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문자
어제보단 오늘이
더 행복하기를 희망하며
의무처럼 찾아온 아침과 함께
병원으로 온 할머니는
좋은 날은 같이 웃었고
궂은 날은 같이 울었던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할아버지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섰습니다
이 유리창이
누군가에겐 벽이지만
할머니에겐 길이라는 듯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냅니다
마주 보고 할 말은 눈물이라
꼭꼭 눌러 쓴 문자에는
"영감 나왔어요
오늘도 누워만 계실거유"
올 리 없는
핸드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다
"영감 내일 또 오리다
무슨 일 있으면 내게 문자 보내세요"
남루한 세월을 안고 있는
할아버지가 언젠가는 깨어나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내줄 거라는
믿음만으로 가을을 놓고 가는 겨울처럼
병원문을 나섭니다
허공을 이고 선 녹슨 뼈마디로
길 따라 걷다가 얼마 가질 못하고 거리에
혼자 너부러져 있는 벤치에 앉고 말더니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바람을 기다리는
낙엽 하나를 주워 바라보면서
지난날 아픔들을 회상해 보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생신날 모인 두 아들 내외는
서로 자신들이 모실 수 없다며
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머뭇대는 바람처럼 보고만 있는
노부부의 얼굴은 말하기도 전에 굽은 그림자
되어갈때 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관계로
서울에 있는 큰아들 내외가 모시고
할머니는 부산에 있는 작은 아들네 집으로
가야만 하는 이별 아닌 이별을 하고 말았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곤 하지만
이별을 목에 두른 채
생일 날과 추석과 설날
이렇게 일 년에 딱 네 번만 만날 수밖에
없었던 노부부였기에 적적한 날 끝에 오는
문자 하나로 이별의 아픔을 한 조각씩
태워 갈 수 있었다 말합니다
"영감 잘 계세요?“
돋보기를 낀 채
다섯마디 글자를 보내는데도
갖은 공을 들이고 있는 할머니 앞으로
“그려….
임자도 밥 먹었남.?.”
한참이나 지나고서야
“난 먹었어요…. ”
그리고 다시 한참을 지나
“잉감은 뭐 드셨슈?”
“잉감이 뭐야 잘 좀 써”
“그냥 대충 알아들으세요”
마음속 먼저 나오려는 단어들을
따라가기에는 모자란 손끝을 높이 세워가며
하루하루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만으로
파란 하늘에 구름 가듯 마음은 행복하다며
말입니다
귀가 어두워
문자로 대신하는 게 편하다는 할아버지랑
하루라는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자라곤 채 다섯통이 되질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하늘 가득 하고픈 말을
애써 참아가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를
스쳐온 바람이 가슴에 머뭅니다
10일 후엔
할아버지 생신이라
서울로 갈수 있다는 희망을 매단 채
염색도 하고 입고갈 옷도 다려서 펴놓고는
할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영감..5일 남았슈”
“할멈….
먼 길 오려면 힘드니까
편하게 하고 와”
“왜요….
당신 첨 만나던 날처럼
예쁘게 연지곤지 찍고 갈 거유”
그저 마주하는 그 표정 하나면
충분하다는 듯 할아버진 얼굴에 묻어 있는
행복을 감출 곳이 없어 보입니다
가까운 듯 먼 듯
주고받는 문자들이 장독대 위에
흰 눈이 쌓이듯 소복소복 쌓여가던 시간이 지나
“임자…. 내일 봅시다"
“네…. 내일 봐요”
하지만 만날 수 있다는 기쁨 하나로
버텨온 할아버지에게
“아버님..
동생 내외가 갑자기 해외 출장이
잡혀 어머님을 서울로 못 데려다 줄 것
같다네요“
“아니다
. 생일이 대수냐 일이 먼저지..”
이별에 수많은 못 자국을
보고픔 만으로 지워온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지병으로 수술한 지 2년 만에
다시 쓰러져 중환자실로 입원을 하고 말았던
지난 일들을 회상해 보고있던 할머니는
되돌이표 없는 가슴을 안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모진 하루를
안고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검푸른 하늘엔 낯선 겨울비라도
한줄기 내릴 것 같은 오늘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병원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영감…. 잘 잤슈?”
오지않을 핸드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 문자를 보냅니다
“영감….
뭐 잡숫고 싶은 건 없어요?”
사랑은 끝없이 주고도
모자란 가슴이 되어야만 한다는 듯
할머니는 문자 하나를 보낸 뒤
유리창 너머로 할아버지를 한번 쳐다보고
또 문자 한 번에 할아버지 한번 쳐다보며
오지 않는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다
허망한 속내를 내어놓고는 성한 곳 하나
없는 몸뚱아리로 자꾸만 뒤돌아 보면서
걸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한 계절하고도 또 한 계절이 더 오고 가던
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식 앞에 늘 덤이었던 삶을 뒤로하고
하늘나라로 떠나던 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두 손 사이에 핸드폰을
꼭 끼워주고는
“영감.....
그곳에 가면 잘 도착했다고
내게 문자 보내줄 거죠?”
밥은
잘 드시는지...
혼자
외롭지는 않은지...
때론 둘이 함께한
지난 날이 그립지는 않은지....
“문자해 줄꺼쥬?..“
가을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고
할머니는
오늘도
하늘에 있는 새벽달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부모의
그림자에 날개를 그리는 자식은
이 세상에 없다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