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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의 <봄, 말버짐>

작성자돌샘이길옥|작성시간26.06.12|조회수29 목록 댓글 0

내가 읽은 詩 (734)

 

 

 

 

말버짐

 

― 송진

 

네가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하는 순간

나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

 

네가 플랫폼에 들어선 순간

나는 양변기에 앉아 민들레꽃처럼 노란 오줌을 누고

비데 버튼을 누른다

 

네가 기차에 올라 열차 카페에 들러 마일드커피 두 잔을 위해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빨간 지갑을 열 때

 

나는 팬티를 올리기 전 백 년 전 이야기까지 토할 것 같아

엉금엉금 병든 고슴도치처럼 기어 은행나무 굴 속으로 들어간다

 

뱀을 토하고 햄스털 토하고 버찌를 토하고 죽은 아기마저 토하고 난 뒤

굴 앞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네가 일반석 7호차 순방향 31호석에 앉아

창 밖에 내리는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동백꽃 이불 위에 뚝뚝 떨어지는 모가지 여러 개를

불붙는 진달래 상자 속에 넣고 있는 것이다

 

 

부모자식 혹은 부부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 또한 서로 다르다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면 그 다름은 더욱 클 것이다그런데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면 어떨까아니 사랑하다 막 헤어진 연인이라면 어떨까아마 헤어진 후 상대를 어찌 생각하는지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송진의 시 <말버짐>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말버짐이라 했으니 봄에 있었던 말버짐이라면 말버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요 봄과 말버짐이라면 두 개의 소재가 된다그런데 말버짐이 무엇인가살갗에 흰 점이 생기고 가려운 피부병의 하나이다물론 환절기에다 다소 건조하다는 봄에 많이 나타나는 피부병이다꽃가루에 의한 것도 있지만 피부가 약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다그러니 과 말버짐은 직접 연결되는 이미지이다.

전체 일곱 개의 연인데 각 연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와 의 행동이 교차되어 제시된다. 1, 2 연에서는 두 사람의 행동이 한 연에 나타나지만, 3과 6은 의 행동이고 4, 5, 7 연은 의 행동이다물론 연에서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했다는 것 외의 의 행동은 의 상상일 것이다.

​시를 보자. 네가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하는 순간 나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고 했는데 어찌 전화를 받으며 세수를 할 수 있냐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안된다전화를 받으며 기침을 했고 전화를 끊고는 기침이 멈추어 세수를 한 것이리라그런데 두 사람은 왜 다른 공간에 있을까분명 는 떠나는 사람이고 는 남아 있다시의 내용으로 보아 는 에게 왔다가 갔고 는 계속 집에 남아 있는 것이다연인일까아니면 헤어진 것일까도대체 어떤 사이일까궁금증이 더해진다.

연은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이야기이다. ‘네가 플랫폼에 들어선 순간이라 했지만 전화를 해서 몇 시 기차표를 끊었다고 했을 것이니 그럴 시간쯤에 나는 양변기에 앉아 민들레꽃처럼 노란 오줌을 누고 비데 버튼을 누른다고 했으니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서술이다즉 인과관계가 없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일 뿐이다그런데 연부터는 뭔가 감정이 담겨 있다.

 

네가 기차에 올라’ 곧바로 열차 카페에 들러 마일드커피 두 잔을’ 주문한다 했으니 는 의 행동을 잘 알고 있다즉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이다커피값을 계산하기 위해 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빨간 지갑을 열’ 것까지 알고 있다그럴 즈음 는 비데 버튼을 누르고 일어나 팬티를 올리기 전 백 년 전 이야기까지 토할 것 같아 엉금엉금 병든 고슴도치처럼 기어 은행나무 굴 속으로 들어간단다그냥 굴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뱀을 토하고 햄스털 토하고 버찌를 토하고 죽은 아기마저 토한다그리고는 굴 앞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쯤에서 두 사람의 관계즉 가 생각하는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백 년 전 이야기라든가 고슴도치나 은행나무 굴은 시 속 화자즉 의 특수한 경험들이다어쩌면 와 함께 한 것일 수도 있다. ‘’, ‘햄스터’, ‘버찌’ 역시 마찬가지이다. ‘죽은 아기에 와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는 를 떠났고예전에 둘 사이에 아기가 있었음이 분명하다유산 혹은 사산일 수도 있고 태어나 아기일 때에 죽었을 수도 있다그러니 백 년 전 이야기’, ‘고슴도치’, ‘은행나무 굴’, ‘’, ‘햄스터’, ‘버찌’ 그리고 죽은 아기는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추억들이요, ‘는 이것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먹은 것을 토해내는 것은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이다결국 는 와의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지워버리고 있다.

​‘가 전화를 했을 때 좌석 번호까지 알려줬던 모양이다그러니 네가 일반석 7호차 순방향 31호석에 앉아 창 밖에 내리는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고 있을 때라 말하지 않는가. ‘의 상상 속에 는 둘 사이에 추억이 담겼을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며 를 그리워할 것이다그러나 나는 동백꽃 이불 위에 뚝뚝 떨어지는 모가지 여러 개를 불붙는 진달래 상자 속에 넣고 있. ‘동백꽃 이불이나 모가지 여러 개는 분명 둘 사이의 추억이지만 이를 상자에 넣는 것은 더 이상 추억에 잠기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결국 시 속 두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으나 마지막으로 가 에게 찾아왔으며 시는 바로 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다어쩌면 는 를 그리워할지 모르겠지만 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암시이다실은 연에서부터 그렇다마지막으로 찾아온 남자에게 여자는 가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다물을 열고 나갔을 때에도 금방 돌아오겠지가다가 오겠지 했던 모양이다그러나 기차표를 끊었다는 말에 그만 체념 혹은 포기를 하고 말았을 것이요이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는 통증으로 나타난다가지 말라 애원했음에도 가버린 사람그렇다면 마음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는 행동은 그런 마음의 정리이며 이어지는 연은 그런 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이 한 말에 따르면부산에 개나리가 지던 날 서울에서는 개나리 꽃봉오리가 막 생기고 있었다는 기억을 모티브로 만든 시란다이를 통해 어느 평자는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 시인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로 건져 올리고 있다면서 여기에 덧붙여 송 시인의 시편들에는 정지된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 백일몽 같은 풍경으로 나타나며 시인의 무의식적인 관찰직관감성이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고 했다이 <말버짐한 편만으로도 평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랑하다 헤어진 두 사람 송 시인이 여자이니 시 속 는 여자이고 는 남자로 풀이해도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여자를 찾은 남자가 떠나던 시각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남자와 여자의 행동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여자의 의지까지 읽을 수 있다. ‘부산에 개나리가 지던 날 서울에서는 개나리 꽃봉오리가 막 생기고 있었다그런데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지극히 당연한 일을 통해 어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꼬바로 시인의 상상력이다.

​결국 제목 말버짐은 봄에 앓은 사랑과 이별의 열병일 것이리라사랑하다 헤어지면 남자는 여자의 좋은 것만 기억하고 여자는 남자의 나쁜 것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그래서 여자를 떠난 남자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여자는 한 번 떠나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단다맞는 말 같다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떠난 여인을 더욱 더 그리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다시를 읽으며 문득 그런 이야기를 또 확인한다

[출처] 송진의 <봄, 말버짐>|작성자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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