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박용래의 <육십의 가을>

작성자돌샘이길옥|작성시간26.06.19|조회수19 목록 댓글 0

내가 읽은 詩 (741)

 

 

 

 

육십의 가을

 

― 박용래

 

— 거기

그 자리.

봉선화 주먹으로 피는데

피는데

 

밖에 서서 우는 사람

건듯 갈바람 때문인가,

 

밖에 서서 우는 사람

스치는 한 점 바람 때문인가,

 

정말?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겠지만 흔히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혹은 결실(結實)의 계절이라 한다그도 그럴 것이지금이야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그렇지도 않지만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기로 유명하다게다가 추수를 하고 과실을 따는 계절이다그러니 가을이라고 하면 먼저 풍성함이 떠오른다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느낌은 변한다.

봄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가을은 여름이나 겨울과 달리 오는 듯 가버리는 계절이다더위가 물러나는 것 같더니 이내 내복을 입어야 하는 추위가 닥쳐온다여름과 겨울 사이에 낀 그냥 지나가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그렇기에 단풍의 아름다움이라든가 결실의 풍성함을 느낄라 치면 벌써 겨울 문턱으로 들어서고 만다이는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박용래의 시 <육십의 가을>은 천고마비나 결실과는 거리가 먼 가을을 그려낸다풍성함이라든가 단풍의 아름다움은 없이 그저 애잔한 분위기만 전한다핵심은 — 거기 그 자리.’이다거기가 어디일까혹자는 박용래 시인의 이력과 관련지어 구체적인 장소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거기 그 자리란 말 속에 이미 다시 찾은 과거의 장소란 의미가 담겨 있다.

​예전에 그 자리에 봉선화 주먹으로 피었다그런데 세월이 지나 다시 와 보니 역시나 봉선화가 탐스럽게 주먹 크기만큼 피어있다. ‘피는데 피는데는 바로 세월을 뛰어 넘어 피고 있는 봉선화를 그린 것이리라사실 봉선화는 7~8월에 꽃이 핀다그러니 시의 제목에 나오는 가을과 연결할 때 가을 초입일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 그 자리는 어떤 곳일까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에 살았던 곳이거나 사랑의 추억이 담긴 장소임이 분명하다사랑이 아니라면 젊은 시절의 어떤 추억이 남아 있는 장소일 것이리라세월이 흘러 육십이 다 된 몸으로 다시 찾은 거기 그 자리에는 예전처럼 꽃이 피어 있는데몸도 마음도 예전의 내가 아니다그저 꽃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이다.

 

화자는 집 안 혹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서 울고 있다왜 울까. ‘건 듯 갈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스치는 한 점 바람’ 때문일까실은 갈바람이나 한 점 바람이나 같은 바람이다바로 가을에 부는 바람가을임을 나타내는 바람이다. ‘때문인가라 두 번 물었지만 답은 없다실은 생략되어 있다바로 갈바람이나 한 점 바람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이면에는 세월이 흘러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이기 때문이란 암시이다이런 상념을 더해주는 것은 바로 가을이란 계절의 의미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장소봉선화는 예전처럼 피어 있지만 그 추억을 나누었던 소녀 혹은 사람들은 없다게다가 육십을 바라보는 몸과 마음이다여기에 더해 가을이다생의 황혼인 것이다그리고 이제 곧 겨울이다그러니 젊은 시절의 추억어쩌면 첫사랑 소녀에 대한 추억에 잠기며 늙어가는 자신을 탓하는 것일 수도 있다그런 생각 끝에 정말?’이란 말로 자문하며 확인한다.

시의 제목이 육십의 가을이다박용래 시인은 1925년에 나서 1980년에 작고했으니 육십까지 살지 못했다그러니 육십을 앞두고 쓴 시일 터이고 그만큼 인생의 황혼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이야 환갑이면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박 시인이 살던 시대에는 환갑 아니 쉰 중반을 넘으면 이미 할아버지에 완전한 노인이었다당연히 황혼을 생각하던 나이이다.

거기’ - 시 속 화자가 우는 것은 바로 거기에 담긴 추억 때문이요그 추억을 생각하면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 게다가 곧 겨울이 될 가을이란 생각 때문이리라짧은 시이지만게다가 생략된 것들이 많지만 시를 읽으면서 육십을 훌쩍 넘긴 나도 가을이 참 애잔하게 느껴진다

[출처] 박용래의 <육십의 가을>|작성자 이병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