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진리 / 누가복음 6장 20-26절 (265,363)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을 산상수훈(팔복)이라고 하고 본문은 평지수훈이라고 합니다.(4개 복, 4개 저주) 예수님께서 산에서 밤새 기도하신 다음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신 다음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병 고침을 받고자 하는 자와 귀신에게 고난을 받은 자와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온 목적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지키기 위해서 나와야 합니다. 17절을 보면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 목적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말씀은 사모해야 신앙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 20절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 말씀은 무리가 아니라, 교회 그냥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사명자) 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깨달을 수도 없고 오히려 시험에 들 수 있는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가난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페네스”(πένης)와 "프토코스”(πτωχός)입니다. 페네스는 상대적인 가난이고, 프토코스는 절대적인 가난입니다. 페네스는 일반적인 가난입니다.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는데 옆집을 보니까? 자기보다 집이 더 좋고 자동차도 더 좋습니다. 상대적인 가난입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이 자신의 것은 아닙니다. 프토코스는 거지 나사로, 탕자, 나오미처럼 파산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일용할 양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이라고 했습니다.(21절) 지금 마음 상태가 그럴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절대적인 가난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루터) 산상수훈에서는 마음이(심령)라고 했습니다. 원어를 보면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는 자는 가난한 자이다. 그런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21절입니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6절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입니다. 관계를 잘 하려면 말씀과 기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말씀과 기도에서 나옵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을 “펜데오”(πενθέω)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죄에 대해서, 불순종에 대해서, 영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입니다. 성도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애통입니다. 죄에 대해서, 불순종에 대해서, 영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22-23절입니다.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인자로 인하여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죄,심판,죽음의 문제 해결)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신실하신 분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실한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가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가르치면 고난을 당합니다. 교인들이 나갈 수 있습니다. 모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자가 하늘에서 상을 받는 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인정받는 걸 좋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26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여러분,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말씀에 주리고 목말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칭찬을 구하며 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