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37)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에는 제목과 달리 정작 눈물이 어떠한 원리에 의해서 짠 맛이 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다만 화자는 지난여름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떤 화학적 원리로 눈물이 짠 맛을 내는지 보다는 화자에게 눈물이 왜 짠맛이 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를 보자.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화자가 봉양하지도 못하고 고향에 계신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란다. 차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어머니는 요기를 하자며 아들을 잡아끈다.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어머니는 실은 중이염 때문에 고깃국을 드시지 못한다. 왜냐하면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깃국을 먹자는 것은 당신이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 먹이려는 뜻이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으니 아들로서는 몸둘 바를 모른다. 기껏해야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뿐이다. 그런 아들에게 어머니가 해주는 말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고. 어머니 마음은 어떻게든 아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지만 그럴 형편은 안된다. 그러니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고 할밖에. 그런 마음까지 아들은 알고 있다.
화자가 한창 먹고 있는데 어머니는 주인을 부르더니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한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는데, 어머니는 이내 그 국물을 화자의 그릇에 부어준다.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기에 국물이 더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아들에게 고깃국물이라도 많이 먹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화자도 알지만 주인의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단다.
그런데 주인아저씨의 마음씀이 참 아름답다.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사람이다. 어머니에게 국물을 그만 따르라고 그릇을 부딪치는데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화자는 울컥했단다. 그런 감정을 억제하려고 혹은 감추려고 정신없이 설렁탕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선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도 그렇지만 그 마음을 눈치 챈 아저씨의 행동에 화자는 그만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단다.
화자는 흐르는 땀을 훔쳐내어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울지 않았다는 듯이 물수건으로 눈동자 주위의 땀을 씻어낸다. 그러면서 ‘눈물은 왜 짠가’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단다. 눈물을 흘렸지만 울지 않았다는 듯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눈가에 흐르는 눈물과 합쳐버렸으니 당연히 땀의 짠 맛이 남은 것이리라.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울지 않았다는 증표가 될까. 이미 눈은 충혈되어 울었다는 표가 날 터인데……
마지막 행, ‘눈물은 왜 짠가’는 화자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학적 원리를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시를 읽은 독자들은 안다. 화자의 눈물 속에는 세 가지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에 짠 맛이 났다는 것을. 먼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다. 당신은 고기를 먹으면 탈이 남에도 아들에게 고깃국물이라도 많이 먹이려는 어머니 - 더구나 두 그릇을 시켜놓고 국물이라도 더 달라고 하여 아들 그릇에 따라주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전후사정을 잘 알면서도 가난한 모자가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게 설렁탕 국물과 깍두기를 가져다주는 주인아저씨의 배려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마음과 주인아저씨의 배려가 깃든 행동을 고마워하는 화자의 마음이다. 이 세 가지가 녹아 있으니 눈물은 짤 수밖에 없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와 아들의 마음을 헤아린 주인아저씨의 마음, 그런 마음들을 알고 고마워하는 화자의 마음……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합쳐져 눈물이 흘렀으니 어찌 아니 짤 수 있겠는가. 땀보다 더 짰으면 짰지 싱겁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
[출처]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