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31)
유방(乳房)
- 박두진
누구가 저기를 올라갈까
꿈으로 쌓아올린 하늘 닿는 저 꼭지
터지면 샘물 솟을 융기의 저 내밀
누구가 저기를 올라갈까
손 씻고 발 씻고 넋을 마저 씻고서도
그대 아니 가슴 열면 기웃조차 할 수 없는
정해라 펄펄 오는 꽃의 사태 그 너머
희디하얀 저 봉우리를 누구가 올라갈까
수석(水石, 壽石)이란 단순히 물속에 있는 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보다는 물과 돌을 아울러 이르거나 물과 돌로 이루어진 자연의 경치를 일컬어 주로 실내에서 보고 즐기는 관상용의 자연석을 뜻한다. 분명 수석은 돌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돌이 아니라 물과 바람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낸 어떤 형상으로서의 돌이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수석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박두진은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 문단에 ‘수석시(水石詩)’를 처음 소개했고 <수석열전(水石列傳)>이란 시집을 펴낸 시인으로 유명하다. 1972부터 이듬해까지 여러 문예지에 연재한 수석시를 모아 시집을 발간하며 시인은 ‘이 시들처럼 의욕적으로, 집중적으로 전력을 기울인 일이 드물었다’고 서문에 밝혔다. 사실 시인의 수석시를 읽으면 처음에는 혼란스럽다. 어찌 읽으면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가 떠올랐고 때로는 분명 어떤 형상을 그려놓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인의 수석시를 이해하게 된 것은 대학원 공부를 하며 그의 수석들을 내 눈으로 보면서였다. 당시 몇몇 대학이 학점 공유를 위해 타 대학의 강좌를 수강할 수 있었는데, 그런 제도 덕에 숭실대 대학원에 다니던 내가 연세대 대학원 강좌를 수강할 수 있었다. 바로 박두진 시인이 담당한 ‘현대시특강’이었다. 강의는 대학원 강의실이 아니라 시인의 자택 거실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의 연세대학교 옆 연희로와 성산로가 교차하는 인근에 있던 시인의 자택에 처음 들어서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뜨락에 널부러진 돌덩이들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실에 들어서서는 상상을 초월한 광경에 놀랐다. 시인이라면, 그것도 대한민국의 알아주는 시인이라면 거실이나 서재에 가득 책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그러나 책은 보이지 않고 강의를 진행할 방 한가운데 소반이 놓여 있고 온 사방 벽에는 돌 뿐이었다. 책이 꽂혀 있어야 할 책꽂이는 무수히 많은 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강의보다는 지나가는 말처럼 전해주시던 돌들을 찾아 나섰던 여행, 그렇게 모은 수석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강의가 끝난 후 뜨락에 널부러진 돌덩이들에 물을 뿌리며 그 색깔의 변화까지 일러주셨다. 물에 젖었을 때 돌 표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들, 점점 마르며 변하는 색깔과 사라지는 이미지……
거의 매주 우리나라 전역의 강가에 돌아다니며 돌을 수집했다는 시인은 그렇게 모아온 돌들을 고르고 또 골라 사인만의 안목으로 선별을 했고, 그 돌을 바라보면서 시상에 젖었다고 한다. 돌을 들여다보면 그 돌의 형상이 주는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혹은 단순한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 돌에 담겨 있는 자연의 형상과 신의 메시지가 보였다고 한다. 내게는 한낱 돌덩이였지만 시인에게는 ‘신이 만든 시’였던 셈이다. 그러니 ‘수석시’란 신이 만든 시를 인간의 언어로 풀어놓은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많은 독자들이 시인의 ‘수석시’를 접하면서는 내가 처음 당황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왜 그럴까. 시인은 ‘수석을 통해 시의 세계와 깊은 만남을 알았고, 수석의 세계에 더 깊이 침잠해 갔으며, 그 만남을 통해 인간과 삼라만상의 근원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성찰하게 되었다’지만 수석이 아닌 시만 읽는 독자들은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시의 제재인 수석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궁극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음성을 통해 시인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직시하고 극복하며 ‘신 앞에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서기를’ 희구했다지만 독자들은 이해불가의 글자들뿐이었을 것이다.
<유방(乳房)>이란 시를 보자. 첫 행과 마지막 행에 수미상관으로 아니 중간에 또 한 번 ‘누구가 (저기를) 올라갈까’를 반복하며 은연중에 오르고픈 욕망을 드러낸다. 어디에? 유방 꼭대기 바로 ‘꿈으로 쌓아올린 하늘 닿는 저 꼭지’이다. 제목이 ‘유방’이고 꼭지에 오르고파 한다니, 어쩌면 욕정으로 읽힐 수도 있다. ‘터지면 샘물 솟을 융기의 저 내밀’은 그런 욕정을 구체화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 욕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손 씻고 발 씻고 넋을 마저 씻’었다 해도 ‘그대 아니 가슴 열면 기웃조차 할 수 없는’ 곳이기게 단순한 욕정보다는 설렘 혹은 그리움으로 읽힌다. 그곳은 바로 ‘정해라 펄펄 오는 꽃의 사태 그 너머 / 희디하얀 저 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정(靜)해라’ - 지극히 깨끗한 맑은 영혼, 순결하고도 순수한 곳을 예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의 유방을 보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여인의 젖가슴을 노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구체적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독자들마다 기억하는 유방과 꼭지는 다 다르기 때문이다.
△ 수석 '유방(乳房)'
그러나 시인이 ‘유방’이라 명명한 돌, 아니 수석을 보고 시를 읽으면 시가 통째로 가슴속에 들어온다. 이 글 위에 제시한 사진이 바로 그 수석이다. 어느 평자의 말처럼 ‘그가 만난 수석에는 상징과 계시와 예술의 힘이 있고, 근원적인 세계가 집약되어 있’는 것이리라. 시인이 수석을 노래한 시 중에는 <유방>처럼 자연 그대로가 투영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나아가 예술화된 자연, 초월적인 자연의 이미지가 대단히 밀도 있게 그려진 것들은 더 많다. 그래서 수석을 직접 본 적이 있는 평론가 신대철은 ‘수석이 신의 시라면 수석시는 인간의 시’라고 핵심을 끄집어낸다.
박두진의 수석시는 어렵다. 시인은 자신이 직접 강가에서 발견한 ‘신이 만든 시’ - 수석의 의미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놓았다. 따라서 ‘신이 만든 시’라는 수석을 직접 본 후에야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아쉬운 것은 출간 당시의 인쇄술과도 연관되는 것이겠지만, <수석열전>에 수석 사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수석 이미지가 곁들여졌다면 요즘 많이들 쓴다는 ‘디카시’의 원조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더 많은 독자들이 수석시를 즐기지 않았을까. ♣
[출처] 박두진의 <유방(乳房)>|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