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43)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
― 김이듬
그들은 둘러앉아 잡담을 했다
담배를 피울 때나 뒤통수를 긁을 때도 그들은 시적이었고
박수를 칠 때도 박자를 맞췄다
수상작에 대한 논란은 사라졌고
술자리에서 사고치지 않았으며
요절한 시인들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들이 분명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연애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버릴 테다
이 문장을 애용하던 그 시인자식은
지원금을 받아 외국으로 싸대지더니
여행책자를 출간해 한 턱 쏘았다 난 안 취할 만큼 마셨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빠진 이들
그 시인들은 제 밥그릇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지
신촌의 작업실에서 애들이 기어 다니는 방구석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지고 있는지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손끝에서
줄기와 꽃봉오리가 환해지는지
중요한 건 그런 게 없다는 것
아무도 안 죽고 난 애도의 시도 쓸 수 없고
수술을 받으며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다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
1989년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국내에 개봉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참된 인생’ 혹은 ‘참교육’은 각 지역별로 ‘교사협의회’가 구성되고 이어 이를 기반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결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제는 <Dead Poets Society>이다. 이를 우리말답게 번역을 하면 ‘죽은 시인 학파’이다. 즉 여기서 Society는 ‘사회’가 아니라 ‘학파(學派)’나 ‘당(黨)’ 혹은 요즘 많이 쓰이는 ‘동아리’를 뜻하는 단어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명문 웰튼 아카데미에 전해지는 ‘서클’ 이름이다. 그런데 그냥 일반적인 의미인 ‘사회’라 번역하여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영화 내용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김이듬의 시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는 바로 이 영화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다만 제목만 빌어 왔을 뿐 내용은 제목 그대로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에 대한 비아냥이다. 흔히 시인이라고 하면 다른 세상 사람인 줄 아는 것이 문제이다. 사고가 고상하고 삶은 지저분하며 조선 오백년 설움을 한 몸에 지닌 양 피폐한 모습, 분노하거나 찡그린 얼굴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시인도 사람이고 생활인이다. 그러니 ‘요절한 시인들을 따라’ 죽지 않으며, 시인이라면 기가 막힌 멋진 ‘연애사건’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도 않다.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서는 ‘수상작에 대한 논란은’ 없고 ‘그들은 둘러앉아 잡담을’하며 뒷풀이 ‘술자리에서 사고치지 않’는다. 결코 고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시인도 있다. ‘나는 죽어버릴 테다’를 자주 쓰던 어느 ‘시인자식’은 ‘지원금을 받아 외국으로 싸대지더니’ 시는 쓰지 않고 ‘여행책자를 출간해’서는 책이 많이 팔려 돈을 벌었다고 한 턱을 낸단다. 그 시인이 술을 살 때 화자는 ‘안 취할 만큼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자리에 빠진 이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시인을 무슨 기인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시인들은 제 밥그릇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으며, ‘신촌의 작업실’이나 ‘애들이 기어 다니는 방구석에서 /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하찮아’진다. 그들의 손끝에서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고’ ‘줄기와 꽃봉오리가 환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없다는 것’이다. 요절 시인을 따라 어느 시인도 죽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애도의 시를 쓰지 않는다. 게다가 의술이 발달했으니 요절이 아니라 ‘수술을 받으며’ 시인들도 ‘오래 살 것이’다.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으며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 /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고 한다. 즉 시인은 결코 고상하지 않으며 혼자 상념에 빠져 사회를 도외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어떤 면에서는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여행책자를 출간하는 것처럼 지극히 자본주의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즉 시인의 손끝에서 ‘뭔가 놀라운 한 줄이 흘러나오’지 않으며 ‘줄기와 꽃봉오리가 환해지는’ 시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점차 자본주의에 익숙해지는 시인들 -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일까. 아니 그들만을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시인도 사람이고 이 사회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생활인이다. 김이듬 시인은 그런 시인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라 부르는 것이다. 비아냥 같지만 아니 비난이나 비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우리 시인들 아니 시단을 있는 모습 그대로 제시한 것이리라.♣
[출처] 김이듬의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