘여의도’라 했단다. 1916년에 일제가 간이비행장을 건설하며 비행기지로 알려졌는데, 8·15광복 후에는 미군이 접수, 김포 비행장이 건설된 후에도 비행장은 존속했다. 1968년 윤중제(輪中堤) 축조 및 신개발 사업이 착수되어 공항은 폐쇄되었고 그 자리에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대응한 5‧16광장이 건설되어 국군의 날 등 여러 국가 행사가 열리기도 했으나 이 광장 역시 현재는 여의도공원으로 바뀌었다.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각 당의 당사가 있어 정치일번지라 불리며 각종 증권거래소를 비롯한 여러 금융기관이 밀집하여 증권가로도 알려져 있고 아파트가 밀집하여 ‘부자동네’로 불리기도 한다.
김기원의 시 <비무장지대 8 - 여의도>는 이 여의도를 ‘들꽃, 억새, 방망이, 둔치’ 네 단어로 표현한다. 물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비무장지대’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여의도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인이 제시한 네 단어를 통해 여의도는 ‘비무장지대’란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시 속에 그려내고 있는 ‘여의도’는 금융가라든가 부자동네란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 오늘날의 ‘여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당연히 시가가 들어서기 전의 여의도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1, 2, 4연이 그렇다. ‘날갯짓하는 한 마리 벌의 / 속삭임에도 설레며 털어놓는 / 들꽃’이라면 여의도는 들꽃과 벌로 대표되는 야생화와 곤충들의 천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마리 호랑나비의 춤사위에도 / 가녀린 눈길 속으로 삼키고 마는 / 억새’를 보면 1연에서 이야기한 야생화와 곤충들의 천국이 더욱 강조된다.
그런데 3연이 문제이다. ‘어느 날 통통 덮어쓴 채 건너와서 / 뿌리내’린 것들은 무엇일까. 게다가 여의도에 건너와서는 ‘하나 되는 꽃 피워내리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리고 이어진 ‘방망이’는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이다. 1, 2 연에 등장하는 벌이나 호랑나비처럼 여의도에 건너온 것은 분명한데 ‘통통 덮어 쓴 채’ 건너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나아가 ‘하나 되는 꽃 피워내리는 / 방망이’라니. 결국 ‘방망이’에 초점을 맞추면 국회의 의사봉이 아닐까. 그렇다면 건너온 것들은 정치인, 국회의원이 된다. 여의도에 국회가 있고 여러 정당이 있으니 정치중심지로서의 여의도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다시 자연을 이야기한다. ‘한 마리 고추잠자리의 날개 빛에 / 노랗게 물들고 얼룩져 밀어닥치는’ 곳 - 바로 들판이고 이를 시인은 ‘너른 둔치’라고 하는 것이다. 둔치가 무엇인가. 강이나 내(川) 등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또는 물가의 둔덕진 곳이 둔치이다. 한강 그리고 영등포쪽으로는 샛강에 둘러싸인 여의도는 분명 둔치이다. 그것도 ‘너른 둔치’이다.
잘 알다시피 오랜 기간 여의도는 들꽃과 억새들의 천국이었다. 비록 일제 강점기에 군용비행장이 만들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미군 비행장이었지만 들꽃과 억새가 만발한 ‘비무장지대’였다. 비록 70년대 이후의 본격적 개발에 따라 시가지가 형성되고 여러 빌딩 숲을 이루고는 있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둔치가 있고 그 둔치에는 벌, 들꽃, 호랑나비, 억새, 고추잠자리……들이 살고 있다.
여의도 한복판은 분명 정치 1번지에 금융중심가이다. 게다가 밀집된 아파트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조금만 벗어나 한강변이나 샛강 주변으로 가면 봄철 한 때 붐비는 윤중로의 벚꽃길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둔치로 둘러싸인 야생화와 곤충들의 세상이다. 3연에 나오는 ‘방망이’는 분명 각종 법안을 통과시켜 ‘하나 되는 꽃 피워’내려는 의사봉, 즉 정치1번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시인은 정치나 금융보다는 ‘너른 둔치’에 집중한다.
둔치만이겠는가. 5‧16 광장 - 여의도 광장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거기 여의도공원이 들어서 있지 않은가. 그러니 시인의 눈에 여의도는 온갖 들꽃이 피어나고 곤충들이 뛰노는 ‘너른 둔치’임이 분명하다. 한국전쟁 이후 ‘비무장지대’는 수십 년 인간의 발자국이 없는, 이제는 자연의 보고라 하지 않는가. 여의도 너른 둔치는, 아직은 비무장지대, 자연이 숨쉬는 곳이리라. ♣
[출처] 김기원의 <비무장지대 8 - 여의도>|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