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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虎叱) 원문 부기

작성자낙민(장달수)|작성시간14.06.17|조회수138 목록 댓글 0

호질(虎叱)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수록된 이야기로 번역문 뒤에 원문을 부기하였다. 장달수

 

범은 착하고도 성스럽고, 문채롭고도 싸움 잘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엉큼스럽고도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 없다.

그러나 비위(狒胃)1)는 범을 잡아먹고, 죽우(竹牛 짐승 이름)도 범을 잡아먹고, 박(駮)2)도 범을 잡아먹고, 오색 사자(五色獅子)3)는 범을 큰 나무 선 산꼭대기에서 잡아먹고, 자백(玆白)4)도 범을 잡아먹고, 표견(䶂犬)5)은 날며 범과 표범을 잡아먹고, 황요(黃要)6)는 범과 표범의 염통을 꺼내어 먹고, 활(猾)7) 뼈가 없다. 은 범과 표범에게 일부러 삼켜졌다가 그 뱃속에서 간을 뜯어먹고, 추이(酋耳)8)는 범을 만나기만 하면 곧 찢어서 먹고, 범이 맹용(猛㺎 짐승 이름)을 만나면 눈을 감은 채로 감히 뜨질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은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되 범은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아서는 범의 위풍이 몹시 엄함을 알 수 있겠구나.

범이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게 된다. 그리고 범이 한 번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倀鬼)가 굴각(屈閣 창귀 이름)이 되어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이끌어 들여서 솥전을 핥으면 그 집 주인이 갑자기 배고픈 생각이 나서, 밤중이라도 밥을 지으려 하게 되며, 두 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이올(彛兀 창귀 이름)이 되어 범의 광대뼈에 붙어 살며, 높은 데 올라가서 사냥꾼의 행동을 살피되, 만일 깊은 골짜기에 함정(陷穽)이나 묻힌 화살이 있다면, 먼저 가서 그 틀을 벗겨 놓으며, 범이 세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鬻渾 창귀 이름)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 살되 그가 평소에 알던 친구들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

.하루는 범이 창귀들을 모아 놓고 분부를 내리되,

 

“오늘도 벌써 해가 저무는데 어디서 먹을 것을 취한단 말이냐.”

 

한다. 굴각은,

 

제가 진작 점쳐 보았더니 뿔 가진 것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검은 머리한 것이, 눈[雪] 위에 발자국이 비틀비틀 성긴 걸음을 하며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서 꽁무니를 못 감추는 그런 놈입니다.9)

 

하고, 이올은,

 

“저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사오니 그 이름은 ‘의원(醫員)’이라 한답니다. 그는 입에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과 고기가 향기롭고, 서문(西門)에도 먹을 것이 있사오니 그 이름은 ‘무당(巫堂)’이라 한답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양 부려 날마다 목욕재계해서 고기가 깨끗하온즉, 이 두 가지 중에서 마음대로 골라 잡수시죠.”

 

했다. 그제야 범이 수염을 거스리고 낯빛을 붉히며,

 

“에에, ‘의(醫)’란 것은 ‘의(疑)’인만큼 저도 의심나는 바를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만 명으로 셀 수 있고, ‘무(巫)’란 ‘무(誣)’인만큼 귀신을 속이고 인민들을 유혹하여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만 명으로 셀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뭇 사람의 노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그것이 화하여 금잠(金蠶)10)이 되었으니,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

 

했다. 이에 육혼은 또,

 

“저 숲속(유림(儒林))에 살코기가 있사온데 그는 인자한 염통과 의기(義氣)로운 쓸개에 충성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악(樂)은 머리 위에 이고 있고, 예(禮)는 신처럼 꿰고 다닌답니다. 뿐 아니라 그는 입으로 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碩德之儒 높은 덕망을 지닌 유학자)’라 하옵니다.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오미(五味)를 갖추어 지녔답니다.”

 

한다.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 세우고 침을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싱긋 웃으면서,

 

“짐(朕)이 이를 좀 상세히 듣고자 한다.”

 

하였다. 모든 창귀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범에게 추천한다.

 

“일음(一陰)ㆍ일양(一陽)을 도(道)라 하옵는데, 저 유(儒)가 이를 꿰뚫으며,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육기(六氣)11)가 서로 이끌어 주옵는데,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키나니, 먹어서 이보다 맛좋은 것이 없으리다.”

 

범이 이 말을 듣자 문득 추연(愀然)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서,

 

“아니다. 저 음(陰)과 양(陽)이란 것은 한 기운에서의 죽고 삶에 불과하거늘, 그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그 고기가 잡(雜)될 것이요, 오행은 각기 제 바탕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이제 그들은 구태여 자(子)ㆍ모(母)로 갈라서 심지어는 짜고 신맛들에 이르기까지 분배(分配)시켰으니 그 맛이 순(純)하지 못할 것이요, 육기는 제각기 행하는 것이어서 남이 이끌어 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이제 그들은 망녕되이 재성(財成)ㆍ보상(輔相)12)이라 일컬어서 사사로이 제 공을 세우려 하니, 그것을 먹는다면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지 않겠느냐.”

 

하였다.

 

때마침 정(鄭)의 어느 고을에 살고 있으면서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선비 하나가 있으니, 그의 호는 ‘북곽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한 글이 1만 권이요, 또 구경(九經)13)의 뜻을 부연(敷衍)해서 책을 엮은 것이 1만 5천 권이나 되므로, 천자(天子)가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諸侯)들은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그리고 그 고을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얼굴 예쁜 청춘과부 하나가 살고 있었다. 천자는 그의 절조(節操)를 갸륵히 여기고 제후(諸侯)들은 그의 어짊을 연모하여,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봉하여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守節)하는 과부였으나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각기 다른 성(姓)을 지녔다. 어느 날 밤 그 아들 다섯 놈이 서로 노래처럼 된 말로서,

 

강 북편에 닭 울음 소리 / 水北雞鳴

강 남쪽엔 별이 반짝이네 / 水南明星

방 안 소리 자아하니 / 室中有聲

북곽선생 어인 일고 / 何其甚似北郭先生也

 

하고는 성 다른 형제 다섯이 번갈아서 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선생께 청하기를,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연모하였답니다. 오늘 밤엔 선생님의 글 읽으시는 음성을 듣고자 하옵니다.”

한다. 그제야 북곽선생은 옷깃을 여미고 꿇어앉아서 시(詩) 한 장(章)을 읊었다.

병풍에는 원앙새요 반짝반짝 반딧불을 / 鴛鴦在屛耿耿流螢

가마솥과 세발솥은 무얼 본떠 만들었나14) / 維鬵維錡云誰之型

흥이라15) / 興也

그 꼴을 본 다섯 아들은 서로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과부의 문엔 함부로 들지 않는다.’ 하였는데 북곽선생은 어진이라서 그런 일 없을 거야.”

 

“나는 듣자 하니, 이 고을 성문이 헐어서 여우가 구멍을 내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들은즉,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환생(幻生)하여 능히 사람 시늉을 할 수 있다 하니, 그놈이 필시 북곽선생으로 둔갑한 것일게다.”

 

하고, 다시 서로 의논하되,

 

“나는 듣건대, 여우의 갓을 얻는 자는 천금의 장자가 되고, 여우의 신을 얻는 자는 대낮의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16)를 얻는 자는 남을 잘 괴어서 누구라도 그를 기뻐한다 하니, 우리 저 여우를 잡아 죽여서 나눠 갖는 게 어떨꼬.”

 

하고, 이에 다섯 아들이 함께 어미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북곽선생이 크게 놀라서 뺑소니를 칠 제 남들이 행여 제 얼굴을 알아볼까 해서 한 다리를 비틀어서 목덜미에 얹고 도깨비처럼 춤추고 귀신처럼 웃으며 문밖으로 나와서 들이뛰어 가다가 벌판 구덩이에 빠지니 그 속에는 똥이 가뜩 채워져 있었다. 간신히 휘어잡고 기어 올라서 목을 내밀고 바라본즉 범이 어흥하며 길을 가로막았다. 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구역질하고 코를 싸 쥐고 머리를 왼편으로 돌리며,

 

“에퀴이, 그 선비 구리도다.”

 

한다. 북곽선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여쭈되,

 

“범님의 덕이야말로 참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17)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18), 남의 아들 된 이는 그 효성을 본받고19),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20) 그 거룩하신 이름은 신룡(神龍)과 짝이 되어 한 분은 바람을, 또 한 분은 구름을 일으키시니21), 저 같은 하토(下土)의 천한 신하 감히 하풍(下風)에 있습니다.”

 

한다. 범은 이 말을 듣자 꾸짖는다.

 

“에에, 앞에 가까이 오질 말렸다. 앞서 내 들은즉, ‘유(儒)’란 것은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는 온 천하의 모든 나쁜 이름을 모아서 망녕되이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다급해지자 낯간지럽게 아첨하는 것을 그 뉘라서 곧이 듣겠느냐. 대개 천하의 이치야말로 하나인만큼 범이 진정 몹쓸 진대 사람의 성품도 역시 몹쓸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착할진대 범의 성품도 역시 착할지니, 너희들의 천만 가지의 말이 모두 오상(五常)22)을 떠나지 않으며 경계나 권면이 언제나 사강(四綱)23)에 있긴 하나, 저 도회지나 큰 고을에 코 베이고 발 잘리고 얼굴에 먹바늘을 뜨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 오륜(五倫)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람이란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줄이며 먹바늘이며 도끼며 톱 따위를 공급하기에 겨를이 없었지만 그 나쁜 짓들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범의 집에는 본래 이러한 악독한 형벌이 없으니, 이로써 본다면 범의 성품이 사람보다 어질지 아니하냐. 그리고 범은 나무와 푸새를 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강술 같은 좋지 못한 것을 즐기지 않고, 새끼나 기르는 것 같은 자잘구레한 것도 차마 먹지 않는다. 그리고는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을 사냥하고, 들에 나가면 마소를 사냥하되, 아직 구복(口腹)의 누(累)를 입거나 음식의 송사를 일으키거나 한 일은 없으니, 범의 도(道)야말로 어찌 광명정대하지 아니하냐. 범이 노루나 사슴을 먹으면 너희들 사람은 범을 미워하지 않다가도, 범이 만일 마소를 먹는다면 사람들은 원수라고 떠들어대니, 이것은 아마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로움이 없지만, 저 마소는 너희들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들은 저 마소의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도, 따르고 충성하는 생각도 다 저버리고 다만 날마다 푸줏간이 미어지도록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그 뿔과 갈기까지 남기지 않고도 다시 우리들의 노루와 사슴을 토색질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서 먹을 것이 없고 들에서도 끼니를 굶게 하니, 하늘로 하여금 이를 공평하게 처리하게 한다면 너희를 먹어야 하겠는가, 놓아 주어야 되겠는가. 대개 제것 아닌 것을 취함을 도(盜)라 하고, 남을 못살게 굴고 그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적(賊)이라 하나니, 너희들이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며 눈을 부릅뜨고, 함부로 남의 것을 착취하고 훔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심지어는 돈을 형이라 부르고24), 장수되기 위해서 아내를 죽이는 일25) 까지도 있은즉, 이러고도 인륜의 도리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메뚜기에게 그 밥을 빼앗고 누에한테서 옷을 빼앗으며, 벌을 제압하여 꿀을 약탈하고, 심한 자는 개미 알을 젓담아서 그 조상께 제사하니26)그 잔인하고도 박덕함이 너희들보다 더할 자 있겠는가. 너희들은 이(理)를 말하며 성(性)을 논하면서 툭하면 하늘을 일컬으나, 하늘이 명(命)한 바로써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 다 한가지 동물이요,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인(仁)으로써 논한다면 범과 메뚜기ㆍ누에ㆍ벌ㆍ개미와 사람이 모두 함께 길러져서 서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요, 또 그 선악으로써 따진다면 뻔뻔스레 벌과 개미의 집을 노략질하고 긁어 가는 놈이야말로 천하의 큰 도(盜)가 아니며, 함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고 훔쳐 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의 큰 적(賊)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범은 아직 표범을 먹지 않음은 실로 차마 제 겨레를 해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나 사슴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먹는 이만큼 많지 못할 것이며, 범이 마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마소를 먹는 이만큼 많지 못할 것이며, 범이 사람을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이만큼 많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 관중(關中 중국의 섬서성(陝西省) 지방)이 크게 가물었을 때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이 몇만 명이요, 그 앞서 산동(山東)에 큰물이 났을 적에도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이 역시 몇만 명 있었으니까. 그러나 서로 잡아먹음이 많기야 어찌 저 춘추 전국 시대만 하였으랴. 춘추 그 때엔 명색이나마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는 난리가 열일곱 번이요, 원수를 갚는다고 일으킨 싸움이 서른 번에 그들의 피는 천리를 물들였고 죽어 자빠진 시체는 백만이나 되었다. 그러나 범의 집에선 물이나 가뭄의 걱정을 모르므로 하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원수와 은혜를 모두 잊고 지내므로 다른 물건에게 미움을 입지 않고, 천명을 알고 그에 순종하므로 무당이나 의원의 간교함에 혹하지 않고, 타고난 바탕 그대로 지녀서 천명을 다하므로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아니하니, 이것이 곧 범이 착하고도 성스러운 것이다. 그뿐일까. 그 한 곳의 아롱진 것을 엿보더라도 족히 그 문(文)을 온 천하에 보일 수 있겠고, 척촌의 병장기(兵仗器) 하나 지니지 않고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만을 쓰는 것은 이로써 무(武)를 천하에 빛내는 것이었다. 범과 원숭이를 그릇에 그린 것은 효(孝)를 천하에 넓히는 것이었으며, 하루에 한번 사냥하여 까마귀ㆍ솔개ㆍ참개구리ㆍ말개미 따위와 함께 그 대궁[餕 먹다 남은 음식]을 나눠 먹으니, 그 인(仁)이야말로 이루 다 쓸 수 없겠고, 고자질하는 자는 먹지 않으며, 병폐한 자도 먹지 않고, 상제된 자도 먹지 않으니27), 그 의(義)야말로 이루 쓸 수 없지 않겠느냐. 그런데 너희들이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저 틀과 함정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저 새 그물과 작은 노루 그물과 물고기 그물과 큰 물고기 그물과 수레 그물과 삼태그물 따위들을 만들었으니, 이는 애당초 그물을 뜬 자야말로 뚜렷이 천하에 화근을 퍼뜨린 놈일 것이다. 게다가 큰 바늘이니, 쥘 창이니, 날 없는 창이니, 도끼니, 세모난 창이니, 한 길 여덟 자 창이니, 뾰족 창이니, 작은 칼이니, 긴 창이니 하는 것들이 생기고, 또 화포(火礮)란 것이 있어서 터뜨린다면 소리가 화산(華山)을 무너뜨릴 듯 그 불 기운은 음양을 누설하여 그 무서움이 우레보다 더하거늘, 이러고도 그 못된 꾀를 마음껏 부리지 못하여서 이제는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날을 만들되, 끝은 대추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다 담그었다가 세로 가로로 멋대로 치고 찌르되, 그 굽음은 세모창 같고, 날카로움은 작은 칼 같고, 열쌤은 긴 칼 같고, 갈라짐은 가지창 같고, 곧음은 살 같고, 팽팽하기는 활 같아서, 이 병장기가 한 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들이 밤중에 곡(哭)할 지경이라니28), 그 서로 잡아먹기로도 가혹함이 뉘라서 너희들보다 더할 자 있겠느냐.”

 

한다. 북곽선생이 자리를 떠나 한참 엎드렸다가 일어나 엉거주춤하더니, 두 번 절하고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전(傳)에 이르기를 비록 아무리 못난 사람일지라도 목욕재계를 한다면 상제(上帝)라도 섬길 수 있다29) 하였사오니, 이 하토(下土)에 살고 있는 천신(賤臣)이 감히 하풍(下風)에 섭니다.”

 

하고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듣되, 오래도록 아무런 분부가 없으므로 실로 황송키도 하고 적이 두렵기도 해서, 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리며 쳐다본즉 동녘이 밝았는데, 범은 벌써 어디론지 가버리고 말았다. 마침 아침에 밭갈러 온 농부가,

 

“선생님, 무슨 일로 이 꼭두새벽에 벌판에다 대고 절은 웬 절이시옵니까.”

 

하고 묻는다. 북곽선생은,

 

“내 일찍이 들으니

하늘이 높다 하되 / 謂天蓋高

머리 어찌 안 굽히며 / 不敢不跼

땅이 비록 두텁단들 / 謂地蓋厚

얕디디지 않을쏘냐 30)/ 不敢不蹐

하였네그려.”

 

하고는 말 끝을 흐려 버렸다.

 

[주1]비위(狒胃) : 짐승 이름. 비비(狒狒)의 일종.

[주2]박(駮) : 말과 같은 짐승인데, 《산해경(山海經)》에, “몸은 희고 꼬리는 검으며 외뿔에 범처럼 생겼으며, 어금니와 발톱을 가졌고, 호표를 먹는다.” 하였다.

[주3]오색 사자(五色獅子) : 호회(虎薈)에, “누런 털에 오색이 찬란하고, 꼴은 사자와 같다.” 하였다.

[주4]자백(玆白) : 《급총궐서(汲冢闕書)》에, “꼴이 말 같으며, 톱니가 날카로워서 호표를 먹는다.” 하였다.

[주5]표견(䶂犬) : 거수국(渠搜國)에 있는 개. 일명은 노견(露犬)인데, 날아서 호표를 먹는다 하였다.

[주6]황요(黃要) : 개의 일종. 표범과 비슷하고, 허리 이상은 누르고 이하는 검으며, 작은 놈은 청요(靑要)라 하는데, 요(要)는 요(腰)와 같다.

[주7]활(猾) : 범의 입에 들어가도 범이 물지 못한다. 그러면 범의 뱃속에서부터 먹어 나온다.

[주8]추이(酋耳) : 범의 일종. 크고 꼬리가 길다 한다.

[주9]뿔 …… 놈입니다 : 사람을 가리킨다.

[주10]금잠(金蠶) : 《박물지(博物志)》에, “남방 사람이 금잠을 기르는데, 촉금(蜀錦)을 먹이고, 그 똥을 음식 속에 넣으면 독이 있다.” 하였다.

[주11]육기(六氣) : 음(陰)ㆍ양(陽)ㆍ풍(風)ㆍ우(雨)ㆍ회(晦)ㆍ명(明).

[주12]재성(財成)ㆍ보상(輔相) : 《역경(易經)》에, “천지의 도를 마련해 이룩하며, 천지의 의(宜)를 도와 준다.” 하였다.

[주13]구경(九經) : 《역경(易經)》ㆍ《서경(書經)》ㆍ《시경(詩經)》ㆍ《춘추좌전(春秋左傳)》ㆍ《예기(禮記)》ㆍ《주례(周禮)》ㆍ《효경(孝經)》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

[주14]가마솥과 …… 만들었나 : 발 없는 가마솥과 세발솥은 그 모형이 다 다르다. 이로써 성 다른 다섯 아들에게 비하였다. 대체 다섯 아이들이 성도 다르고 얼굴도 같지 않으니, 이는 어떤 잡놈들과 관계해서 이런 것들을 낳았다는 의미.

[주15]흥이라[興也] : 육의(六義)의 하나. 먼저 어떤 다른 물건을 읊어서 그 목적하고 있는 것을 끄집어 일으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원앙새를 먼저 이끌어서 남녀의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다.

[주16]여우의 꼬리 : 꼬리라 하였지마는, 사실은 샅을 일컬었다.

[주17]대인(大人)은 …… 본받고 : 《역경(易經)》에 나오는 구절.

[주18]제왕(帝王)은 …… 배우며 : 《송사(宋史)》 태조기(太祖紀)에 나오는 말.

[주19]남의 …… 본받고 : 《서경(書經)》 채침(蔡沈)의 주(註)에 나오는 말.

[주20]장수는 …… 취하며 : 무관직에는 범호(虎) 자를 많이들 쓴다. 예를 들면 촉한(蜀漢) 때의 오호대장(五虎大將)과 같은 것.

[주21]신룡(神龍)과 …… 일으키시니 : 《역경》에 나오는 말.

[주22]오상(五常) : 부의(父義)ㆍ모자(母慈)ㆍ형우(兄友)ㆍ제공(弟恭)ㆍ자효(子孝).

[주23]사강(四綱) :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

[주24]돈을 …… 부르고 : 옛날 돈이 구멍이 났으므로 공방형(孔方兄)이라 하였고, 또는 돈을 가형(家兄)이라 한 이도 없지 않았다. 진(晉) 나라 노포(魯褒)의 〈전신론(錢神論)〉에 나오는 말들.

[주25]장수되기 …… 일 : 전국 때 명장 오기(吳起)의 고사.

[주26]개미 …… 제사하니 : 《예기》 내칙편(內則篇)에 나오는 일.

[주27]고자질하는 …… 않으니 : 이 세 가지를 먹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나라 재래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주28]보드라운 …… 지경이라니 : 붓으로 문자를 써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한다는 비유. 옛날 창힐(倉頡)이 한자(漢子)를 처음 짓자, 귀신이 밤에 울었다 하였다.

[주29]아무리 …… 있다 :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 나오는 한 구절.

[주30]하늘이 …… 않을쏘냐 : 《시경(詩經)》에 나오는 글귀.

 

虎叱

 

虎。睿聖文武慈孝智仁雄勇壯猛。天下無敵。然狒胃食虎。竹牛食虎。駮食虎。五色獅子食虎於巨木之岫。玆白食虎。䶂犬飛食虎豹。黃要取虎豹心而食之。猾 無骨 爲虎豹所呑。內食虎豹之肝。酋耳遇虎。則裂而啖之。虎遇猛㺎。則閉目而不敢視。人不畏猛㺎而畏虎。虎之威其嚴乎。虎食狗則醉。食人則神。虎一食人。其倀爲屈閣。在虎之腋。導虎入廚。舐其鼎耳。主人思饑。命妻夜炊。虎再食人。其倀爲彛兀。在虎之輔。升高視虞。若谷穽弩。先行釋機。虎三食人。其倀爲鬻渾。在虎之頤。多贊其所識朋友之名。虎詔倀曰。日之將夕。于何取食。屈閣曰。我昔占之。匪角匪羽。黔首之物。雪中有跡。彳亍踈武。瞻尾在腦。莫掩其尻。彛兀曰。東門有食。其名曰醫。口含百草。肌肉馨香。西門有食。其名曰巫。求媚百神。日沐齊潔。請爲擇肉於此二者。虎奮髯作色曰。醫者疑也。以其所疑而試諸人。歲所殺常數萬。巫者誣也。誣神以惑民。歲所殺常數萬。衆怒入骨。化爲金蚕。毒不可食。鬻渾曰。有肉在林。仁肝義膽。抱忠懷潔。戴樂履禮。口誦百家之言。心通萬物之理。名曰碩德之儒。背盎軆胖。五味俱存。虎軒眉垂涎。仰天而笑曰。朕聞如何。倀交薦虎曰。一陰一陽之謂道。儒貫之。五行相生。六氣相宣。儒導之。食之美者無大於此。虎愀然變色易容而不悅曰。陰陽者。一氣之消息也而兩之。其肉雜也。五行定位。未始相生。乃今强爲子母。分配醎酸。其味未純也。六氣自行。不待宣導。乃今妄稱財相。私顯己功。其爲食也。無其硬强滯逆而不順化乎。鄭之邑。有不屑宦之士曰。北郭先生。行年四十。手自校書者萬卷。敷衍九經之義。更著書一萬五千卷。天子嘉其義。諸侯慕其名。邑之東。有美而早寡者。曰東里子。天子嘉其節。諸侯慕其賢。環其邑數里而封之曰東里寡婦之閭。東里子善守寡。然有子五人。各有其姓。五子相謂曰。水北鷄鳴。水南明星。室中有聲。何其甚似北郭先生也。兄弟五人。迭窺戶隙。東里子請於北郭先生曰。久慕先生之德。今夜願聞先生讀書之聲。北郭先生。整襟危坐而爲詩曰。䲶鴦在屛。耿耿流螢。維鬵維錡。云誰之型。興也。五子相謂曰。禮不入寡婦之門。北郭先生賢者也。吾聞鄭之城門壞而狐穴焉。吾聞狐老千年。能幻而像人。是其像北郭先生乎。相與謀曰。吾聞得狐之冠者。家致千金之富。得狐之履者。能匿影於白日。得狐之尾者。善媚而人悅之。何不殺是狐而分之。於是五子共圍而擊之。北郭先生大驚遁逃。恐人之識己也。以股加頸。鬼舞鬼笑。出門而跑。乃陷野窖。穢滿其中。攀援出首而望。有虎當徑。虎顰蹙嘔哇。掩鼻左首而噫曰。儒 句 臭矣。北郭先生頓首匍匐而前。三拜以跪。仰首而言曰。虎之德其至矣乎。大人效其變。帝王學其步。人子法其孝。將帥取其威。名並神龍。一風一雲。下土賤臣。敢在下風。虎叱曰。毋近前。曩也吾聞之。儒者諛也。果然。汝平居集天下之惡名。妄加諸我。今也急而面諛。將誰信之耶。夫天下之理一也。虎誠惡也。人性亦惡也。人性善則虎之性亦善也。汝千語萬言。不離五常。戒之勸之。恒在四綱。然都邑之間。無鼻無趾。文面而行者。皆不遜五品之人也。然而徽墨斧鉅。日不暇給。莫能止其惡焉。而虎之家自無是刑。由是觀之。虎之性不亦賢於人乎。虎不食草木。不食虫魚。不嗜麴蘖悖亂之物。不忍字伏細瑣之物。入山獵麕鹿。在野畋馬牛。未甞爲口腹之累飮食之訟。虎之道。豈不光明正大矣乎。虎之食麕鹿。而汝不疾虎。虎之食馬牛。而人謂之讐焉。豈非麕鹿之無恩於人。而馬牛之有功於汝乎。然而不有其乘服之勞。戀效之誠。日充庖廚。角鬣不遺。而乃復侵我之麕鹿。使我乏食於山。缺餉於野。使天而平其政。汝在所食乎所捨乎。夫非其有而取之。謂之盜。殘生而害物者。謂之賊。汝之所以日夜遑遑。揚臂努目。挐攫而不恥。甚者。呼錢爲兄。求將殺妻。則不可復論於倫常之道矣。乃復攘食於蝗。奪衣於蚕。禦蜂而剽甘。甚者。醢蟻之子。以羞其祖考。其殘忍薄行。孰甚於汝乎。汝談理論性。動輒稱天。自天所命而視之。則虎與人。乃物之一也。自天地生物之仁而論之。則虎與蝗蚕蜂蟻與人並畜。而不可相悖也。自其善惡而辨之。則公行剽刦於蠭蟻之室者。獨不爲天地之巨盜乎。肆然攘竊於蝗蚕之資者。獨不爲仁義之大賊乎。虎未甞食豹者。誠爲不忍於其類也。然而計虎之食麕鹿。不若人之食麕鹿之多也。計虎之食馬牛。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計虎之食人。不若人之相食之多也。去年關中大旱。民之相食者數萬。往歲山東大水。民之相食者數萬。雖然。其相食之多。又何如春秋之世也。春秋之世。樹德之兵十七。報仇之兵三十。流血千里。伏屍百萬。而虎之家水旱不識。故無怨乎天。讐德兩忘。故無忤於物。知命而處順。故不惑於巫醫之姦。踐形而盡性。故不疚乎世俗之利。此虎之所以睿聖也。窺其一班。足以示文於天下也。不藉尺寸之兵。而獨任爪牙之利。所以耀武於天下也。彛卣蜼尊。所以廣孝於天下也。一日一擧而烏鳶螻螘。共分其餕。仁不可勝用也。讒人不食。廢疾者不食。衰服者不食。義不可勝用也。不仁哉。汝之爲食也。機穽之不足而爲罿也罞也罛也罾也罦也罭也。始結網罟者。裒然首禍於天下矣。有鈹者戣者殳者斨者叴者矟者鍜者鈼者者有礮發焉。聲隤華嶽。火洩陰陽。暴於震霆。是猶不足以逞其虐焉。則乃吮柔毫。合膠爲鋒。體如棗心。長不盈寸。淬以烏賊之沫。縱橫擊刺。曲者如矛。銛者如刀。銳者如釖。歧者如戟。直者如矢。彀者如弓。此兵一動。百鬼夜哭。其相食之酷。孰甚於汝乎。北郭先生離席俯伏。逡巡再拜。頓首頓首曰。傳有之。雖有惡人。齋戒沐浴。則可以事上帝。下土賤臣。敢在下風。屛息潛聽。久無所命。誠惶誠恐。拜手稽首。仰而視之。東方明矣。虎則已去。農夫有朝菑者。問先生何早敬於野。北郭先生曰。吾聞之。謂天蓋高。不敢不局。謂地蓋厚。不敢不蹐。

 

호질후지(虎叱後識)

 

연암씨(燕巖氏) 가로되,

“이 편(篇)이 비록 지은이의 성명은 없으나 대체로 근세 중국 사람이 비분(悲憤)함을 참지 못해서 지은 글일 것이다. 요즘 와서 세운(世運)이 긴 밤처럼 어두워짐에 따라 오랑캐의 화(禍)가 사나운 짐승보다도 더 심하며, 선비들 중에 염치를 모르는 자는 하찮은 글귀나 주워 모아서 시세에 호미(狐媚)하니, 이는 바로 남의 묘혈(墓穴)을 파는 유학자(儒學者)로서 시랑 같은 짐승으로도 오히려 먹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이 아닐는가 싶다. 이제 이 글을 읽어 본즉, 말이 많이들 이치에 어긋나서 저 거협(胠篋)ㆍ도척(盜跖)1)과 뜻이 같다. 그러나 온 천하의 뜻있는 선비가 어찌 하룬들 중국을 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청(淸)이 천하의 주인이 된 지 겨우 네 대째건마는 그들은 모두 문무가 겸전하고 수고(壽考)를 길이 누렸으며, 승평을 노래한 지 백 년 동안에 온 누리가 고요하니, 이는 한(漢)ㆍ당(唐) 때에도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처럼 편안히 터를 닦고 모든 건설하는 뜻을 볼 때에 이 또한 하느님의 배치(配置)한 명리(命吏 제왕을 일컬음)가 아닐 수 없겠다. 옛날 어느 학자가 일찍이 하늘이 순순(諄諄)히 명령하신다는 말씀을 의심하여 성인(맹자)에게 질문했더니, 그 성인은 똑똑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

‘하느님은 말씀으로 하진 않으시고 모든 실천과 사실로서 표시하는 거야.’2)

하셨으니, 소자(小子)3) 일찍이 이 글을 읽다가 이곳에 이르러선 퍽 의심스러웠다. 이제 나는 감히 묻노니,

“하느님께선 모든 실천과 사실로써 그의 의사를 표시하실진대, 저 오랑캐의 제도로써 중국의 것을 뜯어 고친다는 것은 천하의 커다란 모욕인만큼 저 인민들의 원통함이 그 어떠하며,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들의 닦은 덕(德)에 따라 다른 것이니, 백신(百神)은 그 어떤 냄새를 응감할 것인가.”

요컨대, 사람으로서 보면 중화(中華)와 이적의 구별이 뚜렷하겠지마는 하늘로서 본다면 은(殷)의 우관(冔冠)이나 주(周)의 면류(冕旒)도 제각기 때를 따라 변하였거니, 어찌 반드시 청인(淸人)들의 홍모(紅帽)만을 의심하리오. 이에 천정(天定)ㆍ인중(人衆)의 설(說)4)이 그 사이에 유행되고는, 사람과 하늘의 서로 조화되는 이(理)는 도리어 한 걸음 물러서서 기(氣)에게 명령을 받게 되며, 또 이런 문제로써 옛 성인의 말씀에 체험하여도 맞지 않으면 문득 이르기를,

‘이건, 천지의 기수(氣數)가 이런 것이야.’

한다. 아아, 슬프다. 이것이 어찌 참으로 기수의 소치라 이르고 말 것인가. 아아, 슬프다. 명(明)의 왕택(王澤)이 끊인 지 벌써 오래여서 중원의 선비들이 그 머리를 고친(치발(薙髮)) 지도 백 년의 요원한 세월이 흘렀으되, 자나 깨나 가슴을 치며 명실(明室)을 생각함은 무슨 까닭인고. 이는 차마 중국을 잊지 못함이다. 그러나 청이 저를 위한 계책도 역시 허술하다 하리로다. 그는 전대(前代) 오랑캐 출신의 말주(末主)들이 항상 중화의 풍속과 제도를 본받다가 쇠망했음을 징계하여 철비(鐵碑)를 새겨서 전정(箭亭 파수 보는 곳)에 묻었으나, 그들 평소에 하고 버리는 말 가운데에는 언제나 스스로 그의 옷과 벙거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오히려 다시 강약의 형세에만 마음을 두니 그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저 문왕(文王)처럼 깊은 꾀와 무왕(武王) 같은 높은 공렬로도 오히려 말주(은의 주왕(紂王))의 쇠퇴함을 구해 내지 못했거늘, 하물며 구구(區區)하게 저 의관 제도의 하찮은 것을 고집해선 무엇할 것인가. 그들의 옷과 벙거지가 진정 싸움에 경편하다면 저 북적(北狄)이나 서융(西戎)의 그것인들 아니될 이유는 없을 것인즉, 그들은 의당 힘껏 저 서북쪽의 오랑캐들로 하여금 도리어 중국의 옛 습속을 따르게 한 연후에야 비로소 천하에 홀로 강한 체할 것이어늘, 이제 온 천하의 인민들을 모두 욕된 구렁에 몰아넣고는 홀로 호령하되,

‘잠깐 너희들의 수치를 참으면 우리를 따라 강하게 될지어다.’

하나, 나는 그 ‘강하다’는 것이야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의관 제도만으로 강함이 된다면, 저 신시(新市)ㆍ녹림(綠林)5) 사이에 그 눈썹을 붉게 물들이거나6) 또는 그 머리 수건을 노란 빛깔로 고쳐서7)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했던 도적놈8)이라야 되는 것은 아니리라. 가령 어리석은 인민들로 하여금 한번 일어나서 그들이 씌워 주었던 벙거지를 벗어서 땅에 팽개친다면, 청 황제(淸皇帝)는 벌써 천하를 앉은 자리에서 잃어버리게 될지니, 지난날 이를 믿고서 스스로 강하다고 뽐내던 것이 도리어 망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된다면 그 빗돌을 새겨 묻어서 후세에 경계한 일이야말로 어찌 부질없는 짓이 아니리오. 이 편은 애초엔 제목(題目)이 없으므로 이제 그 글 중에 ‘호질(虎叱)’이란 두 글자를 따서 제목을 삼아 두어 저 중원의 혼란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주1]거협(胠篋)ㆍ도척(盜跖) : 모두 《장자》의 편명. 《남화경(南華經)》 외물편(外物篇)에 나오는 말.

[주2]옛날 …… 거야 : 《맹자》 만장편에 나오는 구절. 여기서 ‘어느 학자’란 맹자의 제자인 만장(萬章)을 말함.

[주3]소자(小子) : 연암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어서 한 말.

[주4]천정(天定) …… 설(說) : 《귀잠지(歸潛志)》에,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하늘도 막아 낼 수 없고,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 하였다.

[주5]신시(新市)ㆍ녹림(綠林) : 이 둘은 모두 당시의 소위 유적(流賊)이 출몰하는 근거지.

[주6]눈썹을 …… 물들이거나 : 적미적(赤眉賊). 서한(西漢) 말년의 유적.

[주7]머리 …… 고쳐서 : 동한(東漢) 말기의 황건적(黃巾賊).

[주8]도적놈 : 옛날 지배 계급의 역사에서는, 정의를 들고 일어서서 항쟁하는 농민들은 모두 도적이라 일컬었다.

 

燕岩氏曰。篇雖無作者姓名。而盖近世華人悲憤之作也。世運入於長夜。而夷狄之禍甚於猛獸。士之無恥者。綴拾章句。以狐媚當世。豈非發塚之儒。而豺狼之所不食者乎。今讀其文。言多悖理。與胠篋盜跖同旨。然天下有志之士。豈可一日而忘中國哉。今淸之御宇纔四世。而莫不文武壽考。昇平百年。四海寧謐。此漢唐之所無也。觀其全安扶植之意。殆亦上天所置之命吏也。昔人甞疑於諄諄之天。而有質於聖人者。聖人丁寧體天之意曰。天不言。以行與事示之。小子甞讀之。至此其惑滋甚。敢問以行與事示之。則用夷變夏。天下之大辱也。百姓之寃酷如何。馨香腥膻。各類其德。百神之所饗何臭。故自人所處而視之。則華夏夷狄。誠有分焉。自天所命而視之。則殷冔周冕。各從時制。何必獨疑於淸人之紅帽哉。於是天定人衆之說。行於其間。而人天相與之理。乃反退聽於氣。驗之前聖之言而不符。則輒曰。天地之氣數如此。嗚呼。是豈眞氣數然耶。噫。明之王澤已渴矣。中州之士自循其髮於百年之久。而寤寐摽擗。輒思明室者何也。所以不忍忘中國也。淸之自爲謀亦踈矣。懲前代胡主之末效華而衰者。勒鐵碑埋之箭亭。其言未甞不自恥其衣帽。而猶復眷眷於强弱之勢。何其愚也。文謨武烈。尙不能救末主之陵夷。况區區自强於衣帽之末哉。衣帽誠便於用武。則北狄西戎。獨非用武之衣帽耶。力能使西北之他胡。反襲中州舊俗。然後始能獨强於天下也。囿天下於僇辱之地。而號之曰。姑忍汝羞恥。而從我爲强。吾未知其强也。未必新市綠林之間。赤其眉黃其巾以自異也。假令愚民一脫其帽而抵之地。淸皇帝已坐失其天下矣。向之所以自恃而爲强者。乃反救亡之不暇也。其埋碑垂訓於後。豈非過歟。篇本無題。今取篇中有虎叱二字爲目。以竢中州之淸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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