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5월 달 이제 마지막 날을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데요.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했지만 또 성령 강림으로 인해서 성령을 우리가 굉장히 사모하는 심령으로 부르짖는 귀한 달이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지금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에 지금 계속 초대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있는데요. 우리는 종종 초대교회 하면 굉장히 이상적인 교회, 지금 우리도 초대교회와 같으면 좋겠다 이런 말들을 참 많이 합니다. 그때처럼 순수한 교회, 그때처럼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 그때처럼 완벽한 그런 교회의 공동체가 세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이렇게 보통 표현들을 하죠.
근데 여러분 성경을 가만히 읽다 보면요. 초대교회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의 문제가 있었어요. 앞에 이제 화면을 좀 보시면서 말씀을 나눕니다. 보시면 초대교회에도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있었어요. 충격적인 사건이죠.
한번 여러분 상상을 해 보십시오. 지금 이 성도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헌신을 하는데 어느 날 어떤 가정이 헌신하겠다고 결단한 걸 지키지 않은 것 때문에 죽어나가는 걸 우리가 봤어요. 이거는 그냥 우리 안 그래야 되겠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라 공포감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그 당시 헬라파 가부들에 대한 차별의 문제도 6장에 보면 등장을 하는데요. 서로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의 요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들과의 갈등도 교회 안에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초대교회가 완벽하고 정말 우리가 모든 걸 다 본받아야 할 그런 교회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초대교회가 이 세상을 뒤흔들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달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 그 말씀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가운데 그 답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성령님이 함께하셨기에
아멘 지난주 말씀을 여러분들 기억해 보시면 베드로 사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말씀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그리고 회개하고 세례받는 사람들이 3천이나 더 했더라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고 회개하고 이제 그 과정 이후에 그들은 그러면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냥 그들이 개인의 변화로만 멈춘 것인가 그게 아니라 성경은 공동체를 세우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디트리트 본 회퍼라고 하는 신학자가 신도의 공동생활이라고 하는 책을 1938년에 기록했는데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의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실제입니다.
좀 약간 어려운 말이긴 한데요. 쉽게 말을 하면 우리는 교회 하면 굉장히 막 이렇게 교회 다니는 사람 하면 마치 천사와 같을 것 같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 하면 뭔가 잘못을 안 하고 다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교회 안에서 확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있고 여러 가지 어려움의 요소들이 등장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상적인 이 교회 공동체 자체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제라고 하는 거예요.
종종 어떤 이들은 교회 공동체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까 왜 교회가 이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왜 저러는 거야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가난한 성도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현실의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죠.
그런데 보네퍼의 말은 이런 겁니다.
공동체는 이상 우리가 볼 때 그냥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실제다.
진정한 공동체는 그것을 인정할 때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초대교회도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그 안에 계시니까 어떠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들을 성령님과 함께 헤쳐나가는 과정 속에 인도받은 공동체였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 공동체가 어떻게 이제 반응하는지 42절 말씀을 보면 네 가지로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가지를 보시면 42절에 있는 네 가지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고 교제하였고 그리고 떡을 떼었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예 여러분 한번 우리 같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첫 번째 뭘 했어요? 네 저기 가로친 걸 읽으면 더 되겠네요.
첫 번째 사도의 가르침, 두 번째 코이노니아, 세 번째 네 번째 이 네 가지가 세례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이들,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 성령이 내조하는 이들이 이제 드러낸 네 가지의 그러한 모습입니다. 근데 이 네 가지 중에도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바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입니다. 이 순서가 굉장히 중요해요. 네 친교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한데요. 그것에 가장 뿌리 되는 것이 바로 말씀이라고 하는 겁니다. 말씀이 없는 공동체는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서로 하나가 되어도 뿌리가 없기 때문에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이 당시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 사도들을 통해서 선포된 말씀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살아있는 증언이었죠. 예수님과 동행했던 사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걷고 먹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고 그 복음이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는 말씀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죠. 우리는 신앙을요 경험으로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뭔가 내 안에 체험이 일어나고 뭔가 이렇게 뜨거워진 마음이 일어나고 그럴 때 내 믿음이 좀 이렇게 생긴다고 생각을 하고 냉랭하거나 뭔가 어려움이 있을 때 그럴 때는 또 믿음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을 해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교회가 흔들릴 때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늘 말씀에서 벗어날 때 교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우리는 기억합니다. 초대교회 그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지만 종교 개혁 당시의 핵심도 바로 말씀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바로 중심이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데 여러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지금 말씀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말씀을 여러분들의 삶에 녹여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신앙의 중심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모일 때 가장 힘쓰는 것이 무엇인지 좀 점검해 보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바로 말씀 중심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위에 교제하고 기도하고 또 나누고 섬기는 꽃이 피워진 것입니다. 4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요한 크리소스 토모스라고 하는 황금의 입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설교를 얼마나 강력하게 하는지 매주 성경을 한 구절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데, 이 설교를 들으려고 그 당시에 황제나 귀족들도 몰려들 정도로 굉장히 달변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설교에 능력이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은 영적인 굶주림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먹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본인은 그냥 교회의 사명을 감당한다 그뿐이라는 거죠. 그 말씀 중심으로 세운 교회가 그 당시에 4세기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에서도요. 지금 주일 예배 외에 계속적으로 예배가 있고 그 예배 시간 시간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내게 주어진 밥상들을 지금 잘 챙겨 먹고 있는가 점검해 보십시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밥 먹는 것만으로 내가 지금 영적으로 건강하다 착각하지 마세요. 매일매일 내가 식사하지 않으면 내가 병들어 가는 것처럼 말씀으로 내가 건강하게 세워지지 않으면요. 우리의 신앙은 쉽게 무너집니다.
내가 몇십 년 신앙생활했다고요? 건강 몇십 년 건강해도 한순간 건강은 무너지잖아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 성령 충만은 개인적인 체험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계의 변화가 일어났어요.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사람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바로 관계의 변화였습니다.
44절 45절 말씀 이후의 내용들을 이렇게 보시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강제된 분배가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니까 자발적으로 내 이웃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보이게 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발적으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여기서 일어난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이 교제가 단순히 함께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참여하고 공유한 그런 역사가 초대교회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성령 때문에 그랬어요.
여러분 앞에 내용을 보십시오. 성령이 임재하니까 그들이 마음에 막 기쁨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사역은요. 의무감으로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먼저 말씀으로 무장하는 가운데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내면의 기쁨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 내면의 기쁨이 일어날 때 내가 자발적으로 뭔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또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향하여 내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런 과정 속에서 공동체는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가 내면의 기쁨이 없이 또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될 때도 있어요. 근데 그때 여러분들이 그냥 기계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쉽게 지쳐버리고 오히려 내가 그 일을 감당하다가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 누군가를 판단하고 또 손가락질하는 그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성령 충만을 구해야 돼요.
예 요즘 계속 성령에 대한 이야기가 말씀을 통해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임할 때 그 일들은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말씀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46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이 사람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말씀하는데 보십시오. 두 가지로 이렇게 장소를 구분해서 볼 수 있어요. 성전과 집입니다.
여러분 두 장소가 나오는데 성전은 공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서 그리고 가정은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두 장소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당 교회에 와서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또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의 공간 그리고 밥상 앞에서도 그 공동체가 살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가 이 공간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예배를 우리가 함께 모여서 드리지만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로 이 예배가 흘러가야 되는 거예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가정에 대한 제가 한 두 주 정도 설교도 말씀을 나눈 적이 있지만 여러분 우리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정말 기도하고 여러분들이 헌신하셨다면 5월 한 달 여러분들의 가정 가운데 작은 변화 차근 어떠한 균열이 다시금 회복되고 또 일으켜 주시는 은혜가 일어나실 줄 믿습니다.
여기에서만 끝나면 안 돼요. 우리가 소그룹 나눔을 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 그 은혜를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결단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그들이 이 일을 기쁨과 순전함으로 했다고 하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기쁨과 순전함으로 의무감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이게 바로 성령의 열매예요. 성령이 충만하면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마음에 지금 신앙생활에 어떤 기쁨이 희미해지고 열정이 식어져 있다면 성령을 구하십시오. 환경을 탓해선 안 돼요.
저도 코로나를 거치고 여러 가지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과정 속에서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를 탓할 때가 그런 마음들이 제 마음에 들어올 때가 많았습니다. 근데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상처가 더 깊어지더라고요. 정답은 여기에 있어요.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케 하시고 그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 일은요 과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에요. 우리 지금 100년 전 우리 이 땅에서도 평양의 대부흥 운동을 우리는 잘 기억하잖아요. 놀라운 평양의 대부흥 운동이 단순히 그냥 감정적인 그런 체험으로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그 부흥의 이후에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관계가 회복되고 삶이 회복되고 나눔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요. 오랫동안 원한이 있었던 관계에 있는 사람들 앞에 공동체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부유한 성도들이 나눔을 베풀고 이런 일들이 이 땅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모습을 봤던 선교사 블레어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는 사도행전의 한 페이지를 마주한 것 같은 현실을 보았다.
이 땅에서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니까 대부흥의 운동 속에 사도행전의 한 페이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나지만 결코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성령이 임하시면 내 개인의 삶의 변화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관계가 변하고 공동체가 변화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의 증거는 어떤 은사, 방언, 예언 이런 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우리 동력자들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관계가 깨어진 분들이 참 많아요. 가정 안에서 또 공동체 안에서 또 과거의 어떤 상처로 말미암아 그 깨어짐이 벗어나질 못하니까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 함께 구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오래된 갈등이 풀리고 나누기 어려웠던 것들이 나누어지고 함께하기 싫었던 사람들과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이 코이노니아가 일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도 서로 돌아보고 서로 필요를 채워주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이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이 사람들이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그러한 나눔과 베풂이 또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니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47절 말씀을 보십시오. 47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들은 뭐가 다른데 쟤네들은 왜 저러지?
여러분 이것은 아주 너무나도 중요한 진술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야 할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죠.
우리는 세상에 빛으로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니까 온 백성이 그들을 칭송했다는 거예요. 네 작은 글씨지만 혹시 보이시는 분들은 읽어보실까요? 마태복음 5장 16절 시작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멘 여러분 우리는요. 돌아다니는 하나님의 간판 같은 사람들이에요. 요즘 돌아다니면 간판 들고 다니는 사람들 참 많죠. 누구누구 후보 이렇게 해달라고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간판 같은 사람이라고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람들 앞에서 인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뭔가 잘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진정한 공동체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갔더니 세상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보고 하나님을 증언하는 그 증언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47절의 마지막에 보니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아멘 우리는 이 뒤에는 기대가 많잖아요.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앞으로 주께서 그 사람들을 귀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 앞에 있는 게 뭐예요?
우리가 온 백성에게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묵상하면서 이제 9년째 돼 가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과연 우리 공동체가 이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공동체가 되고 있는가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도요. 물론 주차 공간이 너무 비좁고 힘들지만 주차할 때도 절대 가게 앞에다 대놓고 오시면 안 됩니다. 주말이어도 가게는 운영을 하잖아요. 그렇죠 교회에 오는 걸 그 사람들이 알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우리 장사 망쳤다고 또 이런다고 평상시에 조금 힘들어도 여러분 미리 오시면 저 뒤쪽으로 넘어가는 길도 있고 골목길도 있고 얼마든지 여유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 가는 길에 조그만 쓰레기라도 있으면 그냥 습관적으로 주워보십시오. 그리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 마주할 때 좀 인사도 해보자고요. 작은 우리의 행동과 말들이 모여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구원의 은혜가 풍성하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2세기에 익명의 편지로 기록된 디오그네 투스에게라고 하는 편지가 있는데요. 이 편지에 그 당시에 2세기에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짤막한 부분이 있어요.
이런 내용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나라에 살면서 각 나라의 풍습을 따르지만 그 공동체의 생활에 그 공동체의 생활에 놀라운 성품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핍박을 받아도 기도로 갚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짤막한 말 속에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이방인들이 기독교 공동체를 볼 때 그 당시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었고 핍박받는 사람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저들은 뭔가 다르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어떤 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뭐가 다르다 그 사람들의 모습, 그 행동 하나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간판 같은 역할이었다. 복음의 증거 역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불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믿는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확장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 나는 못해 그러면 정말 못합니다. 우리 예배 끝나고 설교 끝나고 이제 마무리할 때 구호 외치죠. 우리 구호를 뭐라고 외칩니까?
할 수 있다 해보자 할렐루야
이건 제 인생의 모토와도 같은 구호이기도 하고 제가 담임 목회를 하면 이 구호는 우리 교회에서 꼭 외쳐야지 제가 벼르고 별렀던 구호입니다. 되게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어색할 거예요. 우리 장로님 어색하시죠?
뭐 이상한 집단 같이 보여질지 몰라 근데 왜 제가 그 구호를 외치고 다니냐면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그냥 이제 흘려버리는 게 아니라 내 삶에 그래 그 말씀대로 할 수 있다 도전해 보는 거죠. 그리고 해보자 실천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면 그때서야 할렐루야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먼저 할렐루야가 이루어지길 원해요. 그런데 할렐루야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될 건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도전하는 겁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죠. 아주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는 불편한 분들도 계실 거야. 안 그래도 못 나와가지고 지금 그런데 여러분들 불편하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됐어요. 도저히 어려운 분들은요. 온라인으로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들이 있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것마저도 마치 남의 교회 성도들도 우리 교회 걸 들어와서 본다는 소리를 다른 교회 목사님도 우리 교회 걸 와서 듣는다는 소리를 제가 가끔 듣는데 우리 교회 성도들이 과연 지금 얼마나 이 예배에 함께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 요즘 마음이 아플 때가 참 많아요. 이번 금요 기도회에 참여하신 분들 행복하셨죠? 저는 목회자들을 위해서 이 기도 모임을 다시 이렇게 연합회 하셨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회자들이 지금 굉장히 막 준비하고 같이 찬양하고 기도하는 데 아주 힘을 얻고 있는 걸 느껴요.
그런데 그 가운데 오늘 말씀 모두 연결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그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먼저 말씀을 회복하십시오.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관계가 회복되길 원합니다.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고 통용하고 나누어지는 여러분 예배와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이 이미지가 참 멋있게 잘 만들어졌네요. 제가 지난 금요일 날 목사님이 설교 때 아주 이미지를 잘 사용하길래 저도 한번 따라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AI가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제 뜻을 만들어줘서 이걸 이제 그대로 써보는 겁니다. 여러분 말씀이 가장 중심이에요. 그리고 그 말씀 가운데 코이노니와 예배가 이루어질 때 그게 우리의 영의 호흡이 되는 겁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밖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될 수 있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뭔가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밖에 나가서 에너지를 나눌 수 있겠어요?
여러분 우리의 삶 자체가 세상의 증언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흔적이 세상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은요. 제가 오늘 설교 중에 쭉 다뤘던 짤막짤막한 역사의 이야기였는데요. 보십시오. 초대교회 때 그 성령의 역사가 2세기에도 4세기에도 또 1907년에도 1938년에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지금도 우리 교회에도 일어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예 성령의 불은요. 계속 지금 성령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이 불은 교회를 통해 세상을 바꿔가길 원하십니다. 오순절에 시작된 그 불이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이제 하늘 소망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 이 남춘천 지역과 우리 춘천 지역에 퍼져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완벽해서 특별해서 그런 역할을 감당한 것이 아니에요. 숫자가 3천이나 더 했더라. 그러니까 많으니까 그렇게 했나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 성령님이 지금 이 자리에도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말씀 중심으로 함께 모이고 서로 필요에 따라 돌아보고 기쁨으로 나누고, 세상 앞에서 우리가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살아가고 세워갈 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아멘 마지막 우리 이 구절을 같이 읽고 이제 찬양하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리라.
아멘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