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는 하나님은 앞에서 말씀한 것들 중에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먼저 자식을 몰렉 신에게 바치는 사람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런 사람은 친척과 이웃이 먼저 돌로 쳐야 합니다.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땅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지방 사람들(친척과 이웃)이 그것을 보고도 돌로 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지방 사람들에게도 진노하십니다(1-4). 또 점이나 굿을 통해서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을 따르는 자도 죽음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부모님을 저주하고 욕하는 자도 해당됩니다. 또한 부부 관계 외에 성적인 관계를 갖는 사람과 가까운 가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사람도 사형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5-14). 나아가 짐승과 관계를 갖는 남여 모두도 사형에 해당합니다(15-21). 하나님은 이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땅이 그들을 토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전에 살던 민족들의 풍습이었습니다(22-23).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싫어하시고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서 살아갈 때에 그곳의 생활을 본받지 않아야 합니다. 새로운 환경이지만, 그곳에서 살던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감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삶 속에서 드러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성생활, 종교 생활, 가정 생활 모두 하나님의 법으로 무장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감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해야 했습니다(26).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 가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에게 사형을 명하신 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고, 또 과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조금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이것은 단지 문화적, 시대적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오늘날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죄를 많은 순간 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죽지 않고 회개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지 문화적 차이때문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이런 죄를 짓는 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 죄에 머물러 있다면 거룩한 삶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또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영적으로 일시적인 죽음을 그 사람에게 교회의 권징(출교)을 통해서 주게 됩니다. 이로써 얼마나 심각한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합니다. 구약에서 가족과 주민이 먼저 돌로 쳐 죽이는 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서로를 위한 권면과 권징으로 영적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세상사람들과 구별되게 삽시다. 거룩한 삶을 위해서 서로 독려하며 권면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