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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간이역>

작성자돌샘이길옥|작성시간26.06.13|조회수54 목록 댓글 0

내가 읽은 詩 (735)

 

 

 

 

간이역

 

― 김선우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 애

함석집 마당가 주문을 걸 듯

덮어놓은 고운 흙 가만 헤치면

속눈썹처럼 나타나던 좋.

얼레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

미안해 흙글씨 새기던

당두마을 그 애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이사 오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나는 남자를 알고

귀향길에 때때로 소문만 듣던 그 애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갔다는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때로 간이역을 생각했다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 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 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철공일 한다는

출생신고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는

내 추억의 간이역

삶이라든가 용접봉불꽃희망 따위

어린 날 알지 못했던 말들

어느 담벼락 밑에 적고 있을 그 애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당두마을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맵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철도용어사전에 따르면 간이역(簡易驛)’이란 이용객이 적고 효율성이 낮은일반 역에 비해 규모가 작은 역을 가리키는 말이다보통 역장 없이 역무원만이 지켰는데 비둘기호나 통일호 같은 완행열차가 정차하는 역이었다그러나 열차가 개편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여 지금은 없어졌다더 이상 어느 열차도 서지 않지만 많은 문학 ‧ 음악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고즈넉한 배경 덕에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되었던 곳 그런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몇몇 지자체에서는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예전 간이역 건물을 그 지역의 관광지로 전환하기도 했다.

김선우의 시 <간이역>에는 예전의 간이역이 등장하지만 실은 간이역이란 시 속 화자의 인생역정 중 잠시 머물렀던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일컫는 말이다화자의 독백을 들어보자시 속 화자의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 애였단다마당 한 켠 흙바닥에 .’라 써놓았던 아이, ‘얼레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는 이번에는 미안해라 흙글씨 새기던’ 아이이다. ‘당두마을 그 애는 지금 생각하면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아이였다솔잎향이라…… 산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화자는 이사를 하며 그 애와 헤어지고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성장하여 이성을 알게 된다귀향을 하면 종종 소문으로 그 애의 소식을 들었는데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갔다던가,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소식이다그 소식을 듣고는 화자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간이역을 생각했다.’ 화자의 기억 속에는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 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 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가 서는 간이역이다. ‘한 그릇 우동에 손을 덥힌다 했으니 어쩌면 그 애의 손이 그만큼 따뜻하게 기억되었는지 모른다.

 

더 세월이 흘렀지만 화자는 그 애의 소식을 듣고 있다.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철공일 한다고 했고, ‘출생신고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고 했다그러고 보니 그 애는 화자에게는 추억의 간이역이다어린 시절 마당에 .’라 썼듯이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 삶이라든가 용접봉불꽃희망 따위로 일하며 꿈꾸고 있을 사람이리라화자는 서울의 어느 담벼락 밑에서 그런 꿈을 키우고 있을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고 한다어릴 적에는 화자에게 좋아해 혹은 미안해라 흙글씨를 썼지만 지금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고 있을 그 애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이와 함께 당두마을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맵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시에서 간이역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우선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가 광부가 되었다는 그 애가 살았던 곳이다화자는 동해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간이역을 지날 때마다 문득문득 그 애를 떠올렸을 것이다다음으로 화자의 삶을 철로에 견준다면 그 애가 바로 간이역이었다는 의미이다즉 간이역은 어린 시절 화자의 사랑이 잠시 머물렀던 그 애이다시 속 화자는 마른 솔잎 냄새 나던 이웃 소년과의 풋사랑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지금까지 살아오며 문득문득 떠올랐는지도 모른다특히 기차를 타고 간이역을 지날 때 더욱 그랬을 것이다태백에서 광부로 지금은 가리봉에서 철공일을 하고 있는 한 아이의 아버지 화자는 아직도 좋아해 혹은 미안해라 흙글씨로 마음을 전하던 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첫사랑은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다마음속에 간직한 풋풋한 사랑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현실에 부대끼는 모습 때문에 첫사랑을 했던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이 무너지기 때문이란다시 속 화자도 그런 것을 알았을까소식으로만 들을 뿐가슴속에만 묻어둘 뿐이지 않은가그러니 시를 읽으며 문득 내 첫사랑이 생각난다노랫말에 나오듯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출처] 김선우의 <간이역>|작성자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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