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제 목 : 성도들이 좋아하는 설교(2)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왜 레위기 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하셨을까요? 성경에 없는 성경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율법으로 주셨지요. 돼지는 부정하니까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 돼지가 부정하다는 것은 발톱이 갈라져 있으면서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더럽다는 뜻입니다. 편의상 소하고 비교해서 말씀드립니다. 소 돼지 다 발굽이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소는 되새김질을 하니까 깨끗하고 돼지는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니까 깨끗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되새김질 하는 소나 하지 않는 돼지나 배설물을 보면 거의 같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소의 사육환경을 더 정결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소가 더 깨끗한 것 같은 착시현상이 있기도 했습니다. 조금 다른 것은 소는 풀을 먹기 때문에 곡식을 먹는 돼지 보다는 배설물이 덜 더러워 보일 뿐이지 소나 돼지나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아무데도 돼지가 소보다 더 부정하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돼지는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하셨을 까요? 율법이 다 그렇듯 이유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중동 주로 아랍국가에 가서 선교하는 우리 선교사들이 하나님께서 돼지고기를 금하신 것은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많아서 더운 지방에서는 쉬 부패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선교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돼지고기가 기름기가 많아서 쉬 부패하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로 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율법으로 부정하다고 하셨다는 일부 선교사들의 말은 잘 못 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돼지의 비계만 제하면 오히려 돼지가 소보다 기름이 많지 않고 돼지의 기름은 건강에 유익한 불포화 지방이 소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스페인에서는 돼지고기를 훨씬 더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돼지가 기름이 많아서 쉬 부패하기 때문에 부정하니 먹지 말라하셨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돼지는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하셨는데 그 원인은 소는 풀을 먹으니까 되새김질을 하고 돼지는 곡물사료를 먹기 때문에 되새김질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돼지가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돼지는 풀은 안 먹고 곡류를 먹는데 돼지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시면 육질이 좋은 돼지고기를 먹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곡식으로 돼지를 기르게 되면 가난 한 사람들은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돼지는 부정하니 먹지 말라는 율법을 주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 말씀에 의하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닫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율법을 주셨다고 통상적으로 말을 합니다. 부정하니 돼지고기 먹지 말라하신 율법도 사람 특히 가난 한 사람들을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제가 한 이야기들은 성경에 없는 성경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없는 성경이야기 정도의 예화라면 설교 중에 용납되지 않을까요?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 칭합니다. 물론 성경에 목회서신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초대교회이후 즉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도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에 대하여 연구에 연구를 더하고 회의에 회의를 더하여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 부르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 부르는데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목회에 필요한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시는 말씀인데 특히 이 시간 본문은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한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시간 본문은 설교는 이렇게 하라. 더 간단히 말 하면 설교는 오로지 성경 말씀으로 만 하라는 내용입니다. 목사가 어떻게 가르칩니까? 간단히 말하면 목사는 설교로 성도들을 가르치지요 그러니까 목회서신은 목사의 목회지침서 더 좁혀서 말하자면 목회서신서는 목사의 설교지침서이기도 합니다. 그중에 이 시간 본문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성경이 무엇인가 성경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즉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성경을 어디까지 즉 성도가 어느 경지 즉 어느 수준에 까지 이르도록 성경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포괄적으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세상 말로 하자면 이 시간 본문 두절 말씀은 목회서신 중에서도 에끼스 중에 에끼스라 할 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목사가 이 두절 말씀을 깊이 숙고하여 이해가 깊어진다면 완벽에 가까운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의 목회는 성공적인 목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16-17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제하기 않고 하는 설교는 지금 제 나이 86세인데 21살에 세례를 받았으니까 공식적으로는 예수를 65년 믿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65년 아니라 650년을 믿었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25년이 지나 교회 건축한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주일 날 예배를 마치고 지하 식당에 내려가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밥을 못 먹고 다 우두커지 앉아있었습니다. 왜 밥 안 먹고 있느냐 했더니 안영순이라는 노인 집사가 일어서 제가 성도들을 혼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안 오셨는데 목사님 진지 잡수시러 내려오시지도 않았는데 아니 버릇없이 밥을 먹으려고 해서 자기가 혼을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집사를 조용히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 했습니다. 집사님 밥 먹을 때는 목사가 어른 아니에요. 밥 먹을 때는 집사님 같은 노인이 어른이에요. 그러니까 노를 푸시고 집사님도 진지 잡수시라고 말하고 목사를 목사 대우하는 것은 좋지만 밥 먹을 때가 아니라 설교들을 때 진짜 어른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목사가 하나님 말씀으로 설교를 하면 그 설교는 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설교하는 목사를 진짜 어른으로 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다. 목사가 하나님 말씀으로 설교를 할 때가 진짜어름으로 존경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그 집사가 “예”하고 순종 했을까요. 후에 들으니까 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치시니까 성도들이 저렇게 버릇없는 성도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번도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도 있었고 좀 멀리 이사를 하기도 했었지만 그렇습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일반적인 성경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들은 상당히 포괄적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각각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많은 것입니다. 말씀 중심으로 설교하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사람 즉 성도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목사요 설교라는 것을 확신하시는 우리 서산엘림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