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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의 용어 사용 문제

작성자생각하는어부|작성시간06.12.18|조회수938 목록 댓글 0

중보기도’의 용어 사용 문제  

 오늘날 ‘중보기도’란 용어 사용 여부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서 찬반 양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예수님만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이시므로 신자들이 하는 기도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물론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이시지만 신자가 드리는 모든 기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이므로 중보기도란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중보란 말의 의미
 
  성경에서 ‘중보(자)’(Mediator)란 말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구속사역을 통해 둘을 화평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자 희생 제물이 되셔서 구약의 제사장들의 불완전한 제사를 폐하시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새 언약’의 중보가 되셨다(히 8:6; 9:15; 12:24).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딤전 4:5).
  구약에서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예표로서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 역할을 감당했다. 그들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을 대표하여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했다. 또한 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죄를 회개하고 희생 제사를 치렀다. 이 때문에 성경은 모세를 ‘옛 언약’의 중보라고 부르는 것이다(갈 3:19, 20).
 
  물론 오늘날의 신자들도 그리스도 안의 선지자로서 말씀을 전파하고, 제사장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신자는 ‘작은 예수’로서 그리스도가 부여하신 권세를 위임 받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하고 참된 ‘중보’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히 7:25; 롬 8:27, 34; 요일 2;1).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중보이신 예수님(또는 성령님)이 드리는 이런 기도에 어울리는 용어이므로 오늘날의 신자들이 드리는 기도에는 이런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이 타인을 위해 하는 기도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중보기도는 ‘중보이신 예수님이 드리는 기도’라는 뜻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대신하여 드리는 중보하는 기도’라는 뜻의 중보기도이다.
  영어로는 Intercession(명사-인터세션), Intercede(동사-인터시-드)인데 이 말이 공교롭게도 한글에서는 ‘중보기도’, ‘중보기도 하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응백 감수, [국어대사전]을 보면 중보라는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중보 仲保 (명사) (1) 둘 사이에서 일을 주선하는 사람 (2) <기독> 신과 사람과의 사이를 유화, 매개하는 일.
중보자 仲保者 (명사) 중보를 맡아서 행하는 사람, 곧 그리스도  
 
(*한자도 '한자 성경'이나 [신동아 콘사이스 국어사전]은 가운데 '중'자를 사용하여 중보<中保>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언어전문가들도 통일성이 없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중개<仲介>, 중재<仲裁>가 가운데 '중'<中>자라 아니라 버금 '중'<仲>자를 사용한 걸 보면 중보란 단어도 '버금' 중자를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 '가운데' 중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야후 국어사전]은 두 가지 한자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어 성경은 중보를 中保로 표현하고 있다(www.holybible.co.kr-중국어성경, BIG5 Code<번체중문>참조. *為는 해당되는 font<끌꼴>가 없어서 깨어진 것이므로 괘념치 말기 바란다).
 
갈 3:19  並且是藉天使經中保之手設立的。
갈 3:20 但中保本不是為一面作的
히 8:6  正如他作更美之約的中保
히 9:15 為此他作了新約的中保
히 12:24 並新約的中保耶穌
 
  국어 사전에 의할 때 중보 (1)은 Intercessor라는 뜻으로 (2)는 The Mediator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같은 중보라는 단어지만 의미하는 바가 다르므로, 문맥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타인을 위한 기도일 때는 (1)번의 의미로, 유일한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할 때는 (2)번의 의미로 사용하면 된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중보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모두가 (1)의 의미로 사용하지 (2)의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영어에서 우리 말로 번역된 중보기도에 관한 모든 책들이 Intercession, Intercessory Prayer(중보기도), Intercede(중보기도하다), Intercessor(중보기도자)란 단어를 사용한다.
  영어처럼 mediator와 intercession의 두 가지 다른 단어로 구분되어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공교롭게도 한글에서는 두 다른 단어가 한 단어로 번역이 되는 바람에 쓸데 없는 오해와 분쟁을 야기시켰다고 할 수 있다.
   
도고기도가 타인을 위한 기도인가?
 
  성경에 의할 때,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위한 기도를 도고기도라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도 이 말을 intercessions로 번역하고 있다(딤전 2:1-2).
  그러나 딤전 2:1-2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기도-간구, 기도, 도고, 감사-모두가 “모든 사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부사구의 수식을 받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네 가지 기도 모두가 문맥에서 볼 때 중보기도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하라”, 
  -“모든 사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모든 사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도고하라”, ”
  -“모든 사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감사(기도)하라”는 뜻이란 말이다.
 
  물론 많은 영어 성경들도 도고를 Intercessions으로 번역했지만 문맥으로 볼 때, 네 가지 단어 모두가 타인을 위한 기도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도고기도만 드러내어 타인을 위한 기도에 사용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또한  한글 개역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참고하면서 번역한 것인데 '도고'란 말은 중국어 성경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딤전 2:1 我勸你第一要為萬人懇求、禱告、代求、祝謝.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두 성경의 단어를 순서대로 비교해 보라. 중국어/한글성경을 순서대로 비교해 보면, 懇求(간구)/간구、禱告(도고)/기도、代求(대구)/도고、祝謝(축사)/감사로 되어 있다.여기서 주의할 것은 어떻게 해서 중국어 성경의 '도고'가 한글 성경에는 '기도'로, '대구'가 '도고'로 번역되었는가이다.
  도고(禱告)란 말은,  빌 '도'(禱)자와 고할 '고'(告)자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기도로 고하다'는 뜻이다. 중국어 성경은 그런 의미로 번역했고 '대신하는 기도'라는 뜻으로 代求(대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어떻게 해서 한글 성경은 '대신하는 기도라는 뜻'으로 '도고'라는 단어를 사용했는가이다.
  결국 '도고'라는 말은 단어 그 자체로는 '타인을 위한 기도'라는 의미가 전혀 없는 단어이다.
 
 
결론
 
  따라서, 한글에서는 ‘중보’란 말의 사전적 의미가 두 가지가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 성경적 신학적으로 볼 때 신자들이 ‘타인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불러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혼동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처음에 중보기도가 무엇인지 잘 몰랐을 때는 “왜 하필이면 중보기도인가?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가 아니신가?”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이후 실제로 중보기도를 하고 책들을 보면서 이런 의문은 없어졌지만 얼른 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혼동을 가져올 수 있는 용어이다.
 
  또한 중보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 잘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필자는 이 말이 새 언약의 중재자(仲裁者)이시자 새 언약을 우리에게 보증해주시는 보증인(保證人)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히 8:6과 7:22를 보라), ‘중(仲)’자와 ‘보(保)’자를 합친 인위적인 한자 합성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중보의 원어인 메시테스에는 보증인의 뜻도 포함되어 있으며 한글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런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신자가 타인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불러도 성경적 신학적으로는 무방하지만, 필자는 혼동과 오해를 피하고 각 교파의 사람들이 폭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대안적인 단어를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원어 성경도 ‘중보’는 ‘메시테스’로, 타인을 위한 기도는 ‘엔튝시스’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중보’는 mediator로, 타인을 위한 기도는 intercession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중보기도의 본질이지 어떤 특정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용어 사용의 찬반 여부 논쟁을 기화로 틈 탈지도 모르는 마귀의 책동으로 인해, 편이 갈라져서 교계가 쓸데없는 논쟁에 빠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용어를 대신 사용할 것인가?
 
  사람에 따라 중보기도라는 말 대신에, 청원기도, 도고기도, 이웃을 위한 기도, 합심기도, 중재기도란 말을 제시하고 있다.
 
  각 용어를 개별적으로 잠시 살펴보자.
 
  청원기도에 대해서는, 물론 영어의 Intercession을 청원기도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한 기도도 청원기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을 위한 기도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도고기도는 딤전 2:1-2의 문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고기도 뿐만 아니라 다른 세 가지 기도도 타인을 위한 기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도고라는 단어 그 자체에는 타인을 위한 기도라는 뜻이 전혀 없으며, 또한 이 단어는 국어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도 않은 단어이다.
  그 다음 ‘이웃을 위한 기도’는 너무 길고, ‘합심기도’는 타인을 위한 기도라는 뜻보다는 ‘단체기도’의 뜻이 강하다.
 
  따라서, 필자는 굳이 ‘중보기도’라는 대체 용어를 사용하려면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중재기도’가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이 용어가 원어는 물론 영어의 의미를 잘 전달하기 때문이다.
 
-intercede는 사이에 들어 중재[조정]하다; 청원[탄원]하다
-intercession. 중재, 조정, 알선, 주선
-intercessor. 중재자, 조정자, 알선자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재’라는 말을 둘 사이에서 조정하고 주선하고 알선하는 의미로 잘 이해하고 있고, 발음하기도 편하고. 용어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어의 바른 정의도 중요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이를 계기로 삼아, ‘중보기도’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서 모든 신자가 실제로 ‘중보기도’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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