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744)
다리 우에서
― 이용악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어가는 다리 우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히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버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이용악은 소년시절의 가난, 고학, 노동 등 고달픈 삶이라는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서정시를 읊은 시인이다. 특히 그의 시에는 자신의 그러한 체험이 일제 강점기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참담한 삶과 궁핍한 현실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다리 우에서>란 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에서도 유년시절의 궁핍한 삶을 회고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시를 보자. 시 속 화자는 성인으로 문득 국수가 먹고 싶은 생각에 국수집을 찾는다. 그런데 국수집을 찾아가는 ‘다리 우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히’였다고 한다. 국수집 대문 혹은 처마 끝에 밤이면 장명등을 켜둔다. 요즘말로 형광등 광고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명등이 ‘바람이 거센 밤이면 / 몇 번이고 꺼’진다. 자주 꺼지는 장명등 - 일제 강점기 혹독했던 시대적 배경이 드러남은 물론 그나마 어둠을 밝히는 등은 어쩌면 위태롭게 살아가는 화자의 가족들이 그나마 기대는 희망처럼 느껴진다.
장명등이 꺼지면 그래도 몇 살 더 먹었다고 누나가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히는데, 그때 ‘누나는 / 별 많은 밤이 무섭다고 했’단다. 어두운 밤, 궤짝 위 높은 곳에서 넘어질 것 같은 기분 - 이 또한 암울한 시대로 읽힌다. 여기에 밤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만 같은 상상에 그 무서움은 더했을 것이리라.
일 년 삼백예순날 쉬는 날도 없이 국수를 팔아야 했던 어머니의 국수집은 단 하루만 문을 닫았단다. 바로 아버지 제삿날이다.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버레 우는 가을철’ 아버지의 제삿날에는 화자도 ‘어른처럼 곡을 했다’고 한다. 홀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국수집을 했던 화자에게 그날은 친지들이 다 모이는 날, 명절과 같은 날이었으리라.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아버지 제삿날이면 모여든 친지들…… 그러한 가족들과 함께 비록 가난했지만, 자주 꺼져 새로 밝혀야 했던 장명등처럼 어떤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던 던 시절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성인이 되었지만, ‘국숫집 찾어가는 다리 우에서 / 문득 그리워지는’ 어린 시절인 것이리라.
어른이 되고나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니 그 그리움은 그 시절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시절이 행복했다는 것도 아니다. 실은 그 시절 함께 했던 가족, 친지 그리고 고향이 그리운 것이리라.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자, 아니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은 가난한 국수집 시절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다. 홀로 된 어머니, 밤하늘의 별이 무섭다던 누나 그리고 아버지 제삿날이면 모였던 친지들…… 그들이 그리운 것이 아니겠는가. ♣
[출처] 이용악의 <다리 우에서>|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