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34)
봄, 말버짐
― 송진
네가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하는 순간
나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
네가 플랫폼에 들어선 순간
나는 양변기에 앉아 민들레꽃처럼 노란 오줌을 누고
비데 버튼을 누른다
네가 기차에 올라 열차 카페에 들러 마일드커피 두 잔을 위해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빨간 지갑을 열 때
나는 팬티를 올리기 전 백 년 전 이야기까지 토할 것 같아
엉금엉금 병든 고슴도치처럼 기어 은행나무 굴 속으로 들어간다
뱀을 토하고 햄스털 토하고 버찌를 토하고 죽은 아기마저 토하고 난 뒤
굴 앞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네가 일반석 7호차 순방향 31호석에 앉아
창 밖에 내리는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동백꽃 이불 위에 뚝뚝 떨어지는 모가지 여러 개를
불붙는 진달래 상자 속에 넣고 있는 것이다
부모자식 혹은 부부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 또한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면 그 다름은 더욱 클 것이다. 그런데 서로 미워하는 사이라면 어떨까. 아니 사랑하다 막 헤어진 연인이라면 어떨까. 아마 헤어진 후 상대를 어찌 생각하는지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송진의 시 <봄, 말버짐>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봄, 말버짐’이라 했으니 ‘봄에 있었던 말버짐’이라면 ‘말버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요 ‘봄과 말버짐’이라면 두 개의 소재가 된다. 그런데 ‘말버짐’이 무엇인가. 살갗에 흰 점이 생기고 가려운 피부병의 하나이다. 물론 환절기에다 다소 건조하다는 봄에 많이 나타나는 피부병이다. 꽃가루에 의한 것도 있지만 피부가 약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다. 그러니 ‘봄’과 ‘말버짐’은 직접 연결되는 이미지이다.
전체 일곱 개의 연인데 각 연마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너’와 ‘나’의 행동이 교차되어 제시된다. 1, 2 연에서는 두 사람의 행동이 한 연에 나타나지만, 3과 6은 ‘너’의 행동이고 4, 5, 7 연은 ‘나’의 행동이다. 물론 1 연에서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했다는 것 외의 ‘너’의 행동은 ‘나’의 상상일 것이다.
시를 보자. ‘네가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하는 순간 / 나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 /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른다’고 했는데 어찌 전화를 받으며 세수를 할 수 있냐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안된다. 전화를 받으며 기침을 했고 전화를 끊고는 기침이 멈추어 세수를 한 것이리라. 그런데 두 사람은 왜 다른 공간에 있을까. 분명 ‘너’는 떠나는 사람이고 ‘나’는 남아 있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너’는 ‘나’에게 왔다가 갔고 ‘나’는 계속 집에 남아 있는 것이다. 연인일까. 아니면 헤어진 것일까. 도대체 어떤 사이일까. 궁금증이 더해진다.
2 연은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이야기이다. ‘네가 플랫폼에 들어선 순간’이라 했지만 전화를 해서 몇 시 기차표를 끊었다고 했을 것이니 그럴 시간쯤에 ‘나는 양변기에 앉아 민들레꽃처럼 노란 오줌을 누고 / 비데 버튼을 누른다’고 했으니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서술이다. 즉 인과관계가 없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런데 3 연부터는 뭔가 감정이 담겨 있다.
‘네가 기차에 올라’ 곧바로 ‘열차 카페에 들러 마일드커피 두 잔을’ 주문한다 했으니 ‘나’는 ‘너’의 행동을 잘 알고 있다. 즉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이다. 커피값을 계산하기 위해 ‘나’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빨간 지갑을 열’ 것까지 알고 있다. 그럴 즈음 ‘나’는 비데 버튼을 누르고 일어나 ‘팬티를 올리기 전 백 년 전 이야기까지 토할 것 같아 / 엉금엉금 병든 고슴도치처럼 기어 은행나무 굴 속으로 들어간’단다. 그냥 굴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뱀을 토하고 햄스털 토하고 버찌를 토하고 죽은 아기마저 토’한다. 그리고는 ‘굴 앞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쯤에서 두 사람의 관계, 즉 ‘나’가 생각하는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백 년 전 이야기’라든가 ‘고슴도치’나 ‘은행나무 굴’은 시 속 화자, 즉 ‘나’의 특수한 경험들이다. 어쩌면 ‘너’와 함께 한 것일 수도 있다. ‘뱀’, ‘햄스터’, ‘버찌’ 역시 마찬가지이다. ‘죽은 아기’에 와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너’는 ‘나’를 떠났고, 예전에 둘 사이에 ‘아기’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유산 혹은 사산일 수도 있고 태어나 아기일 때에 죽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백 년 전 이야기’, ‘고슴도치’, ‘은행나무 굴’, ‘뱀’, ‘햄스터’, ‘버찌’ 그리고 ‘죽은 아기’는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추억들이요, ‘나’는 이것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먹은 것을 토해내는 것은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이다. 결국 ‘나’는 ‘너’와의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지워버리고 있다.
‘너’가 전화를 했을 때 좌석 번호까지 알려줬던 모양이다. 그러니 ‘네가 일반석 7호차 순방향 31호석에 앉아 / 창 밖에 내리는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고 있을 때’라 말하지 않는가. ‘나’의 상상 속에 ‘너’는 둘 사이에 추억이 담겼을 ‘겹벚꽃나무 연분홍 꽃눈’을 보며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백꽃 이불 위에 뚝뚝 떨어지는 모가지 여러 개를 / 불붙는 진달래 상자 속에 넣고 있’다. ‘동백꽃 이불’이나 ‘모가지 여러 개’는 분명 둘 사이의 추억이지만 이를 ‘상자’에 넣는 것은 더 이상 추억에 잠기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결국 시 속 두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으나 마지막으로 ‘너’가 ‘나’에게 찾아왔으며 시는 바로 ‘나’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다. 어쩌면 ‘너’는 ‘나’를 그리워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암시이다. 실은 1 연에서부터 그렇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남자에게 여자는 가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다. 물을 열고 나갔을 때에도 금방 돌아오겠지, 가다가 오겠지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기차표를 끊었다’는 말에 그만 체념 혹은 포기를 하고 말았을 것이요, 이는 ‘지난 밤 젖꼭지까지 아픈 기침에서 깨어’나는 통증으로 나타난다. 가지 말라 애원했음에도 가버린 사람, 그렇다면 마음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는 행동은 그런 마음의 정리이며 이어지는 연은 그런 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이 한 말에 따르면, 부산에 개나리가 지던 날 서울에서는 개나리 꽃봉오리가 막 생기고 있었다는 기억을 모티브로 만든 시란다. 이를 통해 어느 평자는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 - 시인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을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로 건져 올리고 있’다면서 여기에 덧붙여 ‘송 시인의 시편들에는 정지된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 백일몽 같은 풍경으로 나타나며 시인의 무의식적인 관찰, 직관, 감성이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고 했다. 이 <봄, 말버짐> 한 편만으로도 평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랑하다 헤어진 두 사람 - 송 시인이 여자이니 시 속 ‘나’는 여자이고 ‘너’는 남자로 풀이해도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자를 찾은 남자가 떠나던 시각,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남자와 여자의 행동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물론 여자의 의지까지 읽을 수 있다. ‘부산에 개나리가 지던 날 서울에서는 개나리 꽃봉오리가 막 생기고 있었다’고? 그런데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지극히 당연한 일을 통해 어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꼬. 바로 시인의 상상력이다.
결국 제목 ‘봄, 말버짐’은 봄에 앓은 사랑과 이별의 열병일 것이리라. 사랑하다 헤어지면 남자는 여자의 좋은 것만 기억하고 여자는 남자의 나쁜 것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여자를 떠난 남자는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여자는 한 번 떠나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단다. 맞는 말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떠난 여인을 더욱 더 그리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다. 시를 읽으며 문득 그런 이야기를 또 확인한다. ♣
[출처] 송진의 <봄, 말버짐>|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