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가장 먼저 제사를 회복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살고 있던 이방 백성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그들로부터 보호를 요청했을 것입니다. 제단을 세우고 일곱째 달에 있는 초막절을 지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두번째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이고 완성을 의미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동안 지켜지지 못했던 초막절을 다시 지키고, 율법에 따라 매월 첫째 날 드려야 하는 번제(월삭)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려야 하는 번제(상번제)와 절기 때 마다 지켜야 하는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하지만 본래 성전에 있는 번제단에서 드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하게 회복되었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성전은 여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성전의 기초를 놓은 말씀입니다. 2년 동안 성전 없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성전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20세 이상인 모든 레위 사람들을 세워 성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감독관으로 세웁니다. 주변에 건축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서 사람을 고용했고(7), 본격적인 성전 건축을 위해서 기초를 놓습니다. 건축 자재를 위해서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을 언급하는 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그들을 통해서 자재를 받은 것과 평행이 됩니다. 스룹바벨은 제2의 솔로몬으로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또 솔로몬이 둘째달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던 것 같이 스룹바벨도 둘째 달에 성전 공사를 시작합니다. 의도적으로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제사장들이 예복을 갖추고 아삽 자손들이 제금을 들고 다윗의 시편 중에 성전에 관한 시편을 부르는 것도 솔로몬 성전에서 늘 있었던 찬양과 연속성을 두는 것입니다.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그 규모가 솔로몬 성전과 비교했을 때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서 솔로몬 성전을 생전에 본 노인들은 슬퍼 울었고, 젊은 세대는 찬송하고 기뻐하며 외쳤습니다. 하지만 기쁨의 소리가 슬픔의 소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새 성전은 이전 성전에 비해 비록 초라하고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재건되어 이스라엘의 회복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작된 회복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땅이 회복되고 제단이 회복되고, 절기가 회복되고, 성전의 기초가 놓여짐으로 성전의 회복을 향해 나아갑니다. 비록 이전의 성전에 비하면 작지만 황폐한 상황에서 성전의 기초가 놓아지는 것 자체가 엄청난 희망과 회복을 예견합니다. 이런 제사의 회복들은 돌아온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회복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런 회복의 길은 이미 있던 다른 백성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또 비록 초라해 보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런 제사와 성전의 기초를 놓는 일은 레위인을 감독하에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해 진행되기 때문에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무가치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백성은 회복의 길을 묵묵히 갔습니다. 예배의 형식을 하나 둘 갖추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전의 기초를 놓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성수하고, 식사 전에 기도하고, 시간을 내어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예배시 형식을 갖추는 것 등의 모습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보면 건조한 형식주의나 가치 없는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압니다. 이 모든 것들은 속이 텅 빈 형식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기쁨과 회복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회복의 시작은 그런 기초적인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런 회복의 길을 하나 둘씩 붙잡으며 묵묵히 개인과 가정과 교회 안에서 회복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