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33)
물방울
― 고성만
저기 저
푸른 비단을 구르는
진주 방울 좀
보아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나무 끝 잎사귀 위
사뿐 내려앉아
무지갯빛 밝혀주는
물의 방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손잡이가 없어
서성
서성이네
순수함 혹은 맑음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이슬’일 것이다. 눈, 하늘, 물도 그런 이미지이고 어린아이의 눈망울에서도 맑고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고성만의 시 <물방울>에서는 바로 ‘물방울’을 순수함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첫 행에서 ‘저기 저 / 푸른 비단을 구르는 / 진주 방울 좀 / 보아’라 한다. 물방울을 보라는 것인데, 이 물방울을 시인은 ‘푸른 비단을 구르는 / 진주 방울’이라고 한다. 그 ‘진주 방울’은 어떤 모습일까. ‘나무 끝 잎사귀 위’에 ‘사뿐 내려앉아 / 무지갯빛 밝혀주’고 있는데, ‘잎사귀 위’라면 떨어질 수 있으니 다소 위태롭다. 이를 ‘깨고 싶지 않은 / 꿈’으로 표현하는데 여기서 ‘깨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이중적 의미이다. 바로 꿈을 깨는 것이기도 하지만 물방울이 깨지는 것이기도 하다. 둘 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물방울을 시인은 ‘물의 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금방 들어가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손잡이가 없어 / 서성 / 서성이’는 것이다. 물방울은 ‘푸른 비단’, ‘진주 방울’, ‘꿈’, ‘무지갯빛’, ‘물의 방’이다. 모두가 다 순수함을 나타내는 어휘들이다. 그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은 자신도 순수해지고 싶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왜 그럴까. ‘손잡이가 없’기 때문이란다.
분명 물방울은 순수함을 나타내는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시 속에서 여러 어휘들이 나열되며 그 순수의 의미가 구체화된다. 그런데 시를 읽고 나서는 물방울보다 시인이 더 순수하다는 느낌이다. 들어가고는 싶은데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핑계일 수 있다. 어쩌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모습에서 시인의 마음이 순수를 넘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상상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무지갯빛 맑은 물의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손잡이가 있는 길을 낼 생각을 했을꼬. 그 마음 역시 아름답지 않은가. ♣
[출처] 고성만의 <물방울>|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