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정점입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 가운데 노아와 짐승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했다’는 말은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정신적 작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게 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6:18). 물을 물러나게 하는 ‘바람’은 ‘루아흐,’ 곧 성령도 의미하는 말입니다.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 물을 마르게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1장 2절의 상태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다시 재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물은 점점 땅에서 물러가고 홍수가 있은 지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17일에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4). 물은 점점 줄어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습니다(5). 사십일 후에 창문으로 까마귀를 내어 놓아 물이 얼마나 줄었는지 살핍니다. 노아는 그들이 남은 유일한 인류와 짐승이기에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까마귀를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하늘을 왕래합니다.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놓습니다. 그러자 비둘기도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옵니다. 칠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놓자 저녁 때가 되어 돌아 오는데, 감람나무(올리브) 잎사귀를 가지고 옵니다. 노아는 그것으로 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11). 그리고 다시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자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비둘기가 나무가지 위에 집을 짓고 살 수 있을 만큼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12). 노아는 홍수가 있은 지 11개월 후에 방주의 뚜껑을 열고 밖을 봅니다. 물은 지면에서 모두 걷혀졌지만 여전히 젖어 있었습니다. 둘째 달 20일이 되어서야 땅이 말랐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하시고, 모든 생물들을 다 이끌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17). 이것은 아담에게 했던 명령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동물을 넣었을 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깁니다(18-19).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대조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으로 주신 것을 먼저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구원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서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사람의 죄악으로 땅을 심판한다면 또 다시 땅과 피조세계는 심판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를 받으시고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지속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제는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피조세계를 보존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20-22). 그것은 인간의 죄악이 피조세계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피조세계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매 해가 반복되고 매년 계절이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셔서 세상을 지금도 보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됩시다. 또 때로 자연재해를 통해서 아직 여전히 피조세계가 죄의 영향 아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만물을 완전히 새롭게 하실 날을 바라보게 합니다. 죄의 세력이 완전히 없어질 바로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의 하나님의 은혜를 즐기고, 또 완전한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