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성전 재건을 시작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곳에 있던 이방 백성들이 방해하는 장면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성전 재건에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룹바벨은 거부했습니다(1-4). 그들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성전 건축에 진심으로 참여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혼합주의자로서 유대교의 하나님도 자기를 위한 신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거부 당했을 때 그들은 성전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공사가 더이상 진행되지 못하게 막았고, 또 아닥사스다가 왕이 되었을 때 상소를 올려 성벽이 재건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고레스와 아닥사스다는 무려 60년 넘게 차이가 납니다. 이 방해꾼들의 방해는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성벽을 재건하는 것에도 나아갑니다. 에스라서 저자는 비록 연대기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지만 성전과 성벽을 짓는 것을 방해하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성전을 짓는데 방해를 받았습니다. 성전 건축의 방해는 고레스 왕부터 다리오 왕 2년 재위때까지 이어집니다. 대략 14년동안 성전을 짓는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닥사스다 왕이 다스리던 시기는 약 56년 뒤입니다. 그 때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던 시기였습니다. 성전과 성벽이 지어질 약 70년의 시간 동안 지속적인 방해를 했기 때문에 함께 묶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들의 방해는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고발의 내용은 거짓이고 영적인 일을 정치적인 공작으로 해석한 결과였습니다. 아닥사스다는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함과 강력했던 과거를 이유로 고발을 받아들여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17-22). 이로 인해 결국 회복을 향한 걸음은 잠시 멈추었습니다(23-24).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걸어가는 회복의 길에 방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방해는 오늘 말씀에서 처럼 외부적일 수도 있고 학개서 말씀과 같이 내부적일 수도 있습니다(학1:1-6).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는 것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종교에서 말하는 관용입니다. 이런 관용은 성경에서 말하는 관용이 아닙니다. 이런 관용은 오히려 교회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회복의 길을 걸어갈 때 외부적으로 바쁨과 예기치 못한 일 등으로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내적으로 게으름과 빠른 만족감으로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평가 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은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우리가 말씀으로 개혁되어 갈 때 방해하는 세력은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잠시 주춤할지도 지속적으로 회복과 개혁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많은 방해 속에서도 여전히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