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32)
흘레
― 고성만
우리 마을에서는 씹할 놈 씹도 못할 놈과 같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 대신 흘레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교미처럼 점잖은 말과는 달리 하다보다는 붙다를 결합시키는 게 보통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돌아보면 붕어는 강물을 흘려 수정하고 닭은 벼슬을 쥐어뜯으며 잠자리는 공중전을, 사람은 방구석에서 일을 치른다
열일곱 겨울, 그애와 내가 눈 내려 구죽죽 물 녹아 흐르는 강변 제방에서 행여 빨아 신은 운동화를 더럽히지 않을까 조바심치다가 발견한 개 샴쌍둥이처럼 뒤로 붙어 있는 몸과 몸 사이 막대기가 걸쳐 있었다 얼굴이 붉어져 멀리 돌아가는 그애를 따라 걷던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바람 마르는 소리 들리는 늦가을 오후
사촌누이와 나는 뒤안 장독간에 박혀서 흘레붙는 뱀을 보았다
친친 뒤엉킨 얼룩무늬를 뚫고 유난히 빨갛게 부풀어 오른 부위
사랑은 그렇게 춥고 외로운 일인가
어린 시절, 장독 뚜껑 위에 엉겨 붙어 있는 두 마리 잠자리를 잡으려다 그만 둔 적이 있다. 조심조심 다가가는 내게 어머니가 ‘그 놈들은 그냥 놔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잠자리 두 마리가 왜 엉겨 붙어 있었는지를 알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나서였고, 어머니가 왜 말리셨는지는 이해하게 된 것은 훨씬 더 지나서였다. 고성만의 시 <흘레>를 읽다가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잠자리 모습이 떠올랐다.
동물들의 성적 결합 즉 생식행위를 흔히 ‘교미(交尾)’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성적 결합과 관련된 단어들은 암묵적인 금기어이다. 도올 선생이 그의 저서 <여자란 무엇인가>에서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마음껏 ‘자지’, ‘보지’라고 말하자고 주장을 했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 남녀의 생식기는 물론 성행위도 상징적 혹은 비유적 어휘로 대신한다. 기껏 말할 수 있는 것이 ‘성행위’란 한자어뿐이다. 그렇기에 이를 직접 표현하게 되면 욕으로 듣는다. ‘씹’이나 ‘좆’이 그런 예이다. ‘씹하다’를 아무리 사전적 의미로 말했다 하더라도 욕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시를 보자. 화자가 사는 마을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인 ‘씹할 놈 씹도 못할 놈’ 대신에 ‘흘레’란 말을 사용한단다. ‘씹’은 ‘하다’가 붙지만 ‘흘레’는 ‘붙다’란 말이 붙는데 ‘씹할 놈’ 대신에 ‘흘레붙을 놈’이라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화자는 곰곰 생각해 본다. 붕어, 닭, 잠자리, 사람……의 성행위는 장소만 다르지 다 같은 것인데 왜 ‘흘레붙을 놈’이 욕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일 것이다.
여기서 화자는 과거를 생각한다. 열일곱이면 성에 눈이 뜬 나이일 것이다. 화자가 ‘그애’와 함께 강변 제방에 갔다가 흘레붙는 개를 보게 되었단다. ‘샴쌍둥이처럼 뒤로 붙어 있는 몸과 몸 사이 막대기가 걸쳐 있었’는데 ‘그애’는 물론 화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열일곱 남녀가 함께 개들이 교미하는 장면을 봤으니 둘은 마치 자신들의 행위로 느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러니 ‘그애’는 ‘얼굴이 붉어져 멀리 돌아가’고 화자는 뒤만 따랐을 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어느 ‘늦가을 오후’에 화자는 사촌누이와 ‘뒤안 장독간에 박혀서 흘레붙는 뱀을 보았’단다. 사촌 누이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정컨대 화자와 사촌 누이는 아는 나이일 것이다. ‘친친 뒤엉킨 얼룩무늬를 뚫고 유난히 빨갛게 부풀어 오른 부위’를 아는 것이니 그렇다.
이런 이야기 끝에 화자는 ‘사랑은 그렇게 춥고 외로운 일인가’란 생각을 한다. ‘씹’이라든가 ‘흘레’ 혹은 ‘교미’가 어떤 행위인지를 알고 있는 화자이기에 ‘사랑’이라 말한 것이리라. 그러니 의문을 품을 만하다. 남녀 간 사랑의 행위인 ‘씹’이나 개의 교미인 ‘흘레’가 어떤 행위인지를 알지만 그 말은 욕으로 쓰인다. 게다가 흘레붙는 개나 교미중인 뱀을 보면서는 부끄러워했다. 과연 부끄러운 일일까.
참고로 이 시를 통해 시 창작 초심자들이 배울 것이 있다. 전체 4연으로 된 그렇고 그런 이야기이지만 시인은 그런 이야기를 시로 만들어놓았다.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을까. 그 중 하나가 바로 연 구분과 표현이다. 1, 2 연은 행갈이 없이 줄글로 설명을 했다. 그런데 3연은 행갈이가 이루어져 각 행의 의미가 살아난다. 게다가 마지막 연은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이런 구성과 표현이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시로 만드는 하나의 기능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씹을 하는데 그게 왜 욕이어야 할까. 번식을 위해 교미를 하는데 왜 그 행위를 보면서 부끄러워할까. 인간과 동물의 행위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사랑의 행위가 아닌가. 서로 사랑하는데, 아름다운 사랑인데 왜 그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 욕이 되고 그 행위를 부끄러워해야 할까. 이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시인은 ‘사랑은 그렇게 춥고 외로운 일인가’라 되묻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