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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만년필(발표시)

[스크랩] 모자 / 김결

작성자초록물결|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모자

김결


웃음이 되고 남은 얼굴 부분입니다
가끔 옆구리에서 뿔이 돋아나기도 하죠
주머니에 넣을 수 없어 커다란 발을 준비합니다
 
은밀하게 시작되는 계절을 핑계로
무언가 골몰하는 모자의 표정을 살핍니다
 
신발보다 많은 모자들
아침부터 아우성입니다
어디를 가고 싶어 저리 발을 동동 구를까요?
궁금해하는 모습을 거울에 비춰가며
오늘의 콘셉트를 고민합니다
 
몇 개인가요?
쏟아지는 백 가지 질문 중에
당신의 대답을 헤아릴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만,
 
모자 속에서는 시시한 것들이
시시해지지 않고,
오늘 아침에는 그가 걸어 나왔습니다
모자를 쓰고 잤거든요
 
비가 오는 날에는 해반천을 걷습니다
뿔이 조금 더 자랄 수 있도록,
 
에코트리 숲 속에서 마술이 흘러나옵니다
가면은 벗어버리세요
 
햇빛 속에서도
그늘에서도
울고 싶을 때도
모자는 어리석어집니다
 
여름 얼굴은
뒷걸음질로 커다란 초록발 속으로 들어갑니다


ㅡ반년간 《시인들》(2026, 봄•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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